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마지막 한줌의 재
자녀에 헌신적 관계 맺어야
요즘은 해도 길어져 야외에 나가는 기회가 많이 생겼다. 그러던 중 지난 주에는 모처럼 골프장으로 초대를 받아 즐거운 오후를 보낼 기회가 있었다. 그곳은 회원제로 퍼블릭코스와는 한층 다른 분위기였다.
우선 골프장에 긴 줄이 없었다. 모든 것이 매월 회비와 월별 정산으로 처리되니까 무엇하나 번거롭지가 않아서 너무 좋았다. 점심도 아주 웰빙적이였고 아주 맛깔스러웠다. 골프장이 내려다 보이는 뜰에서 상쾌한 햇볕과 시원한 바람도 직접 살에 느낄 수 있어 마치 별천지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연습장이 보였는데 연습공도 가득가득 쌓여 있어서 마음껏 칠 수가 있었다. 연습그린에도 마찬가지로 공이 듬뿍 있었고, 라운딩 시작도 기다림 없이 진행됐다.
그런데 보통 공공 골프장에서는 사람이 많아서 주중에도 보통 4명, 많으면 5명까지 한 묶음으로 채워서 내보내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는 우리 앞에 나간 사람은 달랑 혼자서, 그리고 우리 뒤에는 아예 쫓아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여기 저기 코스 안에 몇몇 그룹이 눈에 보이는 정도였는데 그 날은 비교적 사람이 많은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여유작작하게 18홀을 전부 단 3시간도 채 안돼 마칠 수 있었다.
25년 전만 해도 회원권을 가진 한인들이 많지 않아서 현대의 정주영 회장도 LA에 들를 때면 지사가 있는 근처 바닷가에서 골프를 즐겼는데, 회원제 골프장에서 이런 식으로 여유있게 골프를 즐기고 가는 것이 아니라 그 옆에 있는 퍼블릭 골프장에서 치고 가는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티오프시간을 확보하느라고 현지지사 직원들이 대거 투입되어 골프장 프로샵을 한국 지사원들이 점령하다시피 하는 웃지 못할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회원권을 가진 분들도 많고 심지어는 골프장 사재기 바람이 불어서 한국인 소유의 골프장도 수없이 많아졌다고 한다.
하여간 이렇게 오후를 골프로 즐기고 쾌적한 여유의 삶을 살 수 있게 될 때 성공한 삶이라고 하고 이 때 “성공의 달콤한 맛” (Sweet Taste of Success)을 맛보는 것이라고 하는데 필자는 아주 가끔이나마 이런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것을 감사하고 이렇게 초대해 주는 사람들을 부러워한다.
그렇지만 이런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상응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는데, 그것은 그 곳에 이르기 위한 부단한 노력과 희생이고 또 이것을 이루고 나면 자칫 아무하고나 가볍게 어울릴 수 없는 ‘고립’이라는 외로움에 빠질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축복을 얻지 못한 사람들과 가끔 나눌 수 있는 여유를 얻기까지는 말이다.
그래서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로니카 전서 5:18절)라고 하시지 않았을까?
그래서 오늘은 우리 인간의 삶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다.
한 목사가 설교 말씀에서 예를 들어 말하기를 인간을 이루고 있는 모든 원소는 다 모아보면 불과 몇 달러의 가치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육신을 화장해서 한줌의 재가 된 상태를 놓고 하신 말씀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식용으로 삼고 있는 동물들은 인간이 먹을 수 있는 부위가 가치를 가지게 되는데 가끔 시장에 가서 서운해지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참치 같은 것은 덩치가 큰 것도 그 생명이 불과 몇 만달러에 팔려간다니 얼마나 비참한가! 닭 같은 경우에는 한마리가 고작 몇 달러에 팔리고 있으니 그건 더 통탄할 일이 아닌가!
한줌의 재의 값, 아니면 한 덩어리의 고기값보다 훨씬 더 나가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노동력이다.
기계화되기 전에는 소, 말, 당나귀 등이 그 노동력의 가치를 인정을 받아 어디든지 인간이 가는 곳마다 동행했고 고기값보다는 훨씬 높은 값으로 그들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한때 인간도 노예로 사고 팔 때는 성경에서는 은 30냥의 가치로 쳐 주었고, 노예해방 전쟁 전의 미국에서는 인간이 소 몇 마리의 값으로 거래 되었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위의 무엇보다 더 후히 계산되게 하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관계성의 가치로 계산될 때이다. 애완용동물의 경우, 인간과 가까워질 수 있는 가능성 때문에 귀한 것은 한 마리에 수천달러는 보통이고 아주 사랑받은 것은 수백만달러의 유산을 물려받기도 한다.
인간의 경우는 이 관계성 때문에 전 재산을 물려받기도 하고, 또 아플 때나 어려울 때에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 대신 죽어주고 싶어할 정도로 애착심을 부여받기도 한다.
이 관계적인 사랑의 극치가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인데, 이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온 우주보다 더 귀하다고 하셨고, 독생자를 주실 정도로 사랑하셨다고 기록되어 있다(요한복음 3:16). 많은 사람들이 이런 놀라운 사랑에 감명받아 어떤 어려움이라도 극복할 수 있게 도와준 것이고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큰 축복에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자녀는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가?
한줌의 재나 한 덩어리의 고기보다는 물론 더 가치가 있어야 할 것이다. 문제는 그의 가치가 그가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효용가치에 그치는 경우이다. 그 다음 단계인 관계성 가치를 이루지 못하고는 아무리 좋은 컨트리클럽 회원권도 외로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마지막 관계성 가치의 극치인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루지 못하고는 인생은 결국 한줌의 재로밖에 돌아갈 수없는 운명이기 때문이다.
(213)210-3466, johnsgwhang@yahoo.com
황석근 목사 <마라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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