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값에 처분하는 것을 영어로 ‘Fire Sale’, 또는 ‘Bargain Basement Sale’이라고 한다. 가게에 불이 난 결과 간신히 건진 물품 세일에 제값을 받을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백화점 지하층에서 오랫동안 팔리지 않은 잔품을 파는 일도 마찬가지다. 85년 역사를 가진 베어 스턴스 투자은행을 JP 모건 체이스 투자은행이 사들인 것도 바로 그런 형국이다.
베어 스턴스라는 이름조차 우리 서민들에게 생소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는 그와 같은 금융기관과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투자은행은 보통 은행과는 달리 일반인들의 계좌는 있다 해도 아주 미미한 분량에 불과하고 주로 큰 투자가들의 돈을 모아 대기업체들을 사고팔고 하거나 큰돈이 왔다 갔다 하는 채권을 매입 매수하는 과정에서 이익을 보는 월가의 큰 손들이다.
미국에서 다섯 번째로 큰 투자은행이었던 베어 스턴스는 1년 전만하더라도 주가가 1주당 170달러로 총 200억 달러로 평가되는 거인이었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 채권에 많은 돈을 투자했다가 고전 중이었던 베어 스턴스의 주가는 15일에 1주당 30달러였지만 모건 체이스는 1주당 2달러 꼴, 즉 2억3,600만 달러에 사들이게 되었으니 ‘Fire Sale’이란 표현이 꼭 들어맞는다.
더군다나 모건 체이스를 마주 보는 곳에 위치한 베어 스턴스의 건물만도 3, 4억 달러는 넘는다는 계산이니까 모건 체이스는 땅 짚고 헤엄치는 횡재를 한 셈이다. 물론 모건 체이스는 베어 스턴스의 채무 및 앞으로 있을 법정투쟁의 위험부담을 떠안기는 했지만 베어 스턴스의 위험투자 액수인 300억 달러 가량은 연방 준비은행에서 부담하겠다는 약속 아래 최저가로 샀기 때문에 차라리 파산 정리를 했어도 훨씬 좋은 값을 받았을 것이라는 베어 스턴스 주식 소유자들의 불평도 이해할 만하다.
모건 체이스는 이들의 불만을 고려, 24일 매입가를 주당 10달러로 올렸다. 연방 준비은행의 개입은 베어 스턴스가 망할 경우 다른 투자은행들 내지 일반 금융기관들마저 연쇄반응으로 도산되어 세계 금융질서가 위태로워질 가능성을 원천봉쇄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는 분석이다.
1만4,000명의 베어 스턴스 직원들의 앞날도 밝지 않다. 상당수는 모건 체이스에 의해 흡수되겠지만 많은 수는 실직할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회사 주의 3분의 1가량은 직원들 소유였기에 주가의 가치 상실로 온 손해도 엄청나다. 조셉 루이스란 억만장자 투자가의 경우 그가 불과 석 달 전에 가졌던 베어 스턴스 주가가 9억7,500만 달러였지만 3월 17일로 그것이 5,300만 달러로 급락하는 바람에 무려 9억2,200만 달러의 손실을 보았다는 보도다.
또 하나의 투자은행인 모건 스탠리도 2007년 12월 31일자로 5억5,900만 달러어치의 베어 스턴스 주식을 보유했었던 바 3월 17일자로 그것이 3,000만 달러로 하락해서 5억2,900만 달러의 손해를 본 것이다. 베어 스턴스의 회장도 3월 17일자로 4억8,700만 달러의 손해를 입었고, 그 회사 CEO는 8,600만 달러의 손해를 입었다지만 회사가 잘 되던 시절 수천만 달러씩 벌던 그 사람들을 위해 동정의 눈물을 흘릴 필요는 없다. 회사가 망했어도 그 회사 회장은 2,800만 달러, 그리고 CEO는 500만 달러는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연방 준비은행의 개입이 베어 스턴스로만 그칠 것인가, 아니면 더 많은 투자은행들이나 일반 은행들의 서브 프라임 모기지 위기로 인한 도산 가능성을 막기 위해 돈 찍는 권위를 가진 중앙은행이 계속 개입할 필요가 있을 것인가가 분명치 않아 전문가들 사이에도 이론이 분분하다는데 있다. 내 집을 차압 공매처분 당하는 소시민들에 대한 구제책 마련에는 지지부진한 정부도 금융가의 위기 대응에는 신속하다. 자본주의 아래서는 자본시장의 중추 역할을 하는 금융기관이 실패할 때 경제 대공황이 올 것이라는 공식 때문일 것이다.
자본주의의 모델인 미국 경제도 불황을 예방하기는커녕 부익부, 빈익빈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없으니 인간 제도의 한계를 절감하게 된다. 경제학을 “우울한 과학”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만하다.
남선우 변호사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