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장황한 담화가 있었다. 그러나 얘기의 핵심은 표준시(Standard Time)를 바꾼다는 것이었다. 30분을 앞당기어 이 나라의 표준시는 그리니치 세계 표준시와 4시간30분 차이가 나게 된다는 것이다.
왜 표준시를 한 시간이 아닌 반시간을 앞당겼나. 설명은 이랬다. 국민의 생체리듬에 적합해서라는 것이다. 다른 이유도 제시됐다. 1시간의 정배수로 표준시를 정한 국제관례라는 것은 노동자를 착취하기 위한 자본주의의 함정이라는 것. 그래서 바꾼다는 거였다.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이 같은 논리에 따라 베네수엘라의 표준시는 변경됐다.
중국의 서쪽 끝에 우루무치라는 시가 있다. 이 지역 주민들은 보통 오전 11시에 출근을 한다. 8시에 출근하면 별을 보고 집을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북경 중심의 단일 표준시간대를 고수한다. 중국보다 동서길이가 짧은 미국이 4개의 시간대를 두고 있다. 그런데 중국은 시차를 두지 않는다. 북경과 5,00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서쪽 끝의 우루무치에도 때문에 북경 표준시간대가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왜 중국은 단일 표준시간대를 고집하고 있나. 구체적 설명은 없다. 그래서 단지 추측을 할 뿐이다. 시차를 인정하면 분열의 빌미를 줄 수 있다는 괴이한 중국적인 정치논리에서가 아닐까 하는.
아예 스스로 표준시를 만들었다. 이건 차원이 전혀 다른 표준시다. 그걸 ‘주체연호’라 한다. 그 원년은 어버이 수령이 태어난 해다. 1912년이다. 그러니까, 올해는 주체 97년이다. 김정일 체제의 북한이다.
독특하다고 해야 하나, 개성이 강하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이 나라들은 한 가지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세계가 자신들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착각이다. 김정일 체제가 바로 그렇다. 수령절대주의가 그 극단의 표현으로, 그 체제는 ‘주체연호’라는 괴이한 표준시를 만들어낸 것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중국도 마찬가지 아닐까. 중국은 본래 천자(天子)의 나라다. 중국은 그러므로 세계의 표준시가 되어야 마땅하다. 천자가 해마다 변방에 책력을 내려온 관례가 그렇지 않은가.
획일화된 표준시를 적용하는 중국. 이는 유아독존식의 중화민족주의의 발로가 아닐까 하는 것이다.
중국의 변강정책 기조도 다를 바 없다. ‘아무 아무개 공정’이라는 이름으로 역사를 날조해 짜깁기한다. 그래서 티베트인이든, 조선족이든 죄다 한족의 중국 역사에 편입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경우든 분리운동은 용서치 않는다.
국제 공동체의 관례니, 도덕률 따위는 안중에 없다. 이 점에서도 공통된다. 세계 표준시를 따른다는 것은 다름 아니다. 국제관례를 존중한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인권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관을 준수한다는 암묵적 동의다.
이를 거부한다. 그리고 별종의 표준시를 별스럽게 고집한다. 그래서인지, 이 체제들은 하나같이 인권사각지대라는 또 다른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잃어버린 10년 이라고 했던가. 그 시기에 괴이한 일이 발생했었다. 대한민국이 북경의 표준시를, 또 평양의 주체연호를 사모하며 갈팡질팡 역사적 퇴행의 행보를 보였던 것이다.
명(明)이 망해도 수 백 년 동안 마지막 황제 의종의 연호 숭정(崇禎)을 사용했다. 그 조선조의 ‘사대(事大) DNA’를 물려받아서였나. 고구려 역사를 통으로 삼키려 든다. 그래도 북경에 머리를 조아릴 뿐이다. 탈북자들이 맞아 죽어도 말 한마디 못한다.
게다가 김정일을 알현 못해 안달이다. 북한의 인권상황에는 아예 장님 행세이고. 그 대한민국은 국제 외교무대에서 조롱거리가 됐었다.
“북한에서 시민적·정치적·경제적…· 권리들에 대한 체계적이고 광범위하며 심각한 침해가 벌어지고 있다는 보고들이 이어지고 있는 데 깊이 우려한다.” 제7차 유엔인권이사회의 북한인권 관련 결의안의 핵심 문맥이다. 이 결의안에 대한민국 정부가 찬성표를 던졌다.
북한인권문제에 모처럼 당당한 입장을 밝힌 것이다. 기권과 불참으로 눈치만 보아오던 ‘잃어버린 10년의 그 때’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실추한 대한민국의 국격(國格)이 이로써 회복된 느낌이다.
중국의 얼굴빛이 그리 곱지 않다. 북한은 대놓고 도발이다. 미사일을 쏴대고 섬뜩한 말들을 마구 쏟아낸다. 어떻게 보아야 하나. 다른 시대에 산다. 그런데도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거부의 몸짓이다. ‘민족공조’란 허구성만 스스로 드러내는.
옥 세 철
논설위원
secho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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