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의 예선을 계기로 민주·공화 양당의 대선주자가 어느 정도 정리된 듯 싶다. 이날 뉴욕과 캘리포니아 등 24개 주의 예선 결과 공화당에서는 매케인 후보가 지명될 것으로 거의 확실히 되었고 민주당에서는 힐러리 후보와 오바마 후보가 백중세를 이루고 있는 형국이다.
이들 3명의 후보는 출신 배경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치성향과 정책 방향도 크게 다르다. 변화를 내세우면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오바마는 두 말 할 것도 없이 가장 진보적이다. 공화당의 매케인은 보수주의의 대표격이다. 이에 비해 힐러리는 중도진보 성향으로 다른 두 사람의 중간쯤에 있다.
이번 미국 대선이 역대의 어느 대선보다도 더 세계 각국의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고 외신은 전하고 있다.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미국의 부시정부와 갈등을 빚었기 때문에 부시정부가 끝나는 이번 대선에 관심이 있을 뿐 아니라 앞으로 미국의 대외관계 변화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미국은 이라크전쟁을 둘러싸고 전통적으로 우호관계였던 유럽의 여러 나라들과 사이가 벌어졌었는데 이 이라크 전을 어떤 방향으로 해결하고 국제관계를 어떻게 복원하느냐 하는 문제가 이번 대선 결과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외신에 따르면 유럽은 자유주의적이고 진보적인 오바마를 좋아하고 있으며 아프리카에서는 흑인인 오바마를 열광적으로 지지하고 있다고 한다. 아랍 국가들은 부시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좋다는 입장인데 그 중에서도 오바마를 가장 선호하며 이스라엘은 보수적인 매케인을 가장 선호하면서 힐러리도 무난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또 러시아는 크렘린에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매케인만 아니라면 공화당 후보의 당선을 원한다는 소식이다. 만약 미국에서 진보세력이 득세하여 유럽과 밀월관계가 된다면 러시아에 득이 될 것이 없다. 그보다는 미국이 패권주의로 일관하며 유럽과 사이가 벌어진 가운데 러시아와 세계 패권을 양분하는 구도를 형성하는 것이 러시아로서는 바람직할 것이다.
중국은 어느 후보를 선호하는지 알려지지 않았는데 입장이 어려울 것 같다. 동북아의 안정을 위해서는 외교정책이 유연한 민주당이 좋지만 이 지역의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급격한 변화와 미국의 적극적 개입 의사를 밝히고 있는 민주당의 승리를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 특히 대미수출 의존도가 높은 중국으로서는 상대적으로 보호주의적 색채가 짙은 민주당의 승리가 걱정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미국 대선에 걸려있는 한국의 이해관계는 어떤가. 지금 한미관계에서 큰 현안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북핵문제 등 대북관계이며 또 하나는 한미 FTA이다. 대북문제에서 매케인은 김정일 정권을 최악의 정권으로 보고 양보는커녕 상대조차 하지 않겠다는 강경입장이다.
오바마는 김정일과 만나 직접 대화를 하겠다는 적극적 입장이다. 힐러리는 북한과 직접협상으로 핵문제와 관계 정상화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으로 과거 클린턴 정부의 수준인 것 같다. 한미 FTA에 대해서는 매케인이 적극 지지하고 있는 반면 오바마와 힐러리는 미국 노조의 눈치를 보면서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매케인이 당선된다면 한미 FTA는 잘 되겠지만 한국의 대북관계가 경색될 수도 있다. 한국 뿐 아니라 북한은 미국의 강경방침 때문에 선택의 폭이 좁아질 것이다. 북한은 긴장감 조성으로 대응할 수 있지만 얻을 것은 별로 없게 된다. 경제가 더욱 어려워지면서 체제의 불안정상태가 가중될 것이다.
그렇다고 오바마나 힐러리가 당선된다고 뾰족한 수는 없다. 한국은 FTA에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고 만약 미국이 북미관계에 적극적으로 나설 경우 한국이 뒷전으로 밀려날 수도 있다. 또 북한은 개방을 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는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 여러 나라들의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이번 미국 대선은 특히 한국에 중요한 선거이다.
누가 대선에서 승리하든 미국은 지금과는 달리 크게 바뀌기 때문이다. 미국 대선의 추이를 관심 있게 지켜보면서 각 후보에 대한 분석과 대응 시나리오를 미리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기영
뉴욕지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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