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병렬(교육가)
까치 까치 까치는/누구하고 노나/까치 까치 까치는/까치하고/놀지
이것은 1973년 5월 5일 뉴욕한국학교 개교식에서 부른 노래이다. 본래는 ‘꾀꼴 꾀꼴이’로 되어 있는 노래말을 길조인 까치로 바꿔서 부르게 했다.
학교의 교육 목표 달성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기에 적당한 노래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당시는 한국사람끼리 모여서 한국식으로 미국을 사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보았다. 또 ‘뭉치면 산다’는 말도 생각났다. 한국 학생들을 모아놓고 한국의 자랑스러움을 알려서 자긍심을 가지게 하는 일은 큰 뜻이 있겠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에 살고 있다. 필요한 언어는 영어이다. 한국말을 가르치면 그 말을 어디서 쓰겠으며, 그것 때문에 귀중한 에너지가 분산되고, 학생들의 마음에 갈등이 생긴다 등등의 반대를 물리치기 힘들어서 하나의 제안을 하였다. 우리는 시험 기간을 가지자. 10년 동안 한국 문화 교육을 실시해 보고 다시 생각하자. 그동안은 찬부의 토론을 자제하자. 이것이 바로 어설픈 동포사회에서 학교 탄생의 기반이 되었다. 그 학교가 35년 동안 자랐다.
인생을 ‘놀이판’으로 볼 수 있을까. 한 판 잘 놀고 하늘로 돌아간다는 뜻을 가진 어느 시인의 시구가 떠오른다. ‘살다’는 목숨을 이어간다는 뜻이고 ‘놀다’는 어떤 놀이를 하여 승부를 가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살다’를 ‘놀다’로 표현하여도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놀다’는 즐거운 살맛을 주는 묘약 효력이 있다. 하지만 놀이에는 상대방이 되는 친구가 있어야 한다. 그 친구는 많으면 더 좋고, 다양하면 더 즐겁다. 그런 친구들을 구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민생활이다.
다양한 친구가 있는 넓은 세계에 왔다. 나는 여기서 자유로이 헤엄을 치면서 많은 친구와 사귀겠다고 한들 조건이 있다. 친구가 된다는 것은 쌍방이 서로 끌어야 가능하다. 일방적인 욕구는 우정을 키울 수 없다. 상대방이 내게 대한 흥미, 이해, 사랑을 느끼게 하려면 내가 가진 것이있어야 한다. 내가 가진 것이 제 것과 다를 때 그들은 흥미를 가지고 가까이 온다.
우리는 서방문화와 다른 한국문화를 가지고 있다. 한국문화는 반만년의 긴 역사가 흐르면서 잘 익었다. 잘 숙성하였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눈길을 끌 수 있다. 바로 이것이 내 소유물이 되지 않는다면 내 친구를 구하기 힘들다. 한국 2세들이 한국어, 한국문화를 지니지 않고는 많은 참다운 친구를 구하기가 힘들게 된다. 또한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이 없으면 자기 자신이 정체성 확립에 혼돈이 생긴다는 점이다.
‘나는 자국의 문화를 내 속에 확립하고 싶다. 내 겉모습이 일본인이고, 타인들로부터 일본인으로 다루어지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일본인이 가지는 지식을 못 가지고 있다면 볼쌍사납다. 그것 뿐이다’
미국 태생 15살 일본 여학생의 글 중에서 발췌하였다. 그래서 그는 일본말을 완전히 사용하고, 일본 글도 자유롭게 구사한다. 그녀에게서 우리가 본받을 것은 무엇인가. 이렇게 각자가 다른 문화를 가지고 넓게 다양하게 놀이 친구를 사귀는 일은 중요하다. 친구를 사귀는 일은 자기 자신을 더 잘 이해하고, 자기 자신을 확대하는 길이다.
세상과 사람의 마음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변화는 영원하다. 한국학교도 변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학생, 학부모, 교사들이 변하고 있다. 학생은 다양해지고, 한국을 잘 모르는 2세 학부모와 교사들이 늘고 있다. 여기에 따라 교과과정과 교육방법이 변해간다. ‘까치끼리만 놀자’던 노
래말도 바꿔야 한다. ‘누구하고나 놀자’로. 친구를 가려서 사귄다면 제한된 자기 자신의 확대를 뜻한다. 무한대로 자기 자신을 확대하고 싶으면 다양한 친구를 사귀는 것이 그 길이다. 한국문화를 지녔다는 자기의 특색을 가지고 친구를 넓게 사귀면서 인류문화에 공헌하는 길이 열려 있다. 이것이 한국학교의 교육 이념이다.
까만 눈도/파란 눈도/사과를 보며/책을 읽는다// 낮은 코도/높은 코도/향내를 맡으며/푸른 공기를 마신다// 까만 머리도/노란 머리도/길게 자라며/바람에 나부낀다// 노란 손도/갈색 손도/손가락이 다섯이며/만지면 따뜻하다// 노란 마음도/하얀 마음도/갈색 마음도/서로서로 맞닿으면/뜨거운 사랑을 안다// 우리들은 자란다/같은 시대에/같은 지구에서.
이 동시는 필자의 것이며, 제목은 ‘같은 지구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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