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삼(플러싱)
우연히 영화관 앞을 지나다가 ‘No Country for the Old Man’이라는 제목에 끌려 영화관을 들어섰다. 노인 복지를 비판하는 내용이거나 노인들의 애환을 담은 영화겠거니 하고 상영관을 들어서자 10여명 안팎의 백발 노인들이 여기 저기 자리를 했다.
공교롭게도 젊은이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저들도 나와 같은 생각으로 들어왔겠구나 생각하며 영화를 감상했는데 막상 영화를 다 보고 나오면서는 어안이 벙벙했다. 영화의 제목과 내용은 어떤 관련이 있는걸까? 이 영화는 분명 장르로 구분하자면 범죄 스릴러물이다. 굳이 노인과 연결시키자면 은퇴를 앞둔 노 보안관에 무기력이 “노인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긴 하지만 어쨌거나 이 영화는 금년도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8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면서 화제를 불러 일으킬 만큼 수작이었다.
내가 영화와 관계 없이 다만 영화의 제목에만 집착하는 것은 얼마 전 플러싱 K노인센터의 K회장으로부터 들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고 해괴한 사건 때문이었다.플러싱 M병원에 어머니를 둔 아들이 K회장을 찾았다. 병원에서 아들에게 어머니를 모셔가라고 하는데 자기는 어머니를 모실 의사가 없다고 하자 병원측에서 아들에게 법원 판결문을 받아오라고 했다. 그러나 아들은 혹시나 자기에게 불이익이 생기지 않을까 싶어 법원에 가는 대신 K
회장을 찾아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K노인센터가 자기 대신 이 일을 맡아줄 수 없느냐는 거였다.
어처구니 없는 일에 부닥친 K회장은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이며 아들을 설득했다. 부모를 버리는 자식이 어디 있느냐? 그러지 말고 당신이 어머니의 거소만 마련해라. 그러면 우리가 메디케이드를 신청해서 어머니가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해드리고 낮에는 우리가 데이케어를 해 드리겠다며 그를 타일렀는데 그런 제의마저 그는 거절을 했다.화가 치민 K회장이 “당신같이 불효막심한 사람을 위해 이런 기관이 생긴 것이 아니니 빨리
돌아가라”고 호통을 쳐서 그를 보냈다고 하면서 분을 삭이지 못하고 격앙된 모습을 보인 K회장의 모습이 몹시 낯설어 보였다.
평소 늘 웃는 얼굴에 정선된 언어가 몸에 배인 봉사정신으로 많은 노인들로부터 존경을 받던 그의 생소한 모습에 놀라기도 했지만 불길한 생각에 가슴이 아려왔다. 천년이 지난 지금 ‘고려장’이 부활하다니…
고구려 때 노인들이 칠십이 되면 자식이 지게에 매고 산중에 갖다 버리는 풍습이 있었다. 어느 아들이 칠십이 된 아버지를 지게에 지고 산속 깊은 곳에 버리고 돌아오는데 따라왔던 그의 어린 아들이 지게를 다시 가져오자 아들에게 왜 지게를 가져오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아버지도 칠십이 되면 내가 아버지를 이 지게로 져다 버려야 하니까 그 때 쓰려고 가져온다”고 하자 그 말에 그가 크게 뉘우치고 다시 돌아가 늙은 아버지를 집에다 모셔다 극진히 봉양했다고 한다.
그 얘기가 구전으로 나라 안에 퍼지면서 그 때부터 그런 풍습이 사라졌다는 설화가 있는데 천년의 세월이 지난 오늘날 다시 업그레이드 되어 부활하다니…사실 지금 한국이나 미국이나 많은 독거노인들이 있고 매년 그 숫자가 불어나는 추세이다. 자식들이 귀찮아 하고 또 국가의 노인복지 혜택이 좋아지니 굳이 자식들에게 불편을 줄 필요가 없이 자유스럽게 혼자 지내려는 노인들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일 수도 있다.그러나 독거하는 노인들이 갖게 되는 소외감이나 외로움은 누가 달래줄 수 있을까? 물론 이곳 뉴욕에만도 그런 노인들의 외로움의 공간을 채워주려는 많은 기관들이 생기고, 그런 노력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노인들에게는 자식이나 부부의 따뜻한 보살핌보다 더 나은 것은 없을 것이다.
과연 우리는 신판 ‘고려장’의 부활을 어쩔 수 없는 시대적 흐름으로 보고 넘겨야만 하는걸까? 1.5세, 2세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방학 때면 고국 연수를 통해 뿌리교육을 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참된 효의 교육을 시켜 부모를 버리는 패륜의 흐름을 막는 도덕 교육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노인들이 먹고 자고 병 치료를 받는게 행복의 전부라면 집에서 키우는 개나 고양이도 그 정도의 행복은 누릴 것이다. 과연 가족에게서 소외되어 외로운 ‘노인들을 위한 나라’는 영원한 천국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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