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신문사 동료 중에 요즘 축하인사를 받느라 바쁜 사람이 있다. 아들이 해군사관학교에 합격한 동료이다. 미국에서 중요한 엘리트 코스 중의 하나인 사관학교에 아들이 합격했다는 사실, 게다가 사관학교는 학비 전액이 지급돼 부모가 학비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 등으로 그는 주위 친지들로부터 한껏 부러움을 사고 있다.
사실 그의 아들은 지난 연말 일찌감치 육해공군 사관학교에 모두 합격했는데 합격자 발표 시즌이 되자 새삼 다시 축하를 받고 있는 것이다.
3월부터 시작된 각 대학 합격자 발표가 이번 주로 막을 내리면서 진학생을 둔 가정마다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학교 성적, SAT 시험성적, 과외활동 등 모든 면에서 우수해 “최소한 UC 계열은 걱정 없다” 던 학생이 줄줄이 불합격 통보를 받는 가하면 GPA 4.0이 채 못 되는 학생이 UC의 상위권 대학에서 합격 통보를 받는 등 ‘불가사이’한 결과들은 올해도 속출하고 있다.
그래서 기대 이상의 결과를 얻은 학생 가족들은 횡재를 한 듯 축제 분위기이고,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대학에서만 합격 통지를 받은 학생 가족들은 말 그대로 초상집이다. 잔뜩 풀이 죽은 학생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런 자녀 앞에서 실망한 내색조차 할 수 없는 부모는 속으로만 열을 삭히느라 집안이 살얼음판이다.
대학 입학 경쟁률이 해마다 높아지면서 실망하는 가족들 또한 해마다 늘고 있다.
하버드, 예일 등 일류대학들은 올해 사상 최대의 원서를 접수했다. 그 결과는 사상 최대의 경쟁률로 이어졌다. 하버드의 경우 전년도 보다 19%가 늘어난 2만7,462명이 지원, 7.1%가 합격통지를 받았다. 100명중 93명은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이들이 보통 우수한 학생들이 아니다. 전체 지원자 중 SAT 수학성적 만점인 학생이 3300여명, 독해력 시험 만점인 학생이 2500여명이었다. 각자의 학교에서 전교 1등인 학생만 3300명이 넘었다. 평생 1등을 놓쳐본 적이 없는 학생, 혹은 SAT 만점을 받은 학생이 불합격의 고배를 마시는 것은 하버드에서 예사로 일어나는 일이다.
명문 대학들의 경쟁률이 근년 얼마나 높아졌는지는 예일의 경우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지난 1998년 예일에는 1만2,000명이 지원, 18%가 합격 통지를 받았다. 대여섯 명중 한명은 합격을 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거의 두배가 되는 2만2,813명이 지원, 겨우 8.3%가 합격했을 뿐이다.
10년 사이 합격률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
그런데 이런 치열한 경쟁이 아이비리그만의 일로 끝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이전 같으면 아이비리그에 입학했을 수재들이 무더기로 떨어져 UC 등 명문 공립대학으로 몰리니 이들 대학의 경쟁률이 높아지면서 파장이 대학 진학생들 전체에게로 파급된다.
대학 들어가기가 왜 이렇게 어려워졌을까. 90년대 초반만 해도 UC는 그냥 걸어 들어가는 줄 알았던 것이 한인사회의 인식이었다. 원인은 진학하려는 학생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미국의 고교 졸업생 수는 지난 15년 동안 계속 증가, 오는 2009년 320만 명으로 정점에 달할 예정이다. 18세 전후 연령층의 인구가 많아진 것과 아울러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의 비율도 높아졌다. 20년 전만해도 미국에서 대학에 가는 학생들은 고교 졸업생의 절반 정도였다. 이제는 68%가 대학에 진학한다. 고교 졸업장만으로는 먹고 살기가 어려운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대학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꿀 때가 되었다. “적어도 UC는 되어야 …” “커뮤니티 칼리지를 남부끄럽게 어떻게 다니느냐” … 우리의 ‘대학 욕심’이 경쟁률을 부추기는 데 일조하는 것은 물론이다.
대학 합격은 과거 급제가 아니다. 고등학교 때까지 얼마나 열심히 노력해 왔는지를 중간점검 하는 성적표가 될 수는 있지만 그것으로 학생의 장래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늦되는 학생들 중에는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차근차근 과정을 밟아 우수하게 4년제 대학을 마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
대학은 서열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학생에게 얼마나 잘 맞느냐가 중요하다. 기대에 못 미치는 대학에 가게 되었다고 너무 실망하지 말았으면 한다. 목표만 분명하면 기회는 얼마든지 주어지는 것이 미국의 대학 시스템이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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