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 딕’(Moby Dick)은 허만 멜빌의 소설(1851)에 나오는 성난 거대한 흰 고래의 이름이다. 선장 에이허브는 다리 하나를 모비 딕에게 잃은 후 광적인 복수심에 불타 백경(白鯨) 사냥에 사활을 건다. 마지막 운명의 대결에서 선장은 작살을 모비 딕에게 던진다. 고래는 복수의 화신 에이허브를 포경선과 함께 수장시키고 만다.
중학생 땐가 영화 ‘모비 딕’을 보았었다. 명우 그레고리 펙이 선장으로 분했던 영화에서 그의 광기 서린 풍랑 위의 사투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어릴 땐 선장의 용맹과 모험심에 박수를 쳤었다. 그러나 이젠 인간의 맹목적인 파괴 집념이 거대한 자연의 섭리를 결코 넘어설 수 없다는 상징성에 공감이 간다.
고래도 희로애락의 감정이 있는 걸까. 물론 그럴 것이다. 난폭한 냉혈어족인 식인 상어와는 달리 온혈동물인 고래는 평소 성격이 유순하고 명랑하다고 한다. 온몸을 솟구쳐 오르는 회오리 춤도 기쁨의 표현이란 것이다. 바다 한가운데서 고래 등을 쓰다듬는 사람들과 서로 교감을 즐기는 모습도 낯익다.
고래는 강한 모성애로도 유명하다. 사람처럼 한 마리씩만 낳아 근 1년을 곁에 두고 젖을 먹여 키운다. 이 끈끈한 혈육의 정을 악용해 옛 포경선들은 새끼고래를 먼저 잡곤 주위를 돌며 안타까이 우는 어미 고래들을 작살로 죽였다. 1960~70년도만 해도 매년 6만~7만여마리나 잔인하게 죽였다.
고래는 우는 것일까? 청고래나 험프백 같은 수염고래들은 신음소리 같은 높은음을 십여 분씩 간헐적으로 낸다. 그런데 이는 감정표현이라기보다 생존수단으로서의 울음이란 게다. 슬퍼서 울 때가 있는지 모르지만 고래는 길을 밝히고, 먹이를 찾고, 대화하고, 적에게 경고하기 위해 운다. 신비롭게도 성대가 없는 수염고래들이 어떻게 우는지는 아직도 수수께끼다.
향유고래나 돌고래 같은 이빨고래들의 울음은 좀 다르다고 한다. 머리 쪽 공간을 이용해 소리를 낸 후 메아리쳐 돌아오는 반사음을 감지한다. 자연적인 소나 장치인 것이다. 평소엔 약한 저주파로 먹이를 찾고 지형을 살피다가 먹이를 공격할 때면 고주파를 쏘아 방향감각을 교란시키기도 한다. 이빨고래들은 음향탐지 능력으로 바다 속을 입체적으로 꿰뚫어본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래들의 울음소리는 그들의 생존에 필수요건이다.
사람들은 일찍부터 고래들의 음향반사 능력이 얼마나 요긴한지 깨달았다. 20세기 초 바다 속을 레이더로 꿰뚫어 볼 수 있는 소나 시스템이 발명된 후 2차 대전 때 그 위력을 발휘했다. 이젠 어선마다 소나를 장착해 고기떼를 쫓을 만큼 보편화되었다.
강력한 고주파 소나를 가장 대규모로 사용하는 곳이 미 해군이다. 9.11 사태가 난 후로는 사용규모가 대폭 늘었다. 테러리스트들이 잠수정으로 미 서부해안에 잠입하는 가상 시나리오를 세워놓고 고주파를 터뜨리고 있다. 고주파는 작은 물체까지 선명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500Khz까지 강력한 고주파는 고래들의 고막과 두뇌를 심하게 손상시킨다는 것이다.
2000년 바하마에서 미 해군 훈련 중 수백 마리의 고래들이 해변으로 집단 표류사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 원인이 대규모 고주파 영향이라고 추정한 미 의회는 고래 이동지인 남가주 해안 12마일 이내에서의 소나 사용 금지를 법제화했다. 그런데 올 연초에 부시 대통령은 이를 파기한 것이다. 미 해군 소나 훈련은 국가안보와 직결돼 있다는 명목으로 법 면제 문서를 발부했다. 불길 같이 일어난 생태학자들과 환경 지킴이들의 극심한 반대를 일축했다.
그런데 지난 주 한 무명의 연방판사가 대통령의 명령을 불법이라고 판결했다. 미국다운 소신 있는 판결이었다. 이 사태를 보면서 부시의 얼굴이 성난 에이허브 선장의 얼굴과 겹쳐 보이는 건 내가 과민한 탓일까? 어느 누구의 작살로도 결코 위대한 자연의 섭리를 죽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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