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식(볼티모어)
며칠 전 뉴욕타임스에서 뉴욕 필하모닉의 2월 26일 평양공연 소식을 접하고 매우 기뻤다. 평양 공연 후 28일, 우리 서울에서의 공연도 일정에 포함되어 있었다. 이번 그들의 연주 일정은 대만, 홍콩, 상해, 북경을 거쳐 평양, 마지막으로 우리 한국의 서울이다.
1956년 보스턴 심포니(Boston Symphony Orchestra)가 구소련에서의 연주를 통해 양국 국교 정상화의 시발점이 되어 그 뒤 3년 후, 뉴욕 필하모닉은 레너드 번스타인 지휘로 소련 공연을 다시 가졌었다.그러나 이번 공연은 로린 마젤(Maazel, Lorin)이 지휘봉을 잡는다. 다섯 살의 나이에 바이얼린을 시작한 그는 1930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음악가이다. 연주 곡목은 북한 국가와 미국 국가, 미국 작곡가인 거쉬인의 ‘파리의 미국인’과 마지막으로 체코(보헤미아) 출신 작곡가 드볼작(Dvorak, Antonin)의 신세계 교향곡 제 9번(Symphony No. 9 in E minor, From the New World, op. 95)을 연주하게 된다.
이번 평양 공연의 주(主) 연주곡인 신세계 교향곡은 드볼작이 1892년 미국 뉴욕 음악원장으로 초빙되어 왔을 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기 보헤미아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아이오와주 스필빌을 찾았고, 그 곳 대평원(Prairie)에서 자기 모국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영감을 받아 이 곡을 썼다고 한다. 이 곡은 1893년 바로 이 뉴욕 필하모닉이 뉴욕에서 초연을 한 후 대성공을 한 작품이었으므로 뜻이 더욱 깊다. 반면 이번에 흥미로운 것은 양국이 서로 적대시하던 북한땅에서 서로의 국가를 연주하고 특히 북한땅에서 ‘성조기여 영원하라’는 미국 국가 연주를 허락했다니 믿을 수가 없다. 실로 격세지감(隔世之感)이 아닐 수 없다.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도 냉전기간이었던 1972년 핑퐁(Pingpong)이라는 스포츠로 양국 국교(國交)를 여는데 성공했다. 우리는 이처럼 국교 이전에 운동이나 예술을 통해 양국의 접근을 성공시킨 사례를 많이 알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도 뉴욕 필하모닉이 체제로 꽁꽁 얼었던 북한 사람들에게 좋은 음악을 선사하여 그들로 하여금 음악의 아름다움을 알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그러기에 외신들도 벌써 이 공연을 앞두고 ‘역사를 만든 음악회(History-making Concert)’ 내지 ‘문화적 돌파구(A Cultural Breakthrough)’라는 표현까지 하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걱정스러우면서도 흥미로운 것은 오랜 은둔의 장막 속에 갇혀온 북한사회에서 이 공연을 어떻게 받아들일런지? 1962년 뉴욕시 발레단이 소련에서 공연했을 때 그곳의 한 논평가가 서구 예술은 모두 퇴폐적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미국이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부른 상황에서 북한이 이에 대해 어떠한 반응을 보이고 또 양국의 눈에 어떻게 비추어지려는지? 이러한 상황에 이 연주 실황이 북한 전역에 방영된다고 하니 실로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공연 제의를 받은 뉴욕 필하모닉도 처음에는 북한의 독재정권을 정당화하는 선전도구로 쓸 수 있다는 점을 크게 염려했다고 한다.
바라건대 정치로 풀 수 없었던 것을 이번 뉴욕 필하모닉의 북한 공연으로 그동안 누적되었던 북한과 미국의 적대관계가 봄눈 녹듯이 말끔히 해소되어 양국 국교 정상화에 중요한 시발점이 되고 그것을 계기로 우리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 전체의 평화의 씨앗이 되었으면 한다.뉴욕 필하모닉이 뉴욕으로 돌아온 뒤에도 양국의 우호관계가 계속 증진되기를 바란다는 지휘자로 마젤의 기대는 또한 우리 한민족 모두의 기대이고 염원이라 생각한다.
이번 뉴욕 필하모닉 공연이 반드시 우리와 핏줄이 같은 북한 형제들에게 행복을 주고 또 새봄의 따뜻한 볕이 눈을 녹이듯이 한반도의 긴장 완화에도 크게 이바지 할 수 있을 것과 음악 애호가로서 나는 그들의 평화 전령사로서의 역할과 실력을 높이 평가하며 또 굳게 믿는다.마지막으로 뉴욕 필하모닉의 무궁한 발전과 북한 공연의 성공을 바라는 뜻에서 지휘자 이하 모
든 단원들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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