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들과 함께 산보하는 짐 세라 부부. 부모와 자녀, 그리고 손자손녀등 3대가 함께 모여살수 있는 다세대 주택단지가 인기를 끌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 60대 들어서며
자녀와 손자들 가까이 살려는 추세
장년·젊은층 함께 사는 주택단지 개발붐
베이비 붐 세대가 60대로 들어서면서 미국에서 부모와 자녀들이 가까이 모여 사는 추세가 강해지고 있다. 자녀들이 결혼해 자기 가정을 갖고 나면 부모들과 자주 시간을 가질 수 없는 것이 현실. 마음은 있어도 사는 지역이 멀면 몇 달에 한번 서로 얼굴 보기도 어렵다. 이들 부모와 자녀가 가까이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는 사실을 간파한 부동산 개발업자들이 새로운 주택단지를 건설하고 있다. 은퇴 주택단지와 일반 주택단지를 나란히 붙인 단지이다. 이들 단지를 중심으로 2대, 3대가 오순도순 모여 사는 21세기형 대가족 바람이 불고 있다.
플로리다 중부, 딜랜드에 빅토리아 가든스라는 새 주택단지가 조성되었다. 올랜도에서 35마일 북쪽에 위치한 이곳은 55세 이상 장년층을 위한 고급 주택단지. 은퇴자들을 위한 커뮤니티이다.
그런데 세련되게 꾸며진 모델 하우스를 둘러보면 뭔가 이상한게 눈에 뜨인다. 게스트 룸 중 하나가 어린이용 가구에 핑크빛 침대보, 장난감들로 장식되어 있는 것이다.
은퇴 부부 사는 집에 어린이 방이라니? 언뜻 이해가 안 되는 이런 주택이 지금 미국에서는 서서히 개발붐을 타고 있다. 부모와 성인 자녀들이 서로 가까이 살고 싶어 하는 바람을 반영한 다세대 커뮤니티이다.
미전국의 7,900만 베이비붐 세대 중 가장 나이 많은 그룹이 올해 62세가 된다. 노부모가 아직 생존해 있을 수도 있고 자녀들은 결혼해 자녀를 갖고 그 자녀들이 또 자녀를 가지는 나이이다. 이들 베이비부머들을 중심으로 2대, 3대가 가까이 모여 사는 추세가 생기면서 이들 다세대를 겨냥한 주택단지들이 개발되고 있다.
55세 이상 연령층 대상 주택단지를 건설하면서 바로 옆에 일반 주택단지를 같이 조성하는 것이다. 부모는 은퇴자 주택단지에, 자녀는 일반 주택단지에 집을 마련하면 각자 사생활을 지키면서도 수시로 오갈 수가 있는 편리함이 있다.
비슷한 시도가 독일에서도 있었다. 유럽의 많은 국가들은 늘어나는 노인 인구와 낮은 출산율로 골치를 앓고 있다. 독일도 같은 문제로 고심했다. 이때 독일이 시도한 것이 다세대 주택단지 개발이었다. 노년층 옆집에 젊은 세대 가족이 살도록 하는 것이었다. 서로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노인들과 젊은이들은 종종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위로가 되는 좋은 이웃관계로 발전했다.
미국에서 다세대 가족이 늘어나는 것도 길어진 기대수명과 늦어진 출산연령과 상관이 있다. 이들에게 인기 있는 주택단지 개발사 중 하나는 펄트 주택. 55세 이상 연령층을 위한 남부 은퇴 커뮤니티 개발로 유명한 회사이다. 이 회사 산하 델 웹은 애리조나, 네바다, 콜로라도에 앤텀 주택단지 건설을 시작했다. 55세이상이라는 연령 제한이 없는 주택단지이다. 이 회사는 비슷한 단지를 노스캐롤라이나와 플로리다에도 부분적으로 건설하고 있다.
딜랜드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한 지미와 젠 던돈(38) 부부는 원래 200마일 남쪽의 사우스 플로리다에서 세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었다. 이들 부부는 복작복작한 사우스 플로리다 보다 소도시의 조용한 분위기에서 살고 싶은 것이 오래전부터의 바람이었다. 아울러 25분 거리에 사는 젠의 부모와도 그들은 계속 가까이 살고 싶었다.
마땅한 곳을 찾던 그들은 딜랜드의 빅토리아 팍에 관한 뉴스를 들었다. 젠의 부모인 짐과 매리앤 세라 부부가 주택 구입을 결정하면서 두 집은 나란히 이사를 했다.
1,895에이커에 달하는 광활한 이 주택단지는 두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55세 이상으로 연령이 제한된 빅토리아 가든스와 거기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일반 주택 단지, 빅토리아 힐스이다. 던돈 부부는 빅토리아 힐스에 그의 장인장모인 세라 부부는 빅토리아 가든스에 각각 집을 장만했고 그 집 게스트 룸중 하나는 어린이 방이다.
던돈 부부와 세 딸들, 그리고 세라 부부의 3대는 최소한 한주에 한번씩 만나고 수시로 도움을 주고받는다. 3 손녀들은 한달에 세 번은 할아버지 할머니 집에서 지낸다. 부모가 바로 옆집은 아니면서도 아주 가까이 있다는 사실에 던돈 부부는 매우 만족한다.
그런가 하면 빅토리아 팍의 또 다른 주민인 캐시 업다이크(55)와 네이던 업다이크(59)부부는 70대인 캐시의 노부모를 가까이서 모시고 있다. 캐시의 부모는 과거 2시간 떨어진 곳에 살고 있어서 두어달에 한번밖에는 서로 만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4남매 중 맏이인 내가 부모님을 모셔야 겠다”는 생각을 캐시가 하면서 노부모에게 이사를 권유했다. 현재 그들은 같은 주택단지 내에 살면서 매주 한번씩 만나고 있다.
거리와 세대의 벽 허무는 다세대 커뮤니티
부모, 자녀, 손자손녀가 가까이 모여 사는 다세대 커뮤니티는 과거의 대가족 시스템과는 약간 다르다. 200년전, 혹은 100년전만 해도 으레 식구들이 같이 살았던 대가족 제도는 여러 세대가 한 지붕 밑에서 같이 사는 구조.
반면 다세대 커뮤니티는 식구들이 세대별로 각자의 집에서 살지만 거리가 아주 가까운 것이 특징이다. 이들 다세대 주택단지는 대개 한편에는 골프장과 단층집들이 있고 좀 내려가면 어린이 놀이터와 학교 주위로 큰 개인주택들이 자리 잡는 구조이다.
그래서 부모나 시부모, 혹은 장인장모가 가까이 살아 좋지만 그렇다고 너무 가깝지도 않아 좋은 것이다. 이같이 부모, 형제자매, 이모·고모, 삼촌 등 사랑하는 가족들이 서로 모여 사는 것은 9.11 테러 이후 부쩍 늘어난 추세이기도 하다.
부모 자녀 세대가 이렇게 가까이 살아서 좋은 점은 우선 자주 만날 수 있다는 것. 일요일 저녁이나 생일, 명절 등 언제든지 여러 가족이 쉽게 모일 수가 있다. 아울러 어린 아이들을 키우는 부부에게 가장 좋은 것은 베이비시터 걱정이 없다는 것. 언제든 아이들을 봐달라고 부모에게 부탁할 수 있는 것이 큰 이점이다.
2대, 3대가 함께 모이는 이런 주거방식이 새삼 인기를 끄는 것은 교통지옥과도 상관이 있다. 교통체증 때문에 한번 씩 오가는 일이 보통 힘든게 아니기 때문이다. 5분, 10분 거리에 가까이 살면 길에서 시간과 에너지를 다 허비하는 수고를 면할 수가 있다.
아울러 노부모와 가까이 사는 데는 경제적인 이유도 있다. 양로원 등 24시간 노인들을 돌보는 시설은 엄청나게 비싸서 웬만한 자녀들은 부모를 그런 곳에 모실 수가 없다. 그래서 자녀들은 가능한 오래 노부모가 집에서 살면서 자신들이 돌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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