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의 축복 덕분인가. 2007년 2월10월 링컨이 역사적인 흑인노예 해방을 선언했던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 옛 주의사당 건물에서 대선 출사표를 던졌던 무명의 연방상원의원 버락 오바마가 꼭 1년만인 2008년 2월 현재 민주당 레이스에서 ‘골리앗’으로 여겨졌던 힐러리 클린턴을 앞서고 있다. 출마 선언 당시만 해도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지난 5일 수퍼 화요일에서 힐러리와 대등한 접전을 벌인 후 연승을 거두며 모멘텀을 장악한 오바마 진영에 2008년 2월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회의의 시선’을 ‘경이의 시선’으로 완전히 바꿔 놓은 한달이기 때문이다. 마침 2월은 흑인 역사를 기리는 ‘블랙 히스토리 먼스’. 유독 2월은 역사적으로 흑인들과 관련한 주요 이벤트가 많은 달이다. 오바마가 노예해방을 선언한 링컨이 2월12일생이며 흑인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한 수정헌법 15조가 통과된 날이 2월3일이다.
오바마 돌풍은 경선의 최종 결과와 관계없이 흑인들의 정신세계를 바꿔 놓은 일대 사건이다. 오바마가 출마 선언을 할 때만 해도 흑인 유권자들 사이에는 “과연 흑인이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라는 회의적 인식이 팽배해 있었다. 이 때문에 오바마보다 힐러리에 대한 흑인들의 지지도가 더 높았다.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이 ‘학습된 무기력감’이라고 이름 붙인 이런 현상은 흑인들의 의식을 오랫동안 지배해 왔다.
그런데 오바마가 선전하면서 이런 무력감이 햇빛에 눈 녹듯 사라지는 현상이 뚜렷이 감지되고 있다. 흑인들의 몰표가 그것이다. “우리가 표를 던지면 그가 될 수도 있다”는 새로운 인식이 반영된 결과이다.
이처럼 불과 1년 사이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내고 있는 ‘오바마 현상’을 ‘링컨의 음덕’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 그렇다면 돌풍의 저변에 깔린 키워드는 무엇일까. 오바마가 캠페인을 하면서 가장 받는 질문은 그의 경험부족에 관한 것이다. 그럴 때면 오바마는 “구글을 보라”고 대답한다.
지난주 CBS방송 시사매거진 ‘60분’과의 인터뷰에서도 이 질문이 나오자 오바마는 “경험이란 종종 오래 존재해 왔다는 것을 뜻할 뿐”이라며 “인터넷 업계에서 구글보다 먼저 시작한 많은 업체들이 있지만 구글이 잘하고 있지 않은가”라고 간단명료하게 대답했다.
오바마는 자신이 구글과 상당한 일체감을 느끼고 있음을 감추지 않는다. 재미있는 것은 구글도 오바마를 그렇게 여긴다는 점이다. 정치헌금 내역을 보니 구글 직원들은 압도적으로 오바마를 지지한다. 반면 기득권을 상징하는 마이크로소프트 직원들의 헌금은 힐러리에게 몰리고 있다.
감정적 동질감은 차치하고라도 오바마 돌풍과 구글의 성장전략을 살펴보면 적지 않은 공통점이 발견된다. 무엇보다도 ‘선택과 집중’이 그렇다. 구글이 검색으로 대표되는 회사의 핵심 사업에 역량의 70%를 집중하고 있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오바마는 지난 1년간 변화의 메시지를 선점하고 이를 전파하는데 역량을 쏟아 왔다. 이것 때문에 “‘해결 비즈니스’는 등한시 하고 ‘약속 비즈니스’에만 치중 한다”는 비판도 받고 있지만 유권자들의 표심을 제대로 읽은 전략임이 판명되고 있다.
두 번째로 후발주자로서 기득권층의 요구에 좌고우면하지 않는 배짱이 비슷하다. 구글의 가장 근본적인 성공요인은 물론 우수한 검색기술에 있었지만 수익보다는 사용자를 먼저 생각하는 경영방식이 뒷받침이 됐다. 돈을 받은 대가로 특정 검색결과를 상위에 보여주지 않은 것은 수익을 우선시하는 기존 업체라면 엄두를 내기 힘들었을 결정이다. 후발업체로서 잃을 것이 별로 없다는 과감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오바마 역시 잃을 것이 별로 없는 입장이었다. 그는 캠페인을 하면서 ‘버텀 업’(Bottom Up)을 입에 달고 다닌다. 기득권층의 헌금과 지지에 기대지 않고 밑으로부터의 지원에 ‘올인’하는 전략이다. 이 전략이 잘 먹혀 오바마 캠페인은 성공적인 풀뿌리 선거전의 전형이 되고 있다.
또 오바마의 솔직함은 구글의 기업이념과 맞닿아 있다. 구글은 지난 2004년 ‘사악해 지지 말자’(Don’t be evil)를 기업이념으로 내세웠다. 종교기관에나 어울릴 것 같은 이런 사시에는 왜 구글이 사용자들의 신뢰를 얻고 있는지가 잘 드러나 있다.
오바마는 그의 자서전을 통해 마약에 손댔던 젊은 날의 실수를 담담히 그리고 상세하게 털어 놓고 있다. “빨기는 했지만 삼키지는 않았다”는 빌 클린턴 식의 변명과는 다른 솔직함을 보였다. “언론이 오바마에게 너무 관대하다”는 클린턴의 볼멘소리에도 불구하고 언론과 유권자들은 이미 자서전을 통해 털어 놓은 그의 과거를 별로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기업이나 개인이 실수를 하는 것은 사악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을 은폐하거나 호도한다면 그것은 사악한 행위다.
오바마는 현재 성공가도를 질주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최종적으로 ‘정치판의 구글 신화’를 만들어 낼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일이다. 조그만 악재에도 추락하곤 하는 것이 주식시장에서 고공행진을 하는 신생주들이기 때문이다. 우선적으로는 오는 3월4일 ‘미니 수퍼화요일’ 장세가 중요한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하지만 그가 지금까지 거둔 성공만으로도 시장에 늦게 발을 디딘 후발주자들이 경쟁에서 살아남고 앞서가기 위해서는 어떤 전략과 태도가 필요한지 잘 시사해 주고 있다고 본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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