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버락 오바마 후보를 본 것은 1990년 매서추세츠주 캠브리지에서였다. 같이 있던 사람이 추운 겨울날 먼 곳에서 걷고 있는 그를 가리키며 “저기에 하버드 법률저널의 첫번째 흑인 회장이 간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하버드 법대 1학년에 불과했지만 ‘하버드 법률저널’이 전국에서 가장 명성 있는 법률저널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하버드 법대에 들어가는 것도 쉽지 않지만 법률저널에 들어간다는 것은 훨씬 어려운 일이다. 특히 그곳에서 회장으로 선출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정말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회장직은 명석한 두뇌뿐만 아니라 깊은 정치적 감각, 그리고 보수와 진보, 중도파 모두를 하나로 묶어낼 수 있을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의 상대적으로 짧은 정치 경력에도 불구하고 그가 뛰어난 힘을 발휘하고 있는 데 대해 내가 놀라 않은 이유는 이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하버드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오바마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UCLA 법대 교수로 아시안, 특히 한인과 관련된 인종관계와 민권법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오바마 후보가 시카고 대학에서 헌법을 가르쳤다는 것은 그래서 나에게 편안함을 준다. 그의 경험은 권력 분립, 적법한 절차주의, 법의 공평한 적용 등과 같은 헌법의 핵심 가치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학생들과 함께 치열하게 사고한 교수로서의 법에 대한 직접적인 이해는 테러와 끝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는 상황에서 매우 소중한 자산일 것이다. 군사행동의 필요성이란 이름으로 미국인들이 이민자와 소수 인종들에게 행한 일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학문적 경험만으로 내가 오바마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또한 아니다. 나의 오바마 후보에 대한 지지는 의회에서의 투표 기록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내란 결론은 더더욱 아니다. 투표라면 오바마 후보와 클린턴 후보간에 차이점보다는 오히려 공통점이 많으니 말이다. 그러면 왜 오바마인가?
나는 오바마가 근대 정치인들 가운데 누구보다도 미국의 인종 문제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말할 지에 대해 근본적인 변혁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지한다.
그의 이력을 보면 그는 케냐 출신의 아버지와 캔사스 출신의 어머니를 두고 인도네시아와 하와이에서 자랐다. 이는 그가 차이점이란 것이 무엇인지, 아웃사이더란 것이 무엇인지, 주류 사회에서 회의적으로 보여 지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인으로서 우리는 역시 차이점이 무엇인지, 잘못 이해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 같은 이해를 최고의 권력자인 차기 대통령이 우리와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그 가능성에 대해서 환영해야 한다.
1992년 4월29일. 나는 하버드 법대 저널이 있는 건물인 가넷 하우스의 라운지에서 조그만 TV를 보던 때를 기억한다. 로드니 킹 사건에 대한 평결 발표 직후 LA가 불타던 모습을 나는 그 TV를 통해 목격했다. 흐르는 눈물을 참기가 어려웠다. 경찰은 어디 있었는가? 어떻게 상황이 통제 불능에 이른 것인가? 어떻게 한인과 흑인, 라티노 사이에 그 정도의 불화가 있을 수 있었을까?
전 주류 언론이 어떻게 이 사건을 취재하는지에 대해 깊은 자괴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한인의 목소리는 어디에 있었는가? 왜 우리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은 것일까? 15년이 지난 후 많은 것들이 바뀌었지만 또한 많은 것이 그대로 남아있다.
지금 우리는 커뮤니티 차원에서 변화를 위해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있다. 어떤 이들은 한인이 흑인 후보에게 투표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한다. 그러나 그 같은 편견은 어처구니없는 일반화이다. 그가 흑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모든 면에서 뛰어난 후보이기 때문에 한인 커뮤니티가 투표를 한다는 것은 그 같은 인종분리의 정치를 거부하는 명확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이는 또한 한인이 편견과 편협한 사고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강력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의 투표는 변화를 위한 힘찬 상징인 것이다.
이 흑인계 정치인이 거친 길을 헤친 후 언젠가는 이력의 한 끝이 한국 또는 아시아에 닿아 있는 누군가가 오바마의 발자취를 따라갈 지 누가 알겠는가? 나는 그것이 가능한 그 날을 학수고대 하고 있다.
<이 글은 영문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임〉
제리 강
UCLA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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