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지수와 지도자의 언어
21일이니, 새해도 벌써 3주가 지났다. ‘올해에는 반드시…’ 새해 결심이 하나 둘이 아니다. 그게 그런데 3주도 못 간다. 그 연약함이라니. 한탄이 절로 나온다.
그나저나 무엇을 위한 새해 결심이었나. 궁극의 목적은 ‘보다 행복한 나’가 되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행복은 내 안에, 내 안, 저 깊은 곳에 있다. 행복에 대해 흔히 하는 말이다. 행복이란 ‘주관적 웰빙’(well-being)이다. 일단의 사회학자들이 내린 정의다. 이들에 따르면 그 ‘주관적 웰빙’은 외적 요소의 영향 아래 놓여 있다. 행복은 바깥, 저 곳에 있다는 얘기다.
이들은 행복을 계량화한다. 그래서 발표하는 게 행복지수다. 무엇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가. 그 중요한 외적 요소로 정부, 혹은 정치, 사회적 상호관계, 그리고 돈을 든다.
내려진 결론은 이렇다.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하는 문화가 분명히 따로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 시민들은 확실히 더 행복한 생활을 누리고 있다. 체제, 다시 말해 정치문화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사회 구성원 상호 간의 신뢰감 역시 중요 요소로 지적된다.
예외가 있다. 정치·경제적으로 엉망인 라틴 아메리카 지역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높은 점이다. 이 경우는 끈끈한 가족 간의 유대, ‘패밀리 밸류’가 그 요인으로 지적된다.
요약하면 관계의 총체, 삶에서의 질적·양적인 관계의 총체가 행복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여기에 한 가지 첨가하고 싶은 것이 있다. 언어다. 특히 한국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자기도 속이고 남도 속인다. 지난해 한국에서 선정된 ‘올해의 사자성어’ 自欺欺人(자기기인)의 뜻풀이다. ‘이해를 같이 하는 사람끼리 파벌을 지어 다른 사람을 배척하다’는 黨同伐異(당동벌이)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된 게 2004년이다.
패거리를 짓는다. 그 패거리 정치의 작폐는 날로 심화돼 상호신뢰가 완전히 무너져 자기도 속이고 남도 속이는 지경에 이른다. 해마다 선정된 사자성어들은 그 과정을 꼭 찔러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무엇이 이 지경에 이르게 했는가. 그 핵심적 요소는 언어가 아닐까 본다. 반지성적이다. 반문화적이다. 거기다가 패륜적이고, 폭력적이기도 한 지도자의 언어 말이다.
언어는 자유의지, 이성과 더불어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선물의 하나다. 그 언어에는 신의 내적인 모습이 투영돼 있다. 실낙원의 저자 존 밀튼의 언어관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주는 것이 그가 파악하고 있는 언어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타락, 더 나아가 국가사회의 타락은 먼저 언어의 혼란과 타락을 통해 이루어진다. 인간을 유혹해 신에게 배신하도록 하기 위해 사탄이 선택한 무기가 바로 언어이기 때문에.
타락한 언어의 특징은 마음과 말의 불일치에 있다. 분리자의 언어라는 거다. 서로를 비난한다. 남의 탓만 한다. 공격을 위해서만 주로 사용된다. 자기 잘못은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극히 이기적인 것이 타락한 언어의 또 다른 모습이다.
정명(正名)과 정언(正言)이 정치의 요체다. 유가(儒家)의 가르침이다. 대의명분에 기초한 것이 정치이고, 바른 언행에 바탕하는 것이 정치라는 말이다.
‘문제는 언어다’- 바로 이 점을 밀튼이나, 정명사상은 같이 지목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모습이 투영된 순수한 언어, 바른 언어의 사용이 정치의 기본이고 국민의 행복지수를 높인다는 것이다.
“대통령다운 말과 행동을 하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 “리더의 말은 국격(國格)이다. 대통령이 멋대로 말해 한국이 힘든 나라가 됐다.” “참여정부의 실패 한복판에 ‘노무현 언어’가 자리 잡고 있다.” “2008년의 화두는 ‘품위 있고 권위 있는 말하기’로 정해야 한다.” 노무현 시대가 마감되면서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지적들이다.
그러고 보면 정치인에게 있어, 특히 한국의 정치인에게 있어 더 중요한 것은 정책보다는 언어인지도 모른다.
사실 퇴행도 그런 퇴행이 없었다. 마치 거품 토하듯이 말을 쏟아낸다. 그런데 그 말 하나하나가 독이 서린 듯하다. 그 자폐의 말이 쌓이고 쌓여 한(恨)이 된다. 그 타락의 언어의 마구잡이식 구사와 함께 대한민국의 국격은 날로 저하되면서 불행지수만 높아진 게 지난 5년의 세월이었으니까.
누가 말했나. 대통령의 의무 중 하나는 ‘품위 있는 언어로 국민의 자긍심을, 행복감을 높이는 것이다’고. ‘이명박 언어’에 주목해야겠다.
옥 세 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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