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성장 환경 고려해야
일방적 주장은 결국 충돌 불러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고 세월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는다고 한다.
41년 전 자식을 미국으로 보내는 게 안쓰러워 저의 부모는 한국식으로 주위에 인사치를 사람들에게 주라고 물건을 많이 보내셨는데 정말로 자개병 같은 물건밖에 미국사람들에게 줄 만한 물건들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한국이 자동차, 선박, IT 산업 등 세계에서 굴지의 생산국이다. 세계 어디를 가나 한국 상품은 고급상품으로 꼽히는 것이 많다.
내가 사는 동네에 한국에서는 어쩔 수 없는 병을 앓고 있는 아이를 입양해 와서 키워준 백인부부가 있는데 작년에 한국에서 친아버지가 학회 참석차 LA에 들르면서 감사의 표시로 삼성 TV를 선물하는 것을 보았다. 이제는 한국도 이렇게 발전했다고 하면서.
그런데 문제는 대학원에서 교수의 꿈을 그리도록 자란 아들이 대견해서 여행도 같이하고 필자를 통역으로 세워서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누며 부자지간의 정을 쌓기 위해 많은 시도를 해 보았는데 문화의 차이라고나 할까 전혀 어색하고 말이 통하지를 않아서 아쉽게 헤어지는 것을 보았다.
다른 많은 교포들도 자녀를 키우면서 당면하는 것이 이 문화의 차이일 것이다.
필자도 이런 것을 경험했는데 어쩔 수 없었던 것이 이승만대통령 시절에 대통령의 생일이라고 서울 운동장으로 끌려가던 일이나, 외국의 원조에 의존하던 시절 외국에서 누가 온다고 할 때마다 수업도 전폐시키고 온 학교 학생들을 길목에 세워놓고 종이 태극기를 흔들게 했던 우리를 지금 세대의 청년들이 어찌 이해할 수 있을까. 또 옛날 서울운동장 어린이 수영장의 탁한 물에서 입추의 여지도 없이 수영도 못하고 하루 종일 서서 놀다가 오면 며칠 후 사타구니가 가렵고 눈이 빨갛게 부어올라서 약국에서 약을 사다 바르고, 그 약이 어찌 아픈지 긁지도 못하고 선풍기 앞에서 다리를 활짝 벌리고 바람을 쏘이며 쓰라림을 달래던 우리 세대를 한 집 걸러 수영장이 있는 미국에서 자란 아이들이 어떻게 이해를 할 수 있으랴.
또 겨울은 겨울 대로 변소에 뾰족하게 쌓아 오르는 ‘봉우리’를 피해 일을 보던 일들, 수시로 찾아오는 정전과 단수, 어떻게 불이 자주 났는지 집 앞 광장 맨 끝집에서 불이 났을 때에는 동네사람들이 다 발벗고 나서 개천물을 퍼다 부었지만 완전히 전소될 때까지 아무도 불을 못 껐던 시절이 있었다.
평화시장에 불이 났을 때는 TV도 없던 그때에 큰 구경거리였다. 불타는 판잣집 가게 지붕 위에 올라가서 불길이 옆으로 더 이상 번지지 못하게 지붕을 부숴대는 소방관 아저씨들과 목조 판잣집이 타며 튀기는 불꽃을 청개천 건너 먼 발치에 서서 몸을 녹이며 바라보던 일 등 미국에서 자란 아이들은 전혀 상상도 못할 얘기들이다.
그렇다고 다 나쁜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름이면 전봇대 하나 없고 휴대전화 소리 하나 없는 시골 강변에서 곤충들의 합창에 도취되었던 기억도 그렇고, 삼천궁녀가 뛰어내렸다는 백마강의 모습도 요즘 아이들이 느낄 수 없는 장관이다. 강릉해수욕장에서 해수욕을 하려면 소나무숲 옆 민가에서 민박을 할 수밖에 없었던 때도 있었는데 유난히 찬 동해의 바닷물에서 놀다가 와서 주인집에서 빌린 화로에 감자를 전으로 부쳐먹던 기막힌 맛은 어찌 잊을 수 있으랴!
옛날 대천에서 새벽에 막 잡아온 싱싱한 게를 매운탕으로 끊여 먹고 바닷가 바위에 붙은 작은 굴을 따먹는 일 역시 미국에서 자란 아이들은 상상도 못할 일들이다.
특히 그 당시 제주도에도 별장 만한 서귀포 관광호텔 하나 밖에 없었을 때였는데, 동굴 구경을 가게 되면 마을사람이 횃불을 들고 안내해 주는 아주 운치가 있고 스릴 만점이었다. 어디를 가나 호텔, 리조트 시설, 잘 차려진 캠프장만 가본 이곳 아이들과는 정서조차 다른 것이다.
이렇게 살던 필자가 한 미국신사의 손을 잡고 미국에 건너 온 2년 뒤 LA에 오신 부모와 다시 만났을 때는 그만 아버님을 울리고 말았다. 너무나 사고방식이 변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이놈이 어른한테 말대꾸야”로 시작해서 “아니, 어른을 빤히 바라보면 어쩌겠다는 거야” 등.
그 밖에도 현저히 달라진 역사관도 한몫을 했다. 시사에 관심이 많으셨던 부친과 사사건건 반대 입장에 서는 내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교과서에 있는 것을 그대로 암기하는 것을 주로 하던 한국식 교육방식에 젖은 부친의 귀에는 같은 사건이라도 찬반 모두를 보는 것을 권장하는 미국식 사고방식에 젖은 필자의 발언이 아주 무례한 반항으로 밖에 들리지 않으셨으리라.
여기서 생각해 보는데 혹 독자 중에도 자녀들과의 대화가 언제나 격양된 어조로 끝나고 가끔 자녀들이 괘씸해서 울컥 울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시는 분은 안 계신가?
이미 성인으로 이민 온 분들과 그래도 미국에서 태어나서 자란 아이들은 물론, 중고등학교를 미국에서 나온 자녀들과는 여러 면으로 아주 현저한 차이가 있다. 전통적 유교사상이나 불교, 토속신앙의 영향 등을 고려하고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무엇일까?
한국에서 성인이 되신 후 이민을 오신 부모 중에는 모이면 흔히 군 복무 시절의 얘기를 나누기 좋아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만큼 군복무가 깊은 인상을 주었고 그들의 사고방식에 영향을 주었다는 증거이다. 단체생활과 규칙생활도 배우고 몸도 다부진 훈련으로 구릿빛 근육질로 다시 태어나며 많은 분들이 호신술도 유단자가 되어 제대하는 분이 많다고 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군복무를 필한 사람과 우리 미국에서 자란 자녀들 같이 군복무, 특히 한국식 군복무를 하지 않은 세대와는 여러 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고 이것이 원만한 부자지간의 형성에 장애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내주에는 이것에 대해서 더욱 깊이 나누어 보고자 한다.
213)210-3466, www.johnsgwhang@yahoo.com
황석근 목사 <마라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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