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주간지들이 학교를 순위 발표 경쟁의 노리갯감으로 삼고 있는 듯 하다. 몇 주 전 ‘US뉴스 & 월드 리포트’는 버지니아주의 알렉산드리아 소재 토마스 제퍼슨 고교를 1등, 그리고 남가주 소재 옥스포드 아카데미를 4등, 위트니 고교를 12등으로 하는 등 전국 석차를 정해 보도했다. 재미있는 것은 몇 달 전 뉴스위크 순위에 30등으로 기록된 풀러튼의 트로이는 US 뉴스 리스트에는 흔적도 없고 위트니는 뉴스위크 100 리스트에서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학교가 양쪽 차트에 올라와 있다 하더라도 주간지에 따라 순위가 바뀐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대학 순위는 그렇다 치고, 고교 순위를 정해서 어쩌란 말인가. 대학이야 어느 곳에 있든지 기숙사로 들어가면 된다지만, 공립 고등학교는 근처로 이사하지 않는 한 아무리 학교가 좋아도 다닐 수 없다. 남의 동네 학교는 이렇게 잘 나가고 있으니 자극 좀 받아 PTA에 나가서 우리도 잘해 보자고 소리라도 지르라는 것인가. 아니면 그림의 떡이나 보고 배나 아파라는 소린가.
순위측정 방법 또한 그렇다. 뉴스위크는 고교 졸업생 몇 명이 AP(Advanced Placement)와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 시험을 치렀는가로 등급을 정했고, US뉴스는 주정부 표준시험, AP, 소수민족 계열 학생들의 읽기 시험점수 등을 바탕으로 순위를 정했다. 두 주간지가 공통적으로 사용한 AP시험이 고등학교의 실력을 평가하는데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까.
한인 학생들도 “AP과목을 00개나 했다”를 자랑으로 여기고 그것들을 대학진학에 필수로 생각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수년 전부터 AP는 신빙성을 잃어가고 있다. 필립스 엑스터, 세인트 폴, 레이크사이드 등 실력 있는 사립학교들이 AP과목을 교과과정에서 제외한 것이 그것을 잘 말해 준다.
이유는 간단하다. 첫째, 칼리지 보드에서 제공하는 AP는 내용과 과정을 중시하기보다 학년 말 시험준비 위주로 수업을 진행시키기 때문이다. 둘째, 12학년 학기 초에 AP과목을 잔뜩 택했다가 12월에 대학 지원서를 접수시킨 후 모두 취소시키는 ‘꾀돌이 꾀순이’를 막기 위한 것이다. 셋째, 대학 입학전형에서 AP과목이 아예 없는 고등학교에서 올라오는 학생의 성적표에 대해 불리하게 취급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넷째, AP보다 우수한 교과목을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그렇다면 AP를 택한 숫자와 테스트 점수를 중심으로 고등학교 석차를 정한 두 시사 주간지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세상에 보이는 것이 점수 외에는 다른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선생님과 학생의 인간관계, 학생들의 교내 클럽활동, 운동, 예술 프로그램 참여도, 그리고 지역사회 봉사활동에는 안중에도 없다. 또한 교과서를 통해 학생의 머리만 키우는 암기위주, 점수위주 수업방식을 비판할 능력도 없고, 실생활에 정작 필요한 예절은 배우는지, 교양과 문화수준은 어떤 지에는 관심도 없다.
등수 안에 끼여 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학교 또한 마찬가지다. 지역 커뮤니티 학생에 알맞게 독자적인 교과목을 자체 개발하기보다는 금메달 랭킹과 100위 리스트에 올라보려고 칼리지 보드에 주민세금을 바치고 있다. AP과목에 의해 학교 순위가 결정되니 눈먼 물고기들처럼 칼리지 보드가 쳐놓은 그물 안에 빠져들고 있다.
학생들에게 왜 AP를 택하는지를 물어보라.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다”라는 대답이 고작이다. 점수를 위한, 점수에 의한, 점수의 삶을 사는 가슴 없는 인간 복제판이 되어가고 있다. 그들의 정서는 산불나기 직전의 잡목처럼 메말랐고, 마음은 가위 눌린 것처럼 무겁고, 몸은 존재 자체를 잊게 하는 분주한 스케줄로 몸부림치고 있다.
정부도 그 몸부림의 원인 제공에 한몫 한다. 출판사들의 로비활동에 의해 통과된 NCLB(No Child Left Behind)는 학교로 하여금 음악, 미술, 체육시간을 줄이거나 없애게 하고 있다. 점수로만 학교와 학생의 질을 평가하겠다는 부시 행정부의 시행착오는 이라크 침략보다 더 크고 더 오래 남을 오점이다.
US뉴스의 발행인 케리 다이어와 편집장 브라이언 켈리도 인정했듯이 학교 순위 선정은 “잡지 판매부수를 늘리려는 마케팅 전략” 이외에 별다른 목적이 없다. 과연 다음에는 무엇이 나오게 될까. 아마도 타임지에서 중학교, 초등학교, 심지어 유치원까지 등수를 매겨 발표하지 않을까 싶다.
다니엘 홍
C2에듀케이션 컨설턴트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