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에 접어들면서 아프리카 인을 처음 노예로 잡아 팔기 시작한 것은 포르투갈 사람들이다. 그들이 특별히 악해서가 아니라 유럽 국가 중 가장 먼저 아프리카 탐험을 시작했으며 아프리카 인들보다 힘이 있었고 대서양 섬 사탕수수 밭에서 일할 노동자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대서양의 주도권이 스페인과 네덜란드, 영국으로 차례차례 넘어가면서 노예무역의 주도권도 그 순으로 바뀌었다. 16세기 초부터 노예무역이 절정이던 18세기말까지 대서양을 건너간 흑인 노예 수는 1,100만 명, 그 와중에 죽은 노예 수는 최소 1,100만에서 최대 그 두 배로 추산된다.
노예제가 잘못이라는 것은 당시 깬 지식인들은 알고 있었다. ‘독립 선언서’ 초안자인 토마스 제퍼슨은 자신의 출신 주인 버지니아부터 노예제를 없애고자 애썼으나 실패했다. 그는 말년에 “신이 정의롭고 그의 정의가 언제까지나 잠자지는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조국 걱정에 몸이 떨린다”고 적었다. 그러나 그런 그도 끝내 자기가 소유하고 있던 노예를 해방시키지 못했다. 경제적 이해가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인류 최대 비극의 하나인 대서양 노예무역이 중단된 것은 지금은 대체로 잊혀진 윌리엄 윌버포스의 공이 크다. 요크셔 유지의 아들로 1780년 21살 대학생 때 영국 하원의원에 당선된 그는 젊어서 놀기 좋아하는 한량이었다. 그러나 독실한 기독교도가 된 그는 노예제의 참상을 전해 듣고 이 제도를 없애는 것을 필생의 사업으로 삼는다.
1789년부터 그는 매년 노예무역을 금하는 법안을 의회에 상정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노예 무역업자, 선주들, 농장 소유주 등 노예로 먹고사는 이익 집단의 영향력이 워낙 강했기 때문이다. ‘노예무역을 폐지하면 나라가 망한다’ ‘뜻은 좋지만 시기상조다’는 주장이 대세를 이뤘다.
그러나 대중 집회와 노예제의 실상을 알리는 책 출간 등 ‘의식화 작업’과 함께 정치 세력의 결집을 통해 그는 노예무역 폐지 운동에 뛰어든 지 20년만인 1807년 ‘노예무역 금지법’을 통과시키는데 성공한다. 한 때 노예무역선 보호에 앞장서던 대영 제국 해군은 이제 노예 무역선을 잡는 군대로 변신하며 전 세계 바다를 장악하고 있던 영국 해군의 위력 앞에 대서양 노예무역은 사라지고 만다. 미국도 한 해 뒤인 1808년 ‘노예무역 금지법’을 통과시켰다.
윌버포스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노예제 금지법안’을 상정하기 시작하며 26년 뒤인 1833년 그 제정에 성공한다. 그는 이 법안 통과 소식을 듣고 사흘 뒤 숨을 거뒀다.
영국에서의 노예제 폐지 움직임은 미국 내 노예 폐지 운동에 불을 당겼다. 대표적 노예제 폐지 운동가인 윌리엄 로이드 개리슨은 1831년부터 신문 ‘해방자’(the Liberator)를 통해 즉각적이고도 완전한 노예 폐지를 주장하며 처음 극소수에 불과했던 동조자들은 점차 세를 확장, 30년 뒤 링컨을 당선시키기에 이른다. 그 후 역사는 다 아는 바다.
그러나 링컨에 의해 노예가 해방된 지 140년, 마틴 루터 킹의 인권 운동이 결실을 본지 4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미국에서 흑인에 대한 차별은 남아 있고 백인들이 이들에 대해 저지른 범죄에 대한 배상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 주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돌풍을 일으킨 버락 후세인 오바마 바람이 뉴햄프셔에도 불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제는 흑인도 대통령을 할 수 있다는 달라진 미국인들의 의식을 읽을 수 있다. 케냐인을 아버지, 백인을 어머니, 인도네시아 인을 의붓아버지로 둔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미국이 어두웠던 과거를 털고 새 출발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있을까.
흑인 노예사는 역사를 움직이는 것, 사회를 바꾸는 것은 결국 비전을 가진 지도자의 집념과 국민의 결단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윌버포스와 개리슨이 노예제 폐지를 외쳤을 때 대다수는 이를 비웃었다. 그러나 지금 역사의 조롱을 받는 것은 그들이 아니라 그들을 비웃던 자들이다.
흑인이 대통령이 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유대인 속담이 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인가. 내가 아니면 누가 할 것인가.” 2008년 유권자들은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울 기회를 부여받았다. 과연 올해 미국인들은 이를 해낼 것인가.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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