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석(정신과전문의/한미문화연구원장)
중국 만리장성 터에 올라서면 그 방대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감탄하면서 안내자의 설명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 건축의 이유가 진시황제의 피해의식 또는 피해망상에 있었다니 한심스럽다. 즉 북쪽 흉노족의 침략이 두려워 이를 영구히 막아볼 생각으로 이 거대한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진시황이 죽은 뒤에도 한 이백년 건축이 계속되었고 수 백만의 젊은이들이 강제징용되어 일하다가 거기에서 죽고 또 그 자리에 묻혔다는 것이다. 독재자의 위력이 얼마나 큰가를 새삼 느끼게 된다.
독재자에 피해의식이 겸하면 그 독재성이 더 방대해진다.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피해의식이 있으며 이를 국민들을 통솔하는데 이용한다. 가장 잔인했던 독재자들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가 있다. 소련의 스탈린, 독일의 히틀러는 그들의 피해의식을 빙자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무참하게 죽였는가! 또 많은 독재자들이 자기의 피해의식을 내세워 필요없이 군대를 대거 확장하고 국방비에 국고의 대부분을 소비하고 국민 단결의 도구로 쓰고 있다.이 피해의식은 개인에게도 막대한 변화를 가져온다. 가장 최근의 큰 예를 든다면 서울 숭례문의 방화소실 사건이다.
범인은 자기 집과 토지를 십년 전 강제 철거당한 뒤 충분한 보상금을 받지 못했다고 느낀 것과 정부기관에 호소했으나 그것도 기각되어 이 두 가지가 피해의식으로 발전되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또 버지니아 공대 대량 살상자인 조승희군을 들 수 있다. 그는 자기 학교 동료들이 모두 돈이 많고 그 돈으로 비싼 사치품을 사고 즐기며 가난한 자기를 괴롭혔다는 피해망상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것을 대량 살상의 이유로 내세워 정당화하고 있다.
피해의식이란 다른 사람이 자기를 해치려고 한다고 생각하거나 해쳤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위의 두 예에서 보듯이 물질적인 피해의식과 정신적인 피해의식으로 나눌 수 있다. 이것이 누가 보나 이해할 수 있는 현실적인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으면 병적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적으로 보아 납득할 수 없을 때 그 잘못된 생각을 지적받고 그것을 고치면 오해한 것이 되고, 아무리 주위사람들이 설득해도 그 생각을 고칠 수 없으면 병적이고 그것을 망상이라고 한다. 이 경우에는 피해 망상이 된다. 가끔 사람들이 이유 없이 자기를 해치려고 한다고 호소하거나 FBI가 자기를 감시하고 있다고 하면서 집 밖으로 나가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을 본
다. 이런 것은 망상이고 정신병의 다른 증상들과 같이 온다. 이것은 병이기 때문에 정신과 의사의 소관이 된다.
일상생활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정상인이 가질 수 있는 피해의식이다.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어떤 사람이 물질적으로 자기에게 손해를 주었다고 느끼는 경우와 자기를 무시한다거나 천대한다고 느끼거나 자기 하는 일을 방해한다고 느끼는 경우이다. 이 느낌은 사실일 수도 있고 오해일 수도 있다. 부정적이거나 열등의식이 있는 사람들은 남을 쉽게 오해하고 피해의식을 가질 수 있다.피해의식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보복심이다. 사소한 말다툼이 큰 싸움이 될 수도 있고, 고소를 할 수도 있고, 극단적으로는 방화나 살인까지 할 수 있다. 더 괴로운 것은 이런 행동을 하고도 그것이 정당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요즘같이 복잡한 세상을 살다보면 가끔 물질적 정신적 피해를 피하기 힘들다. 이것이 피해의식으로 발전하는 것을 피해야 된다. 이러한 느낌은 본인 자신을 가장 괴롭히기 때문이다. 이런 느낌을 받으면 바로 반응을 보일 것이 아니라 직,간접으로 확인한 다음 적절하게 대처해야 된다.
화해 의식을 늘 가지고 있으면 피해 의식을 피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낙천적이 되라는 말은 아니다. 낙천이 심하거나 겸손이 심한 사람은 피해를 입으면서도 그것을 피해라고 생각 않고 ‘좋은 게 좋은거야’ 하면서 무시해 버리려고 하다가 더 큰 피해를 불러오기도 한다.
피해의식의 대부분은 오해이며 모든 오해는 의사소통을 분명하게 함으로써 피할 수 있다.불쾌한 마찰을 피하고 명랑한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모두 의사소통을 분명하게 하고 화해의식을 갖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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