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동안 일부 논객을 중심으로 조심스럽게 거론돼 오던 위기론은 이제 일반 미국민들조차 “뭔가 잘못돼 가고 있다”는 우려를 나타낼 정도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2차 대전 종전 이후 미국은 명실상부하게 국제사회 시스템과 문화, 그리고 행동양식에 있어 주도적 역할을 해 왔다. 수십년 동안 미국에 의한 평화를 의미하는 이른바 ‘팍스 아메리카나’를 구가하다 지난 세기 말부터 급속한 영향력 쇠퇴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국제 사회에서의 위신이 추락하고 있을 뿐 아니라 국내적으로도 많은 문제들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 뉴욕타임스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이런 비관적 분위기와 우려가 극명하게 나타났다. 응답자의 81%가 미국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인 5명 중 4명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은 가벼이 여길 현상이 아니다.
미국의 쇠퇴 조짐을 로마제국의 쇠퇴에 비교하는 지식인들이 많다. 현재의 미국이 멸망 직전의 로마를 닮아가고 있다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논객은 영향력 있는 시사월간지 ‘애틀랜틱 먼슬리’의 편집장을 지낸 컬런 머피이다.
머피가 찾아낸 두 제국간의 유사점은 광대한 영토와 다인종 같은 외형적인 데만 있지 않다. 그보다는 일방적인 성격의 리더십에 본질적인 유사점이 있다고 본다. 머피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로마 말기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에 비유한다. 전제적인 국가 통치 스타일도 그렇고 국경 너머로 너무 뻗어 나가는 바람에 국내적인 문제들을 야기시킨 점에서도 똑같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을 선과 악의 대결 구도로 보면서 자신을 ‘구세주’로 여기는 이분법적 성격까지 꼭 닮았다는 것이다.
역사를 ‘현재의 거울’이라고들 하지만 미국의 위기를 로마 말기와 비교하는 것이 얼마나 타당한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미국의 현 위기가 흔들리는 리더십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것만은 부인하기 힘들다.
바람직한 리더십에 대한 정의는 무수하다. 이것이 가장 바람직한 리더십이라고 한마디로 꼭 집어 말하는 것은, 이런 사람이 잘 생긴 사람이라고 외모를 규격화하는 것처럼 부자연스런 일이다. 전시에 필요한 리더십이 있고 평화 시에 빛을 발하는 리더십이 따로 있듯이 바람직한 리더십의 유형은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그렇지만 잘 생긴 외모가 바라볼 때 기분 좋은 것이어야 하듯 좋은 리더십에도 공통의 필요조건이 있다. 리드해야 할 상대가 있다는 기본적인 인식이 그것이다. 이것은 인식의 문제이지만 곧 리더의 능력이기도 하다. 이런 인식의 끈을 놓칠 때 리더십은 일방적인 것이 돼 버리곤 한다. 힘을 갖게 될 때 쉽게 빠지는 유혹이자 함정이다.
‘워터게이트’로 리더십을 구겼던 리처드 닉슨은 불명예 퇴임 후 많은 시간을 리더십 연구에 천착했다. 그 결실이 1982년 출간된 ‘20세기를 움직인 지도자들’이다. 책에서 닉슨은 ‘경영’과 ‘리더십’을 구분하며 “경영인이란 일을 바르게 하는 것이 목표인 반면 리더십은 구성원들이 바른 일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기업을 크게 일군 경영인이 국가 경영에서는 종종 실패하는 이유는 이런 차이 때문이다. 효율과 실용만 따지다보면 이끌어야 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보듬는 일을 등한시하기 쉽다.
국가와 조직이 그런대로 굴러가고 있을 때는 문제를 진단하고 필요한 처방을 내리는 의사형 혹은 경영자형 리더십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위기가 찾아왔을 때는 이런 대증적 리더십만으론 부족하다.
어른들에게 꿈을 심어준 ‘어린왕자’의 작가 생텍쥐베리가 “만일 당신이 배를 만들고 싶으면 사람들을 불러 모아 목재를 자르고 일감을 나눠주는 일을 하지 마라. 대신 그들에게 바다에 대한 동경심을 불러일으키라”고 했을 때 그가 말하고자 한 것은 바로 이런 ‘영감 넘치는 시인의 리더십’이었다. 일감을 나눠주고 지시하는 경영자형 리더십만으론 프리미엄급 리더가 될 수 없다.
국가적 위신과 국민적 자부심이 크게 떨어져 있는 미국에 지금 절실한 것은 루스벨트와 케네디, 그리고 ‘위대한 커뮤니케이터’로 평가 받는 레이건이 보여준 것 같은 프리미엄급 리더십이다. 미국인들은 오랜 전쟁에 점차 지쳐가고 있으며 경기침체 장기화에 대한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이런 때 정말 필요한 것은 이들의 불안하고 지친 마음을 달래주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다시 되찾아 줄 수 있는 리더십이다. 경제와 전쟁에 대한 진단과 처방은 관료들과 군사 지도자들에게 맡기면 된다.
긍정적인 조짐은 있다. ‘국민신뢰 현행지수’는 형편없지만 ‘국민신뢰 선행지수’는 괜찮다는 점이다.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앞으로 20년간 미국은 지금보다 더 나은 리더를 갖게 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견해를 보였다.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눈앞에 다가와 있다. 그런 점에서 아직은 ‘희망의 계절’이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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