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는 대체로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지닌다. 하나는 사전적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사전외적인 의미다. 그 언외의 의미가 너무 스트롱해 사용하기가 꺼려지는 단어들이 있다. ‘Jew’ 혹은 ‘Jewish’란 영어 단어가 그 중의 하나다.
유대인을 가리키는 단어다. 그 함축된 의미는 그러나 온통 부정적이다. 약삭빠른, 교활한 등등의. 왜 이토록 부정적 의미를 지니게 됐을까. 언어학자 하야카와는 유대인의 오랜 ‘유랑생활’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환경은 항상 적대적이었다. 그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뛰어난 적응력이 요구된다. 그 생존의 몸부림이 원주민에게 부정적으로 비쳐지면서 그 같은 편견이 형성됐다는 것이다.
하야카와가 말하고자 하는 포인트는 이렇다. ‘Jew’라는 단어에 투영된 스테레오 타입의 인간은 국적과 관계없이 초기 이민그룹에서 흔히 찾을 수 있는 인간형이라는 것이다.
낯선 사회에 끼어들게 됐다. 그 환경에서 생존하려면 남다른 각오가 필요하다. 남보다 배 이상 일하는 거다. 그리고 돈이 되는 일이면 뭐든지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보다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내야 한다. 모든 게 생존과 직결되니까.
미국사회의 변방에 위치한 이민그룹 비즈니스맨의 일반적인 이미지로, ‘Jew’란 단어가 주는 함축적 의미와 별로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요즘에는 얘기가 달라졌다. 상당히 긍정적이다. 유대인의 ‘유랑생활’을 보는 각도가 달라지면서 나타난 변화다. 동시에 일각에서는 ‘21세기는 유대인의 세기’라는 주장도 나온다.
새로운 얘기는 아니다. 19세기 유대계 독일시인 하인리히 하이네도 비슷한 주장을 했다.
오랜 유랑생활 동안 유대인들은 주로 ‘토라’(Tora·유대교 율법)에 의존해 살아왔다. 그런 삶부터가 독특한 것이었다. 법을, 또 추상적 사고를 존중하는 생활방식으로, 법보다는 군주에 대한 충성에 묶여 있던 근대 이전의 유럽인들의 생활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이런 유대인의 생활방식은 ‘법에 의해 통치’되는 새로운 사회, 즉 현대사회의 이상과 가장 부합한 것으로 하이네는 내다본 것이다. 말하자면 유대인들이야 말로 자본주의, 법치주의, 그리고 열린사회의 선구자란 주장이다.
‘노마드’(nomad·유목민, 유랑자)란 말이 현대의 화두로 자리 잡으면서 이 ‘유대인 세기’의 주장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유대인이 겪은 유랑생활이 ‘노마디즘’이 말하는 생활방식과 흡사해서다.
‘노마디즘’은 사회·경제의 영역에서는 정착의 틀에서 벗어나 끊임없이 생성과 파괴를 거듭하는 삶을 의미한다. 2,000년간의 디아스포라 유대인의 삶이 바로 그랬다. 그 ‘노마디즘’의 삶 가운데 유대인들은 새로운 개념의, 문화의, 또 아이디어의 창조자로 훈련을 쌓아왔다.
이 ‘노마디즘’적인 삶을 프랑스의 석학 자크 아탈리는 21세기 인간의 전형적인 삶이 되고, 동시에 생존전략이 될 것으로 예언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국가는 ‘노마드’의 행렬이 잠시 멈추는 오아시스에 불과하다.
자본이, 기술이, 그리고 인간이 끊임없이 이동한다. 세계화에, IT의 기술의 급격한 발달 결과다. 이런 추세에 비춰볼 때 국가라는 존재는 개념부터가 달라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중국적이 보편화되고 있다. 그 변화의 일환이다. 민주주의를, 시장경제를 추구한다. 세계적인 현상이다. 이러 상황에서 이중국적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미국의 대법원도 관련해 주요 판례를 남겼다. 해외에 거주하면서 외국 국적을 획득한 미국인에게 미국 국적을 그대로 지니도록 허용한 것이다. 해마다 50만 이상의 어린이가 이중국적을 가지고 태어난다. 이런 현실에 맞추어 이중국적을 사실상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차별 법들이 폐지되고 있다. ‘노마디즘 시대’의 또 다른 변화다. 인종차별이 금지됐다. 성차별이 금지됐다. 나이차별이 금지됐다. 장애인차별 금지법도 제정됐다. 머지않아 국적차별 금지법도 나올지 모른다. 차별 없는 나라가 선진국인 세상이다.
이명박 정부가 외국인에게 공직을 개방하는 법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기대가 된다. 고급 두뇌를 유치한다. 그에 부응해 미주 한인 2세 장관시대가 열린다. 그런 ‘윈-윈’ 상황이 가능해 보여서다.
동시에 한 외국인이 던진 충고가 생각난다. ‘한국이 국제사회에 나가서 인정을 받으려면 국제사회가 한국에 들어와 인정받도록 해야 한다’는. 말로는 세계화를 외친다. 그러나 여전히 온갖 차별에 꽁꽁 묶여 있는 한국에 대해 한 쓴 소리다.
한국은 과연 ‘노마디즘 시대’를 맞이할 준비가 돼 있는 것일까. 좀 더 지켜보아야겠다.
옥 세 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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