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대통령이 2차 대전 이후 미국의 대통령 가운데 ‘최악의 대통령’으로 지목됐다. 해리스 인터액티브의 여론조사 결과다. ‘최고의 대통령’으로는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뽑혔다. 예상대로다. 미국의 가장 ‘위대한 대통령’하면 항상 거론되는 게 루즈벨트니까.
이 여론조사는 한 가지 재미있는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은 아마도 사상 최악의 시대를 맞고 있을 것이라는 점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부시 다음 최악의 대통령으로 빌 클린턴 대통령을 꼽았기 때문이다.
42대, 43대 대통령이 꼴찌서 둘째, 첫째를 나란히 마크했다. 그러니 그 16년의 세월은 최악이란 등식이 성립되는 것이다. 과연 맞는 평가일까.
역사는 현재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기술된다. 역사는 그러나 미래를 향해 전진한다. 한 역사가의 정의다. 역사적 평가라는 게 그만큼 어렵다는 말이다. 현직이나, 같은 시대의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특히 그렇다는 것이다.
‘현재’라는 시간에 갇혀 있다. 그 상황에서는 스토리가 장차 어떻게 결말이 날지 모른다. 그러니 보이는 현상만 가지고 판단하려 든다. 그 판단은 때문에 잘못되기 십상이다.
더 어려운 건 전시(戰時) 대통령에 대한 평가다. 뒤에 와서 보면 상황은 일목요연해 보인다. 그러나 ‘현재’란 세팅에서는 전쟁에 이길지, 질지 그저 캄캄할 뿐이다.
지지율은 28%였다. 신문마다 비난 일색이다. 여론에 쫓겨 재출마도 포기했다. 그리고 쫓기다시피 백악관에서 나왔다. 트루먼 대통령이다. 한국전 참전결정 반대여론의 희생자가 된 것이다. 트루먼은 그러나 오늘날 루즈벨트에 버금가는 위대한 대통령으로 평가된다.
촌놈이라는 욕이 아예 노골적이었다. 흑인 노예해방 선언도 ‘청교도의 도덕적 오만’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비난이 난무했다. ‘하늘 아래 이런 무능한 대통령이 있을 수 있을까’- 한결 같은 신문의 논조였다.
전황이 극히 안 좋았던 1863에서 1864년 가을, 그 암울한 시기에 링컨에게 쏟아진 비난이었다. 게티즈버그 전투 이후 상황은 일변한다. 북군은 결정적 승세를 타면서 링컨에 대한 비난은 사라졌다. 오늘 날 링컨은 항상 미국의 ‘가장 위대한 대통령’이란 찬사를 듣고 있다.
그 반대의 경우도 하나둘이 아니다. 갈채와 환호 속에 백악관을 떠났다. 끝까지 높은 지지율을 유지해 온 것이다. 그러나 후세의 평가는 말이 아니다. 워렌 하딩, 율리시즈 그랜트가 그랬다.
왜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어려운가를 알려주는 역사의 대목 대목들이다. ‘위대한’으로 평가되는 대통령들은 그렇지만 한 가지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용기라는, 어찌 보면 국가 지도자에게 가장 먼저 요구되는 덕목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전례가 없다. 그런 엄청난 도전에 직면한다. 그 상황에서 결코 주저앉지 않는다. 과감하게 응전을 한다. 그리고 엄청난 용기와 소신으로 대처해 나간다.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평가되는 워싱턴·링컨·루즈벨트, 이 세 지도자의 공통점이다.
위기에 봉착했다. 그럴 때마다 용기와 소신의 대통령이 국난을 극복했다. ‘가장 위대한 대통령’들뿐이 아니다. 잭슨에서, 트루먼, 케네디에 이르기까지 그런 위대한 대통령이 하나둘이 아니다. 미국으로서는 행운이었던 셈이다.
부시에게 다시 초점을 맞추자. 그는 여론조사대로 최악의 대통령으로 기록될까. 그 확률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부시에게는 ‘모가 아니면 도’란 식의 평가를 받게 될 것이라는 말이 항상 따라 붙어서다.
대통령으로서 부시의 운명은 이라크 전쟁이 쥐고 있다. 이 전쟁에서 진다. 미국의 위상은 말이 아니게 된다. 막대한 전비지출로 경제는 파탄에 이르고. 이 경우 부시는 ‘최악’에 가까운 평점을 받게 된다. 부시의 인기가 바닥을 헤매는 것도 이런 비관적 전망에서다.
여기서 제기되는 질문이 있다. 영어로 ‘if not…’의 질문이다. 이라크 지상군 증강정책이 성공을 거두면서 강력하게 제기되는 질문이다. 동시에 이는 또 다른 기대를 낳고 있다. 부시는 어쩌면 트루먼과 비교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다.
’부시의 내러티브’(narrative)는 아직 끝난 게 아니다. 그러니 평가는 시기상조다.
어쨌거나 이제 관심의 대상은 떠나는 부시가 아니다. 새 대통령 후보다. 오바마와 힐러리, 그리고 매케인이다. 이 셋 중에 전시를 이끌어갈 ‘용기 있는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가장 큰 사람은 누구일까.
‘대통령의 날’에 새삼 던져보는 질문이다. 과연 누구일까….
옥 세 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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