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병렬(교육가)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무엇일까’ 몇 사람이 모여서 의견을 말하였다. ‘몇 해 전 동남아에서 일어난 쓰나미를 생각해 봐요. 뉴올리언스의 물난리는 어떻고’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히로시마 원자탄과 9.11사태는 어때요. 물론 인재(人災)였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불의 위력이지요’ 이번에도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옛부터 ‘불과 물’이 인류의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불과 물이 우리 생활을 돕고 있다는 점이에요’ ‘그렇다면 불과 물의 공과를 따질 때 어느 편이 더 소중할까요’ 이 문제는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공헌하는 일이 크지만, 큰 만큼 불과 물이 해를 끼치는 일도 엄청나고 많다고 볼 수 있다.
불은 물체가 열과 빛을 내며 타는 현상을 말한다. 인류가 처음으로 발견한 불은 화산이 터질 때, 번갯불, 산불 등 자연의 불이었다. 처음에는 무서워서 피하던 불을 인류는 생활에 이용할 줄 알게 되었다. 나아가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불을 일으키는 방법을 알게 되어 인류 문화를 탄생시키는 원동력으로 삼게 되었다. 한편 이 불로 인한 화재는 오늘의 문명 사회의 커다란 문제가 되고 있다.
물은 어떤가. 지상의 모든 생물은 물이 없인 살 수 없다. 생물의 몸 성분에는 반드시 물이 섞여 있다. 사람의 몸을 이루는 성분 중 약 70%가 물이며, 어느 생물의 몸에도 물이 있다. 생물들은 매일 물을 마시지 않고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상식이다. 하지만, 이런 물도 인류에 끼치는 해독 역시 막대하다. 불과 물의 위력은 한 번 터지면 하나도 남기는 것이 없이 싹쓸이하는 버릇이다. 그래서 도둑보다 무섭다는 옛 말이 있다.
‘그런데 불과 물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어요’ ‘그게 뭔데…’ ‘바로 사람이지요’ 그의 말에 모두 어안이 벙벙하게 되었다. 사람에게 사람이 무섭다는 말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어두운 밤길을 걷고 있을 때 어두움은 첫째가는 두려움이다. 그런데 거기서 사람을 만난다면 그는 어두움 보다 더 두려운 존재가 된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것은 그 정도가 아닌 더 큰 두려움을 말한다.
뉴욕의 9.11 사태, 한국의 숭례문 방화 사건을 생각해 보자. 그것들은 틀림없는 사람이 저지른 재난이다. 그래서 사람이 불·물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될 수 있다. 사람이 무서운 존재로 변하는 데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 그 원인이 다른 사람들에겐 이해가 될 수도 있고, 때로는 이해하기 곤란할 때도 있다.숭례문을 방화한 사람은 본인에 대한 국가의 보상이 적었던 것에 원한을 품고 일을 저질렀다고 말한다. 그는 분명히 분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국보 제 1호를 파괴하겠다는 생각은 이해하기 힘들다. 말하자면 그는 분을 어떤 방법으로라도 풀어야 하였지만, 국보와 연결을 지었던 판단력은 방향 감각을 잃었다. 그 일 때문에 610년 동안의 역사 건물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한국 내외 한인들의 마음에 구멍이 뚫려 허전하게 되었다.
울고 싶은 사람은 울리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뚝, 울음 그쳐’ 보다는 울면서 자기 스스로 마음을 제어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좋다고 한다. 화가 나서 씩씩거릴 때 펀치볼을 실컷 두들기게 하면, 그 행동을 통하여 분을 풀게 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들은 슬픔이나, 화가 마음에 남아서 행여 판단력을 그르치기에 이르지 않도록 예방하는 수단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사람도 분명히 무서운 존재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도 두 가지 방향이 있다. 이 무서운 잠재력이 방향을 잘 잡았을 경우를 본다. 침식을 잊고 피나는 노력으로 연구한 결과 온 민족이 다년간 먹고 살 수 있는 발명품을 생산하였다면 올바른 무서움의 발산이다.
이와 반대가 되는 무서움을 예방하기 위하여 국가나 사회단체가 올바른 판단력을 기르고, 불만이나 불평을 품지 않도록 시설이나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개인의 인간 관계도 상대방에게 큰 아픔을 주거나, 타인을 궁지에 모는 언행을 삼가야 하겠다. 또한 본인이 분함이나 화를 스스로 잘 풀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일이 현명하다. 내 자신이 나쁜 의미의 무서운 존재가 되어서야… 언제나 정다운 존재가 되어야지. 불·물의 재난은 예방책을 강구해야 하고, 사람의 무서움은 각자의 마음 다스림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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