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일준(전 언론인)
학문과 비학문의 차이를 논리와 비논리로 나눈다면 예술작품을 평가하는 기준으로는 예술적 인상과 기술적 가치를 두 가지 기본 요소로 들 수 있다. 예술적 인상(Artistic Impression)이란 작품을 대하는 이들에게 어느 형태로건 마음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느낌과 감동을 줄 수 있느냐 하는 점이고, 기술적인 가치(Technical Merit)란 그 작품을 만드는데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과 기술적인 연마가 뒷받침 되었는가를 뜻한다.
지난 2월 28일부터 3월 3일까지 뉴욕 제이콥 제비츠센터에서 열린 제 30회 뉴욕 아트 엑스포에는 한국을 포함한 온 세계 미술작가 700여명(신문보도)이 참가하여 과거와 미래를 엮는 오늘날의 현대미술작품들을 선보였다.
이들 작품 중에는 지난 해에도 출품되었던 몇몇 같은 작품들이 간혹 눈에 띄기도 했으나 대부분이 지난 1년여 사이에 제작되거나 뉴욕아트엑스포에 첫 데뷰하는 작가들의 작품으로 주류를 이루었다.
기성작가들 가운데는 한동안,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상품가치의 탑을 달리고 있는 토마스 킨케이드(Thomas Kinkade) -빛의 화가(Painter of Light)로 불리는 그의 작품은 한 작품당 수백, 수천매씩 복사본을 만들어내는 한정판 목판본으로도 인기가 있는데 연평균 20여점의 작품이 제작되어 전세계 딜러들을 통해 수 억달러어치가 팔리고 작가 자신의 개인 순소득만도 연평균 8,000만달러를 넘는다고 한다-를 비롯, 하비(G. Harvey), 슈러스(Schluss)등 현존 유명작가들의 값비싼 작품들이 전시되었다.세간에 비교적 덜 알려진 이른바 신인작가들의 작품들 가운데는 앞서 언급한 두 가지 기본요소가 잘 갖추어져 있으면서도 아직 상품적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수많은 작품들을 접할 수 있었다.
포레스트힐의 한 개인집에서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는 한 여성이 중국본토로부터 실어 날라왔다는 대형 풍경화는 얼핏 보기에는 매우 솜씨있게 잘 그린 한 폭의 풍경화인데 점점이 이어지는 짧은 붓 터치를 실제 가까이서 보면 한 점 한 점이 모두 수실들로 이어진 수공 수예작품임을 알아보게 된다. 이 작품의 경우는 예술적인 감흥과 비교될 수 없는 엄청나게 대단한 기술과 시간과 노력이 기울여진 것으로 보여져 이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그 작가의 모습을 상상하면 가슴 한편이 저려지는 듯한 느낌까지 들게 한다.
전시장 북쪽 귀퉁이 관람객이 뜸한 장소 - 부스 크기와 위치에 따라 자리값이 다르다고 한다 - 한 구석에서 강렬한 원색 위주의 도예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캘리포니아에서 온 동유럽 출신 작가는 도예작품으로는 특이하게 사실화를 도예작품에 따라 그림틀로 걸어 전시하는 독특한 예술세계를 보여주었다.튜로프(Turov)라는 이름의 이 작가는 작품의 독창성과 기술적 노력에 비해 너무 낮은 가격을 제시하고 있는 듯하여 말을 건넸더니 강한 러시아식 억양의 영어로 “오직 정신나간 어느 한 러시아인만이 할 수 있는 작품(Only one crazy Russian does this)”이라면서 비장한 어조로 웃지도 않고 답변한다.
이번 전시회에 참가한 30여명 가량(필자의 추산)의 한인작가들은 이미 작품시장에 이름이 알려진 샘 박 - 주로 유럽의 풍경을 소재로 미국 갤러리를 통해 작품이 거래되며 한정판 목판본의 가격도 만만치가 않다-화백 이외에는 대부분이 한국을 무대로 작품활동을 하는 분들로 소속 화랑을 통해 작품들을 내놓았다.이들 대다수 한인작가 작품들은 얼핏 한눈으로만 보아도 한국화단 작품 시장을 꾸준히 선도해 오고 있는 한국적인 색감(미색 계통의 동양적인 온화함이 드러나는)과 화풍(구상-비구상의 절충적인)이 느껴져서 작가가 한인임을 알기도 전에 동포로서의 친근감이 먼저 앞서가는 느낌을 갖게 한다. 특히 정 갤러리의 간판 스타격인 한풍렬 화백의 작품은 캔바스 조개껍질 가루 위에 동양화와 서양화를 접합시켜 은은하고 신비스런 느낌까지 들게 하는 작가 특유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표현하여 우리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잉어 문양을 도자기에 담아 출품한 젊은 도예작가 명지혜씨의 작품들은 도예에 대한 작가의 무한한 열정이 느껴져 눈에 띄었다.이들 작품들 가운데는 미국의 기존 작품 시장의 인기작가들 작품과 비교하여 전혀 손색이 없는 좋은 작품들이 여럿 눈에 띄어 작품 수준에 비해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작품과 작가들이 여전히 많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들 수준 높은 작가의 작품들이 어떻게 하면 미국을 비롯한 세계의 주류 작품시장에서 정당한 대접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는 또다른 냉혹한 비즈니스의 세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예술에 살고 예술에 죽고’ 애끓는 작가의 작품세계가 ‘비즈니스에 살고 비즈니스에 죽는’ 냉혹한 현실과 타협해야 하는 또다른 세계가 그곳에 있음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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