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LA의 한 대학교 수업에서 있었던 일이다. 학생들에게 그동안 살아오면서 가장 잊지 못하는 순간이 언제였는가에 대한 에세이 과제물이 주어졌고 수업 중에 몇몇 학생들이 발표를 했다. 이때 교수가 한 미국 여학생에게 발표하기를 원하느냐고 물었고 그 학생은 흔쾌히 이에 응했다.
이 여학생은 성인이 되기 전까지 어머니와 의붓아버지 그리고 두 여동생과 살아왔는데 그동안 의붓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해왔고 어머니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묵인해 왔다고 말했다. 대학에 들어온 후 두 여동생을 데리고 집을 나와 돈을 벌어가면서 공부하고 두 여동생들의 뒷바라지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여학생은 여동생이 성인이 될 때 까지는 혼자서 어디를 갈 때 남자 들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 보내고 심지어는 여동생이 친구 집에 갈 때도 그 친구에게 남자 형제가 없는 경우에만 허락을 한다고 했다. 여동생들에게 자기가 겪어온 아픔을 다시 겪게 할 수는 없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췄다.
이 학생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두가지 점에서 놀랐다. 학생 신분의 아직 어린나이에 박차고 일어나 동생들 까지 돌보고 있는 그 당참과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이것은 친 어머니도 외면한 일이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 학생이 만약 한국 학생이었어도 많은 친구들 앞에서 의붓 아버지에게서 성폭행 당하면서 자랐다는 말을 당당히 밝힐 수 있었는지 묻고 싶었다. 아마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문화, 특히 성에 대한 전반적인 사회적 인식의 차이에서 나온다고 본다.
요즈음 한국에서 갑자기 아동 성학대 범죄가 연일 매스컴을 장식하고 있다. 그동안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쉬쉬하는 사회적 현실 속에 짓눌려 있던 것이 곪아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에서도 의붓아버지나 가까운 가족에게 딸이 성폭행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머니나 다른 가족들이 알면서도 경제적으로 자립할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혹은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이 두렵다는 이유 등으로 묵인되고 있는 일이 종종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런 경우 아이는 엄마와 가족에 대한 강한 증오심이 마음에서 자라게 되고 나중에는 극단적인 결과로 까지 치다를 수 있게 된다.
아동 성범죄의 특징은 ‘반복성’과 ‘주변성’이라고 한다. 주로 아동성애라는 정신질환에 의한 것으로 우리 주변에서 선량해 보이는 사람이 어느 순간에 방어능력이 없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성폭행범으로 돌변 한다는 것이다
아동성애라고 해서 모두 범죄자로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 대다수는 평생자신의 욕구를 억누르며 선량하게 살아간다. 이들 중 극히 일부가 성범죄자로 발전하는데 이 경우 통제가 거의 불가능 하다고 한다. 따라서 두번 이상의 아동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경우 아무리 극한 형량을 치르고 난 뒤라도 다시 같은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굉장히 높다.
아동 대상 성범죄는 현대사회의 구조상 앞으로 더 늘어나면 늘어났지 결코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주로 아이의 주변 인물에 의해 발생하는 특성상 아동과 가족이 은닉하는 경우가 많아 그 대처 방안을 마련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나라들이 성범죄자들의 처벌을 점점 강화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아동 성범죄자들의 이름과 사진을 온라인과 오프라인 상에 공개하고 있으며 텍사스 주에서는 성범죄자의 집과 차에 성범죄자 표시판을 달게 하고 있다.
우리는 현재 미국에 살고 있지만 성범죄의 특성상 그것을 대처하는 사회적 인식이 중요하므로 민족마다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과 특성에 따라 그에 알맞는 대처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본다.
한국에서는 물론 미국에 사는 한인들조차 아직도 남성위주의 사회질서구조가 잔재해 있어 성범죄에 대해서는 해결책을 찾기 보다는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여 덮어두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여자아이는 자신이 무엇인가 잘못 했다는 죄책감과 수치심에서 성장기를 보내게 된다. 이렇게 자란 아이가 앞서 언급한 미국 여대학생처럼 떳떳하게 친구들 앞에서 자신의 아픔을 말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성인으로서의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을까.
성범죄 발생 시 이것을 이상한 시선으로 쳐다보는 대신 절대적으로 아이의 잘못이 아닌, 정신 질환자의 잘못된 행동에서 일어난 일임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가 수치심이나 죄책감을 벗어나 어려움을 극복하고 한 강인한 사회인으로 커 가고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모두가 도와야 한다.
그것이 우리 사회가 딸들을 진정으로 보호하는 길이라 생각한다.
제나 추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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