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삭아삭한 반달모양 과자 안에 수수께끼 같은 말이 쓰인 작은 종이 쪽지가 들어 있는 포천 쿠키는 해마다 30억개쯤 만들어진다. 그 대부분은 미국에서 제조되지만 영국, 멕시코, 이탈리아, 프랑스 등 세계 각지의 중국식당에서 서브되며 인도에서는 버터 과자 같은 맛이 난다. 브라질에서는 2004년도 복권 당첨 번호중 다수가 차이나타운이라는 중국 식당 체인에서 손님에게 준 포천 쿠키에서 나온 행운의 숫자를 사용한 것이었다. 그런데 전세계 중국 식당의 원조라할 중국에서는 포천 쿠키를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
소비자 정보
19세기 일본서 첫 등장
2차대전 때 일본계 이민자들
수용소에 들어가면서
제과점들을 중국계가 맡아
크게 유행시킨 것으로 추정
그동안 중국을 여행하는 미국인들의 머리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던 그 이유에 대해 한 일본인 학자는 포천 쿠키의 원산지가 일본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도쿄 외곽 카나가와대학의 민속 및 역사 전공 대학원생인 야스코 나카미치는 일본이 포천 쿠키의 원조임을 밝히기 위해 6년 이상을 의회박물관에서 수천점의 고문서와 그림들을 뒤지고 전국의 사원과 사당을 찾아다니면서 안에 운세를 집어 넣은 일본식 디저트의 역사를 꿰어 맞혀 왔다.
나카미치는 포천 쿠키를 1980년대에 뉴욕시의 한 중국음식점에서 처음으로 보았다. 그때는 그저 그 쿠키가 재미있고 창의적이라는 생각으로 중국 사람들의 독창성에 감명을 받았을 뿐이었다. 그러다 1990년대 말에 교토 교외의 한 유명 신사 근처의 한 과자집에서 모양도 같고 운세도 들어 있는 것이 미국에서 본 포천 쿠키와 똑같은 과자를 발견했다.
그 과자는 한 젊은이가 불 위에 검정 그릴을 놓고 만들고 있었다. 그릴에는 반죽을 부어 과자를 만드는 작은 틀이 들어 있었고 과자가 아직 따뜻할 때 운세가 적힌 작은 종이를 접어 끼우는 것이었다. 그것을 목격한 후 나카마치의 연구는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나카마치가 신사 인근에서 찾은 일본식 포천 쿠키는 인근 과자집 몇곳에서도 만들고 있었는데 미국 사람들이 중국 식당에서 식사가 끝날 무렵 오렌지 조각과 함께 받는 포천 쿠키보다 더 크고 더 갈색이다. 바닐라와 버터가 아니라 참깨와 일본 된장으로 반죽하기 때문이다. 운세도 과자 속이 아니라 과자가 접힌 부분에 끼워져 있다. 그렇지만 닮은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나카마치가 포천 쿠키가 원래 일본 것임을 증명하기 위해 찾아낸 자료중 가장 설득력있어 보이는 것은 19세기에 나온 한 이야기 책 속의 삽화다. 그 책에 실린 이야기중 하나의 주인공이 과자 가게에서 일을 배우는 도제인데 그가 석탄 불 위에 검정 철판에 얇은 과자를 굽고 있는 모양이 요즘 제과점에서 하는 것과 똑같다. 그 사람 머리 위로는 ‘추지우라 센베이(포천 쿠키)’라는 간판이 붙어있고 그의 옆에는 포천 쿠키로 가득찬 접시가 놓여 있다.
이 책과 거기 실린 이야기와 그림은 모두 1878년에 나온 것으로 적혀 있는데 포천 쿠키를 발명했다고 주장하는 미국의 일본계나 중국계 이민 가족들은 모두 1907년부터 1914년 사이에 이 과자가 처음 나왔다고 말하고 있다.
이 책과 또 다른 자료들을 가지고 2004년에 논문을 쓴 나카마치는 포천 쿠키의 원산지가 일본이라면 도대체 어떻게 해서 미국내 중국식당에 자리를 잡게 되었을까를 알기 위해 미국을 두번 방문,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에서 포천 쿠키를 만든 일본 및 중국계 이민 가족의 후손들을 인터뷰했다.
그 결과 포천 쿠키의 족적은 쉽게 세계 제 2차대전때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었다. 당시만 해도 캘리포니아의 중국 식당에서만 맛볼 수 있는 지역 특산물로 ‘포천 티 케익’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이 지역에서 복무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간 군인들이 자기 동네 중국 식당에 왜 샌프란시스코 지역 중국식당들처럼 포천 쿠키를 주지 않느냐고 묻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급속히 미 전국에 퍼지게 돼 1950년대 말에는 소규모의 중국 제과점과 포천 쿠키 회사들이 해마다 약 2억5,000만개 정도의 쿠키를 만들었다. 샌프란시스코에 ‘로터스 포천’을 창설한 에드워드 루이는 포천 쿠키 자동제조기를 발명하기도 했다. 1960년대에 이르러 포천 쿠키는 미국 문화의 주류로 부상, 아들라이 스티븐슨과 스튜어트 시밍튼의 대통령 선거운동에 사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2차대전 이전의 역사는 확실치 않다. 대부분 일본계인 캘리포니아의 이민 가정 몇몇이 포천 쿠키를 소개했거나 보급했다고 주장하고 있고, 1890년대에 로스앤젤레스에서는 후게츠도, 우메야, 홍콩 누들 컴퍼니 등 서너개 업체가 포천 쿠키를 만들고 있었다.
사실 나카마치는 아직도 어떻게 해서 포천 쿠키가 중국 식당으로 파고 들어갔는지를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1920년대와 1930년대에 캘리포니아의 일본 이민 중 다수가 미국화된 중국 요리를 서브하던 찹수이 식당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우메야 제과점이 남가주와 중가주의 100개가 훨씬 넘는 그런 식당에 포천 쿠키를 공급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중국인 소유 식당들도 일찍부터 이 쿠키에 눈독을 들였으므로 2차대전시 일본계 미국인들이 수용소로 가 서부 해안지역의 일본 제과점들이 모두 문을 닫았던 시절에 중국계 회사들이 포천 쿠키 생산을 도맡게 된 것으로 나카마치는 추측하고 있다.
이에 대해 세계 최대의 포천 쿠키 제조사인 뉴욕 브루클린의 ‘원턴 푸드’사 부사장 데릭 웡은 “일본 사람이 발명은 했을지 모르지만 포천 쿠키를 실제로 보급시킨 것은 중국 사람들”이라면서 “그것도 중국이 아니라 이곳, 미국에 사는 중국계의 문화”라고 주장하고 있고 그에 대해서는 초기에 포천 쿠키를 구워 팔았던 일부 일본계 후손들도 동감하고 있다.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많은 중국 식당이 아니었으면 그처럼 뜨지는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 특약-김은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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