대단하다고 해야 하나, 어이가 없다고 해야 하나. 그 일정만 130일이다. 이어지는 거리는 8만5,000마일이고. 북경올림픽 성화봉송 행사를 말하는 것이다.
본래 나치의 작품이다. 히틀러의 전속 영화감독 레니 리펜슈탈이 제안해 체제선전을 위해 도입된 행사가 올림픽 성화 릴레이다. 중국은 그 계획을 ‘사상 최대’로 잡았다. 국제올림픽위원회가 난색을 보였지만 막무가내로 밀고 나간 것이다.
이런 호기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중국의 위상을, 중국 공산당이 이룩한 업적을 전 세계가 주목하도록 하는데 있어서. 그 하이라이트의 하나가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산 정상에 올림픽 성화를 봉송하는 거다. 한 쪽으로는 중국의 오성홍기를 휘날리며.
올림픽 성화가 그리스 올림피아에서 점화됐다. 파리, 런던, 샌프란시스코, 캔버러, 나가노, 서울 등 세계의 20여개 도시를 거쳤다. 그리고 마침내 중국 땅으로 들어갔다.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가. ‘100년만의 꿈’이 이제 실현될 판이니.
그런데 그게 아니다. 일이 괴상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올림픽 성화가 지나간 곳마다 반(反)중국 바람이 몰아치고 있어서다. 도대체 이런 낭패가 있을 수 있을까.
중국 학생들이 떼 지어 나왔다. 곳곳에서 티베트 지지 시위대와 몸싸움을 벌였다. 호주 캔버러의 상황이다. 일본 나가노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그 절정을 이룬 곳이 서울이다. 수천명의 중국 학생들이 한국인, 외국인, 심지어 경찰관에게까지 폭력을 휘두른 것이다.
‘세계와 중국과의 10년여 허니문은 끝났다’-. 올림픽 성화를 둘러싼 중국 공안들. 그리고 그 외곽을 겹겹이 옹위한 중국의 젊은이들. 그들이 성난 얼굴로 외국인들에게 마구 욕을 해대는 살벌한 모습과 관련해 내린 워싱턴포스트의 진단이다.
걸핏하면 아무나 매국노로 매도한다. 그리고 인민재판이다. 이성을 가지고 티베트 학생들과 중재를 구하려 했다. 그런 여학생이 매국노로 몰렸다. 그뿐인가. 미국의 캠퍼스에서도 표현의 자유는 제한을 받는다. 중국 학생들은 티베트자만 나오면 떼 지어 공격하고 있어서다.
안하무인격으로 날뛴다. 그 젊은 학생들을 중국 정부가 선동한다. 세계 각국의 대사관을 통해 학생들을 조직적으로 동원하고 있는 것이다. 홍위병이 연상된다. 문화혁명 때 4인방의 그 독살스런 모습이 떠올려진다.
거기에서 새삼 발견되는 게 병든 중화민족주의로, 섬뜩한 느낌마저 주고 있다. 중국의 ‘환심 사기’ 소프트 파워 외교는 젊은 중국학생들의 난동과 함께 하루아침 약발이 떨어졌다.
‘세계에서 가장 위협적인 세력’ 하면 유럽의 경우 얼마 전까지 그 답은 미국이었다. 이제는 중국이다. 중국은 세계 평화에 가장 위협적인 존재로 각인돼 있는 것이다. 미국인에게 가장 혐오스런 국가는 북한, 이란 등이었다. 이제는 중국이 그 반열에 들었다.
상당한 노력을 들였다. 그래서 펼친 글로벌한 규모의 올림픽 성화봉송이다. 그 행사 중간 집계의 결과가 그런데 이 같이 나온 것이다. ‘어글리 차이니즈’ 성토일색의. 이제 올림픽 성화는 티베트를 거쳐 북경으로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는 그러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민족주의는 양날의 칼이다’-. 전문가들의 하나같은 지적이다. 중국의 13억 인구 중 경제발전의 혜택을 누리는 건 3억 정도다. 10억이 넘는 대중은 소외그룹이다. 그들이 몸부림치고 있다. 생존의 몸부림으로, 그 분노의 함성이 전 대륙으로 확산되고 있다.
한 해 10만 건이 넘는 대형 소요사태가 바로 그 분노의 표출이다. 그 시위양상이 그런데 요즘 들어 더 심각해지고 있다. 개혁·개방의 수혜자인 중산층들마저 들먹이고 있는 것이다.
그 분노를 누그러뜨리는 정책으로 북경당국은 민족주의를 이용해 왔다. 성화봉송을 둘러싼 반(反)서방시위 발생도 같은 맥락이다.
부정부패는 갈 데까지 갔다. 공해는 생존을 위협할 정도다. 그 가운데 인권탄압은 거침없이 저질러진다. 불만과 분노로 꽉 찬 사회가 중국이다. 그 불만을 공산 정부는 유교의 뒤에 몸을 숨기고 중화민족주의를 통해 무마해온 것이다.
티베트 사태를 한(漢)족 대 티베트인의 대결인 양 몰아간 것도 그렇다. 성화봉송 과정에서의 시위도 서방의 반중국적 편견의 발로란 방향으로 구도를 잡아간 것이다.
언제까지 그러나 그 방법이 통할까. 많은 전문가들의 시선은 바로 이점에 머물러 있다. 올림픽은 중국 공산 정부에 약이 될 수 있다. 세계가 그 체제를 인정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독이 될 수도 있다. 중국의 모순이 모두 드러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어서다.
올림픽은 그러면 중국의 체제에 변화를 가져올까. “아니다.” 고든 챙의 지적이다. “중국인들을 변화시킬 것이다.” 이어지는 그의 말이다. 올림픽은 중국 공산당 체제에 약보다는 독이 될 것이라는 진단이다. ‘올림픽 이후’의 중국은 어떤 모습일까.
옥 세 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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