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의 중간 이름은 후세인이다. 언제부터였나. 그 이름은 그러나 공식적으로는 언급되지 않아 왔다. 일종의 ‘대선시즌의 불문율’이 된 것이다.
하나의 언어 현상은 그 반대를 가리킬 때가 종종 있다. ‘후세인’이란 이름이 금기어가 된 것도 그렇다. 이것이 가리키는 것은 반어적으로 이슬람 문제는 보통 민감한 문제가 아니고, 동시에 그 정체성에 대해 미국인들은 여전히 상당한 의구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일 수 있다. 하기는 여론조사를 보아도 그렇다. 65% 이상의 미국인은 회교도 대권주자에게 표를 주지 않겠다는 반응이다. 이것이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 종교가 중요하다는 것으로, ‘이슬람은 과연 무엇인지’ 그 근원적 질문이 미국사회에서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는 사실이 아닐까.
동일한 질문이 유럽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다문화주의가 만개했다. 폭력으로 물들었던 과거사는 청산됐다. 영구 평화의 칸트적 이상이 현실화 됐다. 그렇게 믿었던 유럽이다. 그 유럽이 이슬람 피로증세를 보이면서 새삼 던지고 있는 질문이다.
폭력이 있는 곳에는 이슬람이 있다. 오늘날 유럽의 현실이다. 이 상황에서 유럽은 이슬람에 대해 보다 회의적 시선의 쏟기 시작한 것이다.
유럽의 지식인 세계는 폭력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있다. 한 마디로 야만 그대로의 행태로 밖에 볼 수 없다. 그 폭력상황을 지적하고 나선다. 그러면 바로 뒤따르는 게 살해위협이다. 가정폭력으로부터 탈출하고자 한다. 강제결혼을 거부 한다…. 그도 아니다. 때로는 단순히 서구 감각의 패션을 즐기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억압이 따른다. 회교 율법의 이름으로. 유럽의 모슬렘 커뮤니티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그 피해자는 대부분이 젊은 여성이다.
억압은 많은 경우 살인으로 결말지어진다. 이른바 명예살인이다. 여성의 정숙하지 못한 행위가 가족의, 커뮤니티의 명예를 더럽힌다. 그럴 때 허용되는 명예살인 말이다. 그 희생자가 얼마나 되는지는 아무도 모를 정도다.
그래서 도움에 나섰다. 유럽의 행동하는 지식인들이. 그 중 하나가 네덜란드의 유명한 영화감독 빈센트 반 고흐다. 그 야만성을 영화로 고발했다. 4년 전의 일이다. 그 대가는 목이 잘리는 무참한 죽음이었다.
네덜란드에서만이 아니다. 영국, 스페인, 프랑스 등 유럽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이슬람의 야만성을 고발하고 나선다. 그러면 살해위협이 날아든다.
경호원을 대동하지 않고는 외출할 엄두도 못 낸다. 언제 어디서 죽음이 찾아들지 모르기 때문이다. 유럽의 지성들은 이슬람의 폭력에 숨죽여 지내고 있는 것이다. 무력한 국가 권력은 방관하고 있는 가운데.
유럽에 살면서 회교 율법에 의한 통치를 요구한다. 명예살인도 그 하나다. 그리고 그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폭력상황이 연출된다. 유럽은 내전 직전의 상황으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이슬람은 과연 무엇인가. 허울만의 계시된 종교다.” 이 와중에 나온 질문에, 제시되고 있는 답이다. 외양은 유대교와 흡사하다. 할례를, 그것도 여성의 할례까지 강조하고, 엄격한 기도시간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세계적 종교를 지향한다는 점에서는 또 기독교를 닮았다.
그러나 ‘기독교의 패러디’일 뿐 참된 계시된 종교가 아니다. 새삼 나오는 지적이다.
우주의 창조자가 그 피조물과 함께 아픔을 나눈다. 유대-기독교 전통의 하나님의 모습이다. 약하고 힘없는 자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는 하나님이다. 이런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개념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낮게 겸손한 모습으로 와 인간과 고통을 함께 한다. 아니, 대신한다. 이슬람의 교리에서는 있을 수 없다. 이슬람의 하나님은 항상 전제자의 모습이다. 끊임없는 복종과 순복만 요구할 뿐이다.
이슬람 세계는 하나님의 사랑의 자기계시가 없는 사회다. 내적인 변화가 아닌 복종만 강요한다. 이런 이슬람 문화에서 민주주의의 발달을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다. 근본적으로 페이거니즘적인 사회가 이슬람 사회로, 그 사회는 전체주의가 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천국의 개념은 어딘가 유곽을 방불케 한다. 수십 명의 처녀가 수종을 든다니까.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면 이슬람은 그 자체가 죽음의 문화다. 생명보다 죽음을 더 중요시하는 원시부족적인 종교의 모습이다.
결론은 현대적 의미의 민주주의에, 인권존중 등 가치관은 결국 한 개인 개인이 (창조주로부터) 존중되는 사회의 전유물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슬람은 과연 무엇인가’-. 고난주간을 맞아 다시 한번 질문을 던져본다.
옥 세 철/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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