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까지 필자의 칼럼을 읽었다는 분이 대학으로 전화를 했다. 그동안 다른 일이 너무 밀려서 작년 말 이후 칼럼을 중단하고 있던 터라 연구실로 오는 전화가 거의 없었는데, 사연은 필자가 쓴 칼럼이 아니었다. 그냥 이름 없는 약한 소액투자자로 자신을 밝힌 이분의 얘기가 조용한 연구실의 오후를 흔들었다.
그분의 얘기.
사회보장연금이 주 소득원인 이분이 은퇴 전 조금씩 일생동안 저축한 돈이 3만달러 가량 되었다. 좋은 CD이자를 받는 10만 달러 넘는 큰돈도 아니고, 정기예금 금리가 성에 차지를 않아 그때 인기가 있던 한인은행 주식을 사면 어떨까하고 마땅한 은행주 하나를 찾고 싶었다.
어떤 은행이 제일 좋은 지도 모르겠고, 물어볼 곳도 마땅치 않아, 그때 마침 유명한 주류은행 경제분석가를 행장으로 영입했다고 뉴스에 나오던 어느 한인은행 주식을 사기로 했다. 그분의 긴 하소연을 다 옮길 수는 없고 간단히 개요를 추리면, 그때 투자한 3만 달러가 이제 1만 달러로 줄어 들었으니 어떻게 했으면 자기가 회복을 하겠느냐는 것이었다.
공공도서관의 컴퓨터로 투자관리를 하신다는 이분에게, 가진 투자액 전체를 산업별 위험분산 없이 은행에, 그것도 한 은행주식만 산 것은 정도에 어긋난다는 말씀을 드렸다. 마음은 아프지만, 다른 한인은행과 주류은행 주식들도 거의 다 값이 내려갔으며, 필자가 개인독자들의 투자자문에 응할 수도 없고, 또 언론매체에서 좋은 투자상담가들의 얘기들도 싣고 있으니 앞으로 그걸 참조하시라는 뜻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하도 그분의 사정이 딱해서 마음이 좋지 않아 인터넷에서 그분이 투자했다는 은행이 새 행장을 영입한 당시의 주가를 뽑아보았다. 21.70달러 정도였다. 전화 받은 날의 주가가 7.50달러였으니 그 독자분의 사정이 짐작이 갔다. 주식의 가치가 3분의 일로 준 것이다.
경제가 좋질 않아 모두가 걱정이 많다. 특히 한인들은 그동안 튼튼하게 생각해오던 미국이라는 나라의 화폐가 너무 약해지고, 개솔린 값은 천정부지로 솟아오르고, 경기회복은 언제 올지 모르고, 은퇴한 분들은 사회보장연기금이 20년 안에 고갈한다는 뉴스로 불안한 나날이다.
필자는 그분의 전화를 끊고 나서 얼마 전 한인사회에서 제기된 한인은행 이사회의 자질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 당시 언론사들의 비평이 자자할 때 그 요지는 이랬다. 은행창립시의 투자자란 이유로 금융전문가들도 아니면서 ‘평생’이사로서 온갖 특혜를 누리는 이사들. 현재의 투자액수로 보면 소액의 투자금으로 때를 잘 만나 거금을 벌고, 이사회에 장기에 걸쳐 연임을 하고, 은행경영의 노하우를 공부한 적도, 금융계의 근무경력도 거의 없으면서 시시콜콜 행장의 경영에 간섭하는 한인이사들.
필자는 앞으로의 비전과 은행권 전체의 나아갈 방향제시가 없이 이사들의 고령의 나이와 장기연임에 대한 일반적인 비평을 보고, 이래서는 한인금융권의 발전에 도움이 안 되고, 우리가 얘기하려면 건설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생각에 한인금융 기획칼럼을 몇 번에 걸쳐 쓴 적이 있다. 시장경제에서 그 이사들이 가진 권리를 한인사회에서 여론몰이로 공격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당시 필자의 얘기가 한인은행 이사들을 비호하는 것처럼 들렸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 주위를 살펴보자. 우리 한인은행들이 이대로 방향 없이 표류해서 괜찮은 것인가. 영입된 후 여러 가지 경영실패로, 좋다고 소문나 있던 그 은행의 여신포트폴리오를 증권분석 애널리스트들이 걱정된다고 얘기하도록 만들고 떠난 분은 일 년에 백만 달러씩 수백만 달러의 보상을 챙겼고, 은행경영경험과 은행에서 가장 중요한 여신의 노하우가 거의 없는 분을 모시고와서 합병 후 시너지효과 실현을 해야 할 막중한 시기에 기회를 놓친 이사회는 그 후 책임을 졌다는 얘기를 우린 못 들었다.
그 은퇴자 한 분 뿐이겠는가. 우리 한인사회에 산재한 수많은 소액투자자들의 아픈 마음은 누가 다독거려 줄 것인가. 다가오는 5월의 올해 주주총회에서는 상처 난 이들의 슬픈 마음에서 나오는 소리들을 귀담아 들어야할 것 같다.
이종열
페이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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