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가 며칠 전 데이빗 패터슨(53) 뉴욕주지사의 일상에 관한 이야기를 자세히 소개했다. 주지사로 취임한지 한 달여가 된 그는 업무 처리 방식이 이전의 주지사들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날그날의 일정에 따라 책상 위에 산더미 같이 쌓이던 브리핑 책자, 보좌관들이 수시로 보내던 이메일 메시지 등은 패터슨 취임 후 모두 사라졌다. 시각 장애인인 그를 위해 보좌관들은 모든 보고를 전화에 녹음으로 하고 있다. 매일 퇴근 후 그는 다음날 업무 파악을 위해 전화 녹음을 듣는데, 보통 40여개의 메시지들이 남겨져 있어 그것만 듣는 데도 서너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힘든 것은 그 정도가 아닐 것이다. 아무 것도 눈으로 확인할 길이 없으니 연설을 할 때면 연설문을 통째로 외워야 하고, 아무리 긴 자료라도 녹음으로 들으면서 암기 수준으로 이해를 해야 일처리에 차질이 없을 것이다. 그가 ‘실명’이라는 한계를 안고 그 자리까지 올 때는 얼마나 많은 좌절과 피눈물 나는 노력이 있었을 지 상상이 어렵다.
삶이 너무 단조롭게 느껴질 때, 세상이 너무 불공평해 보일 때, 혹은 어디에도 희망이 보이지 않아 암담할 때 문득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눈이 안보이거나, 팔다리가 없거나, 지체 부자유인 몸으로 씩씩하게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이다. 장애가 없었더라면 그저 평범하게 살았을 지도 모르는 데 장애를 극복하느라 혼신의 노력을 하다 보니 성공에 이른 경우도 없지 않다.
“실명은 내 인생의 걸림돌이 아니라 성공의 디딤돌이었다”고 증언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백악관 국가 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인 강영우 박사이다. 중학생 무렵 축구공에 맞아 실명한 그에게는 세 가지 역경이 앞에 놓여 있었다. 눈이 안 보이는 신체장애, 부모를 일찍 여읜 고아의 처지, 그리고 지독한 가난이었다.
역경을 누구나 이겨내는 것은 물론 아니다. 고난과 역경 앞에서 사람들은 두가지 부류로 나뉜다고 그는 지적한다. 절망하고 포기하는 99%와 그것을 기회로 삼는 1%이다. 그들 1%에게는 역경이 오히려 강한 날개를 돋게 만드는 자극이 될 수가 있다.
패터슨 주지사는 장애와 관련,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말했다. 첫째는 장애를 가지고도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적응하느냐가 그 비밀이다”고 그는 말했다. 눈이 안 보이는 그는 귀에 의존해 세상에 적응했다. 남들이 하는 말에 최대한의 주의를 기울여 듣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깊이 경청하다 보니 사람들의 마음을 얻음으로써 정치인으로서 성공의 발판이 되었다고 한다.
둘째 그는 (시각)장애인들이 혼자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사회가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배려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다리가 없는 사람을 보통 사람들과 똑같이 달리게 하는 것을 평등이라고 할 수는 없다.
4월은 장애를 생각하는 달이다. 한국에서는 장애인의 달이고, 미국에서는 자폐 인식의 달이다. 우리가 부모로서 겪을 수 있는 가장 깊은 아픈은 자녀가 장애로 태어나거나 장애가 되는 일이다. 특히 자폐는 근년 그 숫자가 급속히 늘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연방 질병통제센터에 따르면 미국의 어린이 150명중 한명, 남아 중에서는 94명중 한명이 자폐이다. ‘장애’가 ‘남의 일’이 아닌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장애를 보는 시각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13살의 자폐증 아들을 둔 한 엄마의 말이다.
“영리했던 아이가 2살 때부터 행동이 이상해지며 자폐 진단을 받았어요. 그러잖아도 ‘내가 뭘 잘못 했나’ 죄책감에 시달리는 데 주위에서 그러더군요 - 엄마가 일하러 다니니 아이가 저렇지!”
중요한 것은 상황이 아니라 마음의 자세이다. ‘장애’도 다르지 않다. 팔다리가 없이 태어난 중증 장애자 오토타케 히로타다(32)는 “장애와 행복은 무관하다”고 말한다. 대학 재학 중 자서전 ‘오체 불만족’을 써서 유명해진 그는 어깨와 뺨에 연필을 끼고 글을 쓰고 어깨로 농구를 하면서 스포츠 저널리스트로서, 저술가로서 삶을 즐긴다.
눈이 있어도 보려는 마음이 없고, 다리가 있어도 뛰려는 의지가 없다면 장애와 무엇이 다를까.‘오체 불만족’의 영문판 제목은 ‘누군들 완벽할까’이다.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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