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를 뽑는 경선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에서는 새로 뽑은 대통령의 취임이 다가오고 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대통령제를 택하고 있고 입법, 행정, 사법 3부의 독립된 정부 조직을 갖는 민주정치를 표방한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민주주의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정치는 양당정치가 오래 뿌리내리고 있다는 점에서부터 막강한 권한이 부여된 대통령을 선거인단이 선출한다는 것, 이를 견제하는 상원 우위의 양원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 등 특이한 면을 보이고 있다.
이에 반해 민주주의의 역사가 짧은 한국에서는 그동안 수많은 정당이 부침과 굴곡을 거듭하여 지금은 정당의 이름조차 제대로 뇌일 수 없을 정도가 되었는데, 이러한 사실 하나 만으로도 한국의 정치가 얼마나 어지러웠던가를 가늠할 수 있다.
한국의 정치에서 수많은 정당이 등장했다 사라지고 통합과 분열을 거듭했다는 사실은 한국의 정치와 정부가 거대하다는 점도 암시한다. 이는 나라의 덩치에 비해 정치나 정부가 그렇게 크다고 느껴지지 않는 미국과 대조되는 점이다.
한국과 미국은 정치나 정부를 대하는 일반인들의 자세에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 한국의 숨 가쁜 정치 현실을 경험하다가 미국에 와 보면 정치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한국에 비해 훨씬 낮다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은 일반인들의 평소 대화에 정치가 좀처럼 화제로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읽을 수 있고, 또 이렇게 선거 때가 되면 드러나듯이 투표 참여율이 낮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한국은 오는 4월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거를 앞두고 금배지를 달아보려는 사람들이 지금부터 줄을 서고 있다. 인구 5,000만의 한국은 국회의원의 수가 299명으로 약 16만 명당 한 사람의 국회의원을 선출하고 있지만, 남한 인구의 여섯 배인 3억의 인구를 가진 미국은 상, 하원을 합친 의원의 수가 535명으로 인구 65만 명당 한 명의 대표자를 선출하고 있다. 여기서도 한국 정치의 거대함을 볼 수 있다.
때로는 아주 느슨하다고 여겨질 정도의 미국의 정치현실에 비해 한국은 정치와 정부에 대하여 지나칠 정도의 높은 의존도를 보이고 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무슨 일이든 잘 안 되면 정부에 대해 항의하고 데모를 벌이고 인터넷으로 공격하고 비난하는 국민저항 현상이 일어난다.
이러한 상황에서 출발하는 새 정부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통하여 밝히고 있듯이 과감한 수준에서 정치와 정부를 개편할 방침이어서 기대를 주고 있다. 새 정부는 정치와 정부는 작을수록 좋다는 고금의 지혜를 살리려는 의도인 것 같다. 그래서 한국의 새 정부가 추진하려는 정부 조직 축소와 개편 방침에 지지를 보내지만 한편으로는 잘 될까 하는 의문도 따른다.
이왕 정치와 정부를 축소시키려면 차제에 국회의원의 수를 줄이는 것은 어떨지. 자유시장경제의 확산과 발전을 도모하려는 차제에 기업은 물론이고 학교, 병원 등의 설립과 운영에 관한 획기적인 규제 철폐 및 완화 나아가 대폭적인 민영화 정책을 펴는 것은 어떨지.
아울러 부서들은 통폐합되는지 모르지만 그 기능과 역할은 여전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 실패의 대명사가 된 교육정책을 교육과학부로 축소, 통합한다지만 한편에서는 정부가 영어교육을 책임지겠다고 하는 말도 들리고 있어 정부의 간섭이 계속되고 새로 편성되는 교육과학부의 할 일도 여전히 많으리라는 짐작이다.
출범도 하기 전에 새 정부의 의욕과 의지에 찬 물을 끼얹으려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라는 기구가 하는 일이 벌써부터 크고 막강한 ‘정부’의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아 두려운 느낌도 든다. 명심할 것은 정치와 정부가 하는 역할과 기능이 지나치게 커진 형태가 바로 공산주의, 사회주의 체제라는 것이다.
한국의 새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는 그동안 거대 정치, 비만 정부에 몸과 마음이 쩔어 있던 정치지도자들은 물론이고 일반 국민들의 의식과 자세에서 정치나 정부에 대한 지나친 의존 성향을 배제하고 각자가 자기의 삶을 책임지는 자세를 갖도록 계도하고 이에 걸맞은 정책을 펴는 일이다.
장 석 정
일리노이 주립대 경영대 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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