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최근 캐딜락 CTS 샀다며?” “네 렉서스 RX300은 잘 굴러가지?”
작년 11월, LA 오토쇼 무대에 선 마크 필즈 ‘포드’ 자동차 부사장은 청중들에게 “새로 나온 세단 ‘링컨 MKX’를 소개합니다”라고 말했다가 얼른 자신의 말을 정정했다. 그 세단은 럭서리 SUV인 MKX가 아니라 MKS였기 때문이다. ‘포드’사의 부사장이나 되는 사람이 그런 실수를 한 것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링컨’은 이미 MKZ를 만들고 있고, MKR이라는 컨셉카도 갖고 있으며, 이달에 디트로이트에서 소개할 또 다른 컨셉카의 이름은 MKT다.
문자 -숫자만 쓰니까 더 멋있어 보이네
‘엘도라도’‘핀토’‘레전드’‘인테그라’등 이름들 사라지고
XLR·STS·LS·S40 XC90 등 의미없는 문자에 숫자 곁들여
필즈 부사장 같은 사람도 헷갈릴 정도면 일반인들의 경우는 더말할 필요도 없다. 2008년형 모델들만 살펴봐도 ‘캐딜락’은 CTS, DTS, XLR, STS, XRS, XLR, ESV, EXT, ‘렉서스’는 LS, GS, ES, IS, SC, LX, GX, RX가 있다. ‘볼보’의 경우 S40, S60, S80, V50, V70, V90, XC90, C30, C70등이다.
자동차 이름에 ‘엘도라도’‘페이서’‘핀토’‘램블러’ 같은 단어가 붙는 것은 옛날 이야기다. 점점 더 문자를 아껴 쓰고 숫자를 양념으로 첨가하는 것이 업계의 동향이다. ‘켈리 블루 북’에 따르면 전혀 의미가 없는 문자와 숫자의 조합을 이름으로 가진 자동차 모델은 2007년형에 135개로 10년전의 80개에 비해 크게 늘었다.
제조사들은 문자와 숫자만으로 된 이름은 브랜드의 지위를 격상시켜주며 국제적으로 판매하기에도 용이하다고 말한다. 게다가 제일 좋은 이름들은 이미 상표 등록이 되어 있기 대문에 법률적인 견지에서 보더라도 문자와 숫자로 만들기가 훨씬 쉽다는 것이다.
물론 일리가 있는 이야기지만 문자와 숫자만으로 지은 이름이 이미 너무 많다고 지적하는 마케팅 전문가들이 많다. “가엾게도 소비자들은 이제 뭐가 뭔지 갈피를 잡지 못하게 됐습니다. 도대체 그 이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저도 모른답니다” 유타대학 에클레스 비지니스 스쿨의 마케팅 담당 교수로 문자 숫자 조합식 브랜딩 전문가인 테레사 파비안의 말이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은 벌써 수십년전부터 ‘3 시리즈’‘5 시리즈’‘7 시리즈’, 또는 ‘C 클래스’‘E클래스’‘S클래스’ 식으로 고급차에 문자 숫자 조합식 이름을 사용해 온 BMW와 ‘머세이디즈 벤츠’의 탓이다.
자동차 정보를 제공하는 웹사이트 Edmunds.com의 칼 브라우어 편집장은 10여년 전 일본 자동차 회사들이 자기들 나름의 럭서리 라인을 만들면서 유럽을 선망해, 품질로 유명한 독일 자동차의 명성을 이름으로나마 연상시키고자 열망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렉서스’는 2개의 문자로 이름을 지었고 ‘인피니티’는 문자와 숫자를 섞었다. ‘애큐라’는 처음엔 고유명사로 시작했다가 차츰 업계 추세를 추종하게 됐다. 결국 ‘레전드’는 RL, ‘인테그라’는 RSX가 됐다가 TSX로 대치됐다.
그러는 한편 어느 나라에서나 같은 이름으로 자동차를 판매하는 추세가 대두되면서 문자 숫자 조합식은 더욱 어필하게 됐다. 영어로는 멋진 자동차 이름의 발음이 다른 나라 말로는 엉뚱한 뜻이 돼 버려 판매에 영향을 준 일이 여러차례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문자 숫자 조합식은 문화적 법률적 장벽을 초월하기 때문에 자동차 회사들은 새로운 자동차를 만들면서 그 이름을 짓느라 더 이상 고통받을 필요가 없어졌음을 깨닫게 됐다.
결국은 미국의 고급차 브랜드인 ‘링컨’과 ‘캐딜락’마저 문자 숫자 조합식을 채택하기에 이르러 ‘캐딜락’은 2005년 이후 ‘드빌’을 DTS로 바꾼 이후 거의 모든 모델의 이름을 알파벳으로 붙인다. 단 하나 예외가 대단한 인기 차종인 ‘에스컬레이드’ SUV로 이것만은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회사측은 밝히고 있다. ‘링컨’도 인기 차종인 ‘내비게이터’ SUV의 이름은 바꾸지 않는다.
고급 차종만이 아니다. 과거 거의 모든 모델에 이름을 붙였던 ‘마즈다’도 요즘은 ‘트리뷰트’ 하나만 남겨 놓고 모두 문자 숫자식으로 바꿨다. 유명한 ‘미아타’도 지금은 MX-5다. ‘도요타’의 저가 브랜드 ‘사이언’ 라인은 자동차에 한번도 명사로 이름을 단 적이 없다. Xa, Xc등 암호같은 이름 뿐이다.
자동차 구매자 입장에서는 문자 숫자 조합식 이름에 편리한 점도 있다. BMW의 ‘3 시리즈’는 ‘5 시리즈’보다 더 싸고 ‘머세이디즈’의 ‘M클래스’는 SUV고, ‘S 클래스’는 고급 세단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완벽하게 돌아가지 않는 것이 세상이다. 문자숫자 조합식 이름 중에는 눈에 드러나는 규칙 없이 지어져 도무지 어떻게 구분을 해야 할지 알아볼 수없는 경우가 많다.
‘캐딜락’의 제품 디렉터 존 하월은 그 문제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중국에서 조사해 본 결과 소비자들은 자동차 이름에 좀 더 체계가 있기를 바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동차 이름에서 의미, 내지는 분류체계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쉽게 과거로 돌아갈 것 같지는 않다. 자동차 메이커들이 옛날처럼 의미를 가진 명사를 자동차 이름에 붙일 것 같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캐딜락’은 여전히 문자숫자 조합식을 견지할 것이고 ‘애큐라’ 대변인도 다시는 레전드나 인테그라처럼 이름을 붙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머세이디즈’도 요즘은 CL(‘C 클래스’가 아니다), SLK(‘S 클래스’가 아니다)등 클래스가 13가지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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