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서너 번 씩 내가 워킹을 하는 길옆으로 꽃들이 많이도 피어있다. 한적한 주택가의 이른 아침 길을 걸으며 아름다운 꽃들을 만나는 일은 축복이다. 그 이름도, 빛깔도, 생김새도 각양각색인 꽃들을 보면서 생각한다. 꽃은 그냥 꽃이기에 무조건 아름답다. 화려한 모습의 장미는 여왕 같은 기품 때문에 아름답고, 납작하게 흙을 덮고 노랗게 피어있는 가제니아는 그 겸손함 때문에 아름답다. 이름 없는 들꽃도 예쁘고 전문가가 개발 해낸 비싼 꽃도 근사하다. 볼 때 마다 새롭게 피어나 있는 이름 모르는 꽃 봉우리를 향해 나는, 굿 모오닝, 인사를 한다. 그러나 일일이 다 아는 척 할 수는 없다. 집집마다 경쟁이라도 하듯이 낮은 울타리 안팎을 빈틈없이 꽃으로 채워 놓았기 때문이다. 3마일을 꽃 속으로 걷는 기분이다.
우리 집 아래에 있는 초등학교 담은 높은 철망으로 되어있고, 철망은 자스민 꽃 넝쿨로 덮여있다. 자스민이 흐드러지게 피어서 철망 사이로 비어져 나와 한들거리고 있다.
오래전 어느 주말에 동네 사람들이 모여 여러 종류의 꽃나무를 철책 담 양쪽에 심었다. 그리고 인도를 따라 자카란다를 심었고 여름에는 보랏빛 꽃잎이 길을 덮는다. 여름이 오면 나는 그 꽃길을 걸으면서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하고, 소월을 읊을 것이다. 내가 대학시절 서울에서 가정교사를 할 때 ‘모범 전과’ 라는 참고 서적이 있었다. 아이들에게는 바이블 같은 책이었다. 그 책 속에 있던 어떤 문제와 그 모범 답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이른 봄에 피는 꽃 10개, 여름에 피는 꽃 10개. 이런 식으로 각 계절 마다 피는 꽃 이름을 아이들은 암기해야 했다. 내가 가르치던 아이는 그 꽃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색깔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그냥 외어댔다. 나도 아이가 봄꽃과 여름 꽃을 섞어 외우지 않도록 지켜보고 있어야 했다. 그 시절 교육은 무조건 외어대는 것이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일년 내내 한국의 계절 꽃이 피어 있다.
그런데 꽃들은 봄이 온 것을 어떻게 아는가. 뜨거운 여름이 온 것을 어떻게 알고 때맞추어 흙을 뚫고 나오는가. 꽃을 피우는 식물은 1억 년 전부터 지구와 함께 진화해 왔다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지구의 기후가 변함에 따라 화초들도 생존을 위한 지략을 동원해서 ‘봄 기다리기’ 작전을 개발하게 되었다는 얘기다. 가을에 꽃이 피지 않는 이유는 화초의 유전자가 꽃피우는 행위를 억제하라고 지시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추운데서 일정한 시간을 보내면 억제 유전자는 기운을 잃게 되고 꽃피우는 행위가 시작된다고 한다. 꽃을 피우는 식물들은 온도에 예민하고 날짜와 시간 세기에도 정확하다고 한다. 춘분이 언제인지 안다는 얘기다. 위스콘신 대학교의 리처드 아마시노 연구원이 2006년에 발표한 연구논문의 골자이다.
그뿐 아니라 인간이나 마찬가지로 24시간을 기준으로 행동하는 유전자가 꽃식물의 세포 속에 존재한다는 것도 스크립스 연구소의 실험 결과로 증명되었다. 인조일광을 아무리 쬐어도 아랑곳없이 꽃들은 정확하게 진짜 햇볕이 쬐이는 동안에만 꽃을 피웠다고 한다. 그리고 일광시간의 길이에 따라 꽃피우는 행위도 병행했다고 한다. 이쯤 되면 꽃을 그저 아름답게 피었다가 별로 아름답지 못하게 시들어 버리는 식물로 대접해서는 안 될 것 같다. 동물이나 마찬가지로 지적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인정해 주어야 하겠다.
3년 전 한국에 갔을 때 어머니의 꽃밭에서 봉선화와 코스모스 씨를 받아 왔었다. 그런데 잊어버리고 팬트리에 넣어둔 채 3년을 묵혔다. 혹시나 하고 뒤뜰 축담 아래에 봉선화씨를 뿌리고 코스모스는 언덕에 뿌렸다. 코스모스는 단 한 개의 싹도 틔우지 않았다. 그러나 봉선화는 달랐다. 일주일 후에 파랗게 떡잎이 솟아오르더니 매일 조금씩 눈에 보이게 크고 있다. 문제는 너무 촘촘히 자라고 있어 많이 솎아 내어야 하는데 그것이 어렵다.
모종 하나하나를 꽃피우기 위해 지혜로운 유전자가 대책을 계획하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송정원
전베벌리힐즈 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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