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말을 못했다. 무엇을 줄까 물으면 겁먹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바라보았다. 다가가 부르며 사탕을 내밀면 엄마의 치마 속으로 온 몸을 파묻다가 곧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얼굴로 바라보았다. 커다란 눈에는 늘 눈물이 그렁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툭 건드리면 그대로 주르르 흘러내릴 것 같았다. 아이는 엄마 곁에서 한시도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어떤 때는 유모차를 타고 마켓 안으로 들어왔는데 엄마가 그 아이를 한 옆에 세워놓고 장을 보려고 하면 알아들을 수 없는 괴성을 지르며 마구 엄마를 불러 댔다. 엄마의 옷 한 자락을 잡거나 손을 잡아야만 아이는 조용해 졌고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좋은 것을 집어주어도 절대로 받는 법이 없었다. 오직 엄마가 건네주는 것만 받았다.
엄마가 가방에서 인형을 꺼내 주면 품에 꼭 껴안고 내려놓지를 않았다. 때가 꼬질꼬질한 인형이었는데 아이는 인형에다 대고 무엇인가를 계속 소근 거렸다. 얼핏 들으면 둘이 말을 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6살이 넘는 다 큰 아이가 아직도 유모차를 타고 다니는 것하며 엄마 곁에서 잠시도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것 하며 낮을 너무 심하게 가리는 것 등등으로 나는 그 아이가 조금 저능아일 거라고 생각했다.
엄마 혼자 힘들게 아이를 키우는 것이 분명했다. 아침마다 엄마는 아이를 데리고 마켓으로 와서는 우유 하나 아이의 간식 몇 개 그리고 주스와 물을 사서 가방에 넣고는 길을 건너가 버스를 기다렸다. 퇴근길에도 마켓을 들려 장을 보아 집으로 돌아가곤 했는데 언제나 계란 두 세알과 파 한 쪽 양파 하나 그리고 아이 군것질 그것이 전부였다. 가난과 빈곤이 엄마 얼굴뿐만 아니라 인형처럼 눈이 크고 예쁜 아이의 얼굴에도 덕지덕지 끼어 있었다.
어느 날 밤 거의 문 닫을 시간에 한 남자가 헐레벌떡 마켓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처음 보는 사내였다. 아주 특이하게 영어를 구사하면서 그 남자는 자기가 많은 물건이 필요하다고하면서 커다란 박스를 요구했다. 고깃간 루페가 박스를 같다주자 그 사내는 닥치는 대로 물건을 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다른 박스 하나를 더 요구했다. 루페가 박스를 갖다 주면서 혹시 이래놓고는 그대로 나가 버리거나 그대로 들고튀는 녀석은 아닌지 조심하라고 눈을 껌벅 버렸다. 물건이 300달러어치도 넘었는데 도저히 혼자는 들고 갈 수가 없었다. 낮에 같았으면 내 차로 실어다 주면 되는데 밤이라서 그것도 여간 곤란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서로 잠시 망설이고 있었다. 어쩌나. 어쩌나.
그 사내가 택시를 불러 달라고 했다. 택시가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그 사내가 말했다. 자기는 베이커스필드 어디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보통 한 달에 한 번 집을 찾아오는데 이번에는 몇 달 만에 가족을 만나러오는 길이라고, 보통은 일하는 곳에서 물건을 다 사갖고 오는데 오늘은 너무 늦어 못 사고 이 마켓을 들르게 된 것이라고, 집 가까이에 이런 마켓이 있는 줄은 오늘 처음 알았는데 친절하고 깨끗해서 좋다고, 다음부터는 여기에서 장을 보아야겠다고. 그리고 그 사내는 택시를 타고 떠나갔다.
다음날 아침에 문을 열고 야채를 정리하고 있는데 카타리나와 엄마 손을 붙잡고 들어왔다. 유모차도 없이 혼자 걸어 들어왔다. “야! 카타리나가 오늘은 혼자서 걸어왔네!” 오늘은 일 안가느냐고 엄마에게 물었더니 고개를 살랑살랑 흔든다. 카타리나는 처음 보는 장난감을 손에 들고 있었다. 누가 사 주었니 하고 묻는데 어젯밤 그 사내가 불쑥 마켓 안으로 들어서고 카타리나가 “아빠” 하고 부르면서 달려가 손을 잡았다.
그 남자가 카타리나 엄마의 남편이라는 것이 나를 놀라게 했고 그 남자가 카타리나의 아빠라는 사실이 나를 놀라게 했고 무엇보다 카타리나가 벙어리가 아니라는 것이 나를 놀라게 했다. 그 아이는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말 못하는 저능아 카타리나가가 아니라 새 아이, 지극히 정상인 새 카타리나가 되어 있었다.
카타리나는 아빠의 손을 끌고 다니면서 때 묻은 인형에게 했듯이 쉴 사이 없이 재잘거리며 마켓 안을 돌았다.
아빠는 오늘 밤에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한 달 뒤에나 올지 모르겠다고 했다. 가족과 함께 있으면 안 되느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저었다. 자기도 같이 있고 싶은데 사정이 전혀 허락하지를 않는다고 했다.
모처럼 식구끼리의 하루를 즐기기 위해 고기도 잔뜩 사들고 나가는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더니 카타리나가 돌아보며 마주 손을 흔든다. 그것도 처음 보는 일이다.
카타리나가 매일 아빠와 함께 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골목을 돌아서서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서 있자니 카타리나의 환히 웃는 얼굴과 눈물 그렁그렁한 얼굴이 자꾸만 겹쳐 떠오른다.
이윤홍
시인·자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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