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을 믿을 수 있나
이기영(주필)
지난 2002년 한국의 대선에서 노무현대통령의 당선이라는 이변이 발생한 후 그의 당선을 예견했다는 한 예언서가 선풍적인 화제를 모았었다. 조선 현종 때 살았던 송하노인이라는 노인이 조선말부터 2015년까지의 앞날을 예견해 놓았다는 ‘송하비결’이라는 예언서가 바로 그것이었는데 이 소문이 나면서 송하비결 예언서의 해설판이 쏟아져 나와 인기를 끌었다.
송하비결의 예언을 따른 해설서를 보면 2004년 9월에 미국이 북한을 폭격하면서 한미동맹이 강화되고 2004년 미국 대선에서 현직 대통령인 부시가 낙선하고 암살된다. 또 2005년에는 호남에서 대규모 민중봉기가 일어나고 한국과 중국에서 괴질이 발생하여 많은 사람이 죽는다. 2006년에는 북한 난민들이 밀려 내려오고 행정수도를 이전하고 2007년에는 북한에 원자탄이 떨어져 남북통일이 이루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2009년에 한국에서 친미 쿠데타가 발생했으나 2010년에 중미전쟁으로 세계 3차대전이 벌어지는데 한국은 중국측에 가담해 6.25 때보다 더 참혹한 전화를 겪지만 이 전쟁에서 중국이 승리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2008년 새해인 지금에 와서 보면 이 예언 중에 맞은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북폭과 부시 낙선 암살, 호남 봉기, 괴질 발생, 북한 원폭투하, 남북통일 등이 모두 허무맹랑한 요설이었던 것이다. 이른바 유명한 예언이라는 것이 대부분 이렇다. 지난 1910년 뉴욕타임스에도 소개된 미국의 유명한 예언가 에드가 케이시는 그가 죽은 후를 예언하면서 1958년부터 1998년 사이에 미국의 뉴욕과 LA 등 대도시와 일본 전체가 바다 속에 잠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한국의 예언서 중에서 가장 널리 인용되는 것은 격암유록이란 책이다. 조선 명종 때 사람인 격암 남사고는 주역을 깊이 연구하여 천문지리에 통달하였고, 당시 여러가지 사건을 예언하여 유명했다고 한다. 격암유록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대사건과 28대 500년으로 끝나는 조선왕조의 명운, 6.25와 이승만 정권 12년 등이 예언되어 있다. 이 예언서도 다른 예언들처럼 마지막에는 지구의 대변혁을 예고하면서 그 때 인류를 구원할 진인이 나올 것이라고 했기 때문에 이색종교집단에서 이 예언서를 아전인수 격으로 인용하고 있다.
격암유록은 진본이 없고 서울 국립중앙도서관에 필사본만 있다. 이 필사본은 1944년도 필사본에서 직접 필사했다는 필사자가 1979년에 도서관에 기증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필사본은 물론 1944년도 필사본 자체가 원본과 같은 내용인지, 심지어는 원본이라는 것이 있기나 한 것인지도 알 수 없다.그런데 최근 이 예언서의 허구성을 고발한 사람이 있다. 자신의 일가족이 경기도 소사의 신앙촌에서 살았다는 그는 한학자인 아버지가 1960년경 격암유록이란 책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 때 아버지를 만나러 자기 집을 드나들던 사람이 그 후 필사본을 만들었는데 국립도서관에 있는 필사본은 1975년에 만든 것으로 역사적 사실은 5.16 때까지만 예언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예언서는 예언서가 아니라 예언자의 이름을 도용하여 역사적 사실을 예언처럼 꾸며놓은 위서인 셈이다.사실 동서양의 예언을 보면 기독교의 성경과 각 종교에서 말하는 인생과 세계의 미래관에다가 앞서 나온 예언서들, 예를 들면 정감록, 무학비결, 도선비결 등의 내용을 짜깁기한 것이 많다. 그리고 구체적인 내용으로 예언된 것이 아니라 은유적, 비유적인 표현으로 되어있어 코걸이 귀거리 식으로 해석하게 되어 있다. 가장 유명한 예언서라고 하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제세기’도 1999년 하늘에서 공포의 대왕이 내려온다는 내용 등 다분히 성경의 종말론적 사고를 담아 2015년까지 예언되어 있으며 4행시로 애매하게 표현하여 구구각각으로 해석하여 제멋대로 악용할 수 있게 되어 있다. 1990년대에는 기독교의 이단 교파에서 이런 종말론을 끌어들여 휴거 소동을 벌였던 일도 있었다.
지난번 한국의 17대 대선에서도 각 후보측은 각종 예언서를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자기측 후보가 당선될 것이라는 말을 퍼뜨렸다. 그 중에서도 정감록의 정도령과 성씨가 같은 정동영 후보가 당선될 것이라고 한 예언가들과 역술인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 예언은 빗나가고 말았으니 예언이란 것이야말로 맞으면 좋고 안 맞으면 그만인 것 같다.새해가 시작되는 이 때가 되면 각종 예언이 판을 친다. 어떤 사람은 국운이 어떻다, 인류의 미
래가 어떻다고 하는가 하면 개인들은 자기의 한 해 운세를 알기 위해 예언가를 찾는다. 그러나 미래를 그 누가 알겠는가.
미래를 알 수 있는 능력이 있어서 바로 내일의 주식시세만 알 수 있다면 하루만에 팔자를 고칠 수 있으련만 누구도 그런 사람은 없다. 역사학자들이 연구를 통해 과거를 정확히 알아내지만 미래는 알지 못하듯이 하나의 기정사실로 고정된 과거사가 아니라 무한한 변수 속에서 자유의지에 따라 이루어지는 미래에 관해서는 그 누구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예언에 너무 깊이 빠지는 것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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