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기운이 완연하다. 한결 따사로워진 햇살에서 새삼 봄을 느낀다. 봄이 오긴 온 모양이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고 했던가. 분명히 3월이다. 그런데 마음은 여전히 춥다. 유난히 길고 추웠던 겨울, 그 매서운 바람에 너무 움츠려졌던 탓인가.
“북한·미국 ‘싱송 외교’ 시작됐다.” 뉴욕 필하모니 오케스트라단의 평양공연과 관련된 한국 내 보도다. 화려한 무대사진이 큼지막하게 신문 전면을 장식했다. 그 요란함이라니, 마치 새 시대라도 열린 듯하다.
“미국의 스폰서들은 북한 당국자들을 놀라게 했다.” 같은 오케스트라단의 평양공연과 관련된 미국 내 보도다. 북한의 안내자들은 김일성 동상 앞에 헌화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우리를 불러들이기 위해 쓴 비용이면 수백만을 먹일 수 있지 않은가.” 뉴욕 필의 한 바이얼리니스트의 독백이 소개됐다. 사망의 음침한 땅에서 벌어진 뮤즈의 향연. 그 너무나도 언밸런스한 이벤트를 꼬집은 것이다.
“미국쯤이야…. 중화의 힘 보여주자.” 또 다른 한국 내 보도다. 북경올림픽 관계기사다. 중국 선수들이 40개의 금메달을 따 미국을 체치고 메달경쟁에서 1위를 할 것이라는 예상기사다. 그리고 뒤이은 기사는 올림픽을 맞아 공사비 30여억달러짜리 세계 최대 공항 터미널을 완공했다는 내용이다.
‘제노사이드 올림픽’(Genocide Olympic)이란 말이 공공연하다. 미아 패로, 스티븐 스필버그, 브래드 피트 등 할리웃 명사들의 이름이 계속 오르내린다. 천안문 사태 이후 별로 달라지지 않은 중국, 그 중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을 반대하고 나서서다. 메달 수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미국 내 보도의 흐름이다.
같은 사안을 다루었다. 그런데 앵글이 상당히 대조적이다. 무엇이 이 같은 차이를 가져 왔나. 인간, 다시 말해 인권에 대한 관심도의 차이가 아닐까. 지나친 단순비교인지는 모르지만.
수십, 수백만이 학살됐다. 그 인종청소의 주역은 아랍계인 수단 중앙정부다. 아랍 민병대 ‘잔자위드’를 사주해 에너지 자원이 풍부한 수단 서부의 다르푸르 지역의 흑인 주민을 대상으로 조직적 인종청소를 감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 수단 중앙정부를 지원해 인종 학살을 용인하고 있다. 중국이다. 그 나라에서 과연 올림픽을 치러도 되는 것인지. 미아 패로 등 할리웃 스타들이 진작 제기하고 나선 문제다.
유럽 의회도 보이콧에 나설지 모른다. 북경올림픽 다섯 달을 앞둔 현재 중국의 인권상황이 조금도 개선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 분위기에서 영국의 찰스 왕세자도 북경올림픽 개회식에 참석지 않을 계획이다.
무엇이 진정한 올림픽 정신인가. 미국의 북경올림픽 관련 보도는 이 질문으로 일관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권 함양이야말로 진정한 올림픽 정신이다. 미국 등 국제사회가 내린 결론이다. 그러다 보니 중국에서 벌어지고 온갖 인권문제가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 인권문제에는 무관심이다. 혹시 인권문제가 나와도 남의 이야기하듯 한다. 그리고 하드웨어에만 관심을 보이는 것 같다. 언론보도를 통해 한국이 풍기고 있는 인상이다.
과연 그래도 되는 것인지…. ‘올림픽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절규에 가까운 탈북자들의 외침이 들려오는 것 같다. 그래서 던지는 질문이다.
중국은 이른바 사회주의식 ‘화해(和諧)사회’ 만들기에 혈안이다. 올림픽을 앞두고 현 체제하에 전 인민이 조화로운 삶을 살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는 취지에서다. 그 와중에 가장 극심한 탄압을 받고 있는 게 다름 아닌 탈북자들이다.
북경에서의 소요사태는 어떤 경우든 용납될 수 없다. 올림픽을 앞둔 북경당국의 단호한 입장이다. 그래서 취해진 게 ‘탈북자 북경입성 근본봉쇄’ 방침이다. 대대적 단속에 나섰다. 그리고 적발되면 가차 없다. 처형이 기다릴지 모를 북한으로 바로 되돌려 보낸다.
북경당국의 이 같은 정책으로, 수많은 탈북자들이 중국공안에 적발돼 소리 없이 죽음의 길로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한국사회는 무관심이다.
한 가지 위안은 달라진 한국정부의 탈북자 정책이다. “탈북자 문제는 대한민국이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할 시급하고 현실적인 문제다. 보편적 인권문제로, 통일을 위한 첫 걸음이 탈북자 문제다.” 새로 들어선 이명박 정부 당국자의 말이다.
날씨가 한결 풀렸다. 나뭇가지마다 생명이 꿈틀거린다. 소생을 예비하고 있는 것이다. 모두가 축복받는 이 계절의 봄내음이 북녘 땅에도 하루 속히 전해지기를 고대해 본다.
옥 세 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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