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민 1세들이 미국에 오기 전에 미국은 한 마디로 부자 나라라고 생각했다. 그 때는 미제 물건이라면 튼튼하고 실용적이고 비쌌기 때문에 상류층이나 쓸 수 있었다.
자본주의가 꽃을 피웠던 19세기 미국에는 돈이 넘쳐났다. 수많은 거부가 탄생했고 국가 재정이 넘쳐 돈으로 프랑스에서 루이지애나를 사들였고 러시아에서 알래스카를 사들였다. 이같은 국부는 새로운 발명의 결과로 나타난 산업 발전의 덕분이었다. 전기와 전화, 라디오, TV, 자동차, 비행기 등 인류의 삶을 바꾸어 놓은 수많은 발명으로 새로운 산업이 성장하여 세계의 돈을 미국으로 끌어들였다.
이와 같은 과학기술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세계 1,2차 대전을 승전으로 이끌어 미국은 세계의 지도국가가 되었다. 돈이 많으니 후진국의 개발을 위해 물을 쏟아 붓듯이 원조를 쏟아 부었다. 미술이나 음악, 패션 등 문화예술이 돈이 있는 곳으로 모여들게 되니 문화예술의 중심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동했다. 미국은 세계 부의 3분의 2를 보유한 초부국이 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세계에서 가장 빚이 많은 나라가 미국이다. 정부의 살림에 드는 돈이 모자라 국채를 발행한 빚으로 꾸려가고 있으니 재정적자는 해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이 국채를 중국을 포함한 외국이 사들이고 있으니 미국은 외국의 빚으로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또 그 좋던 미제 물건은 이 세상에서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미국 내에서조차 일상생활용품을 중국제 등 외국제품에 의존하고 있다. 대표적인 미제로 아직 남아있는 자동차의 경우 일제나 유럽제에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만큼 조악하여 푸대접을 받고 있다. 그러니 무역적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수입보다 지출이 많아서 빚을 내서 쓰고 국가는 벌어들이는 돈보다 소비하는 돈이 많으니 살림살이를 내다 팔아서 그 차이를 메우고 있다. 돈이 많은 외국인들이 미국의 부동산과 알짜 기업을 속속 사들이고 있다. 심지어는 아랍 기업이 미국의 안보와 관련 있는 기업을 사들여 관심을 끈 적도 있다.
이런 경제 상태를 반영하여 미국의 달러는 연일 하락하고 있다. 세계의 곳곳에서 기축통화인 달러를 받지 않고 유로화나 자국 화폐를 요구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이와 같은 미국의 경제 상태는 사람으로 치면 살아나기 힘든 중병 상태인 셈이다. 이 중병은 해열제나 진통제로 일시적 고통을 완화해 준다고 치료될 수는 없다. 근본적인 대수술과 장기적 치유책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미국 경제의 고질인 재정적자를 해소하기 위하여 세수 증대를 꾀하거나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하여 외환정책을 쓰는 방법은 치유책이 되지 못한다. 미국의 세금은 법인이나 개인이나 모두 과다한 수준인데 법인이나 개인이나 어디에도 세금 부담을 더 부과한다면 경제를 위축시켜 세원을 더욱 고갈시키게 될 것이다.
그보다는 정부를 효율화하고 해외의 전쟁으로 인한 전비 지출 등 낭비를 막아 재정지출을 줄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더욱 근본적인 방법은 이민제도를 대대적으로 개혁하여 싼 노동력을 충분히 확보함으로써 산업을 부흥시키는 길밖에 없다. 산업이 부흥되면 무역수지가 개선되면서 세수가 확대되어 재정적자도 극복할 수 있는 종합적 효과가 나타나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 미국에서는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아이오와 코커스에 이어 뉴햄프셔의 예선 등 대선 예비주자들의 경쟁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은 미국의 경제가 이처럼 심각한 지경인데도 대선은 그 심각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대선 후보들이 보수적인 도덕 경쟁이나 새 희망이란 구호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고 심지어는 눈물작전으로 국민의 정서에 호소하고 있고 국민들도 그런 분위기에 이끌려 가고 있다.
그러나 이래서는 안된다. 세계는 지금 경제전쟁 중이다. 미국처럼 경제가 가라앉지 않고 무서운 속도로 떠오르는 나라들도 경제를 더 일으키겠다고 몸부림을 치고 있다. 한국에서 지난번 대선에서 경제 대통령을 뽑았지만 한국뿐 아니라 중국, 러시아, 프랑스, 독일 등 모든 나라가 경제를 외치고 있다.
이제 미국과 미국의 정치인, 국민은 모두 정신을 차려야 한다. 다른 것은 모두 제쳐두고 경제부터 챙겨야 한다. 이번 대선이 경제에 대한 비전과 정책으로 대결되어야 하며 국민은 그것을 보고 차기 대통령을 선택해야 한다. 미국도 이번에는 경제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기영
뉴욕지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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