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경문
USC 한국학 연구소장
17대 대선에서 대한민국의 다음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명박 당선자는 1992년 미국 대선 때 빌 클린턴 선거팀 내부에서 시작해서 그 대선의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한 슬로건인 “바보야, 경제다.”(It’s the Economy, Stupid)를 활용한 듯하다. 클린턴이 잘 인식한 바와 같이 그 당시 미국민이 가장 간절하게 바란 것은 바로 물질적 상황의 개선이었으며 이 이슈를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것이 승리로 가는 길이었다.
이번 한국 대 선결과를 보면서 역사학자로서 필자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해 보게 된다. “바보야, 역사다”라는 인식이 그것이다. 흔히 알려진 바와 같이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한국에서는 역사인식이 국민 정체성과 정서에 중대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지나간 역사를 통한 인식은 선거, 특히 대선에 변함없이 반영된다.
이명박 후보가 당선될 경우 한국 사회가 전 시대로 되돌아갈 것이라고 외친 한국 진보세력은 이러한 역사 분석에 능통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번 대선을 분석하는 역사학자들은 오히려 이번 선거를 통해 한국사회 발전의 징후들을 더 많이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역사학자들의 성향에 따라서는 이번 대선이 한국사회의 ‘성장통’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게 될 것이다. 불가피한 경제 침체기, 불평등한 사회구조 속에서 투쟁할 대상을 상실한 젊은 세대들의 무료함과 방향 상실에 따른 고통 등이 그런 성장통의 증세로 나타날 수 있다.
좀 더 깊은 의미에서 역사학자들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믿지 않는다. 모든 현상과 상황은 축적된 역사 경험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역사는 똑같이 반복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가 거꾸로 간다는 테마는 가능하며 이는 중요한 문제이다. 왜냐하면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가 이를 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민들, 특히 젊은층은 이번 대선에서 왜 정치, 사회, 도덕적 요소보다 경제적인 이슈를 더욱 중요시했는가. 앞으로 우리가 답변을 해야 할 아주 중요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그 답이 무엇이든 간에 대선기간에 네거티브 캠페인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민주주의는 건강해 보인다고 할 수 있다. 분명 문제들은 많다. 그렇지만 한국의 정치가 유권자들이 한탄하는 것만큼 문제투성이인 것은 아니다. 예를 든다면 이번 대선 캠페인 기간에 비리사건은 예전보다 훨씬 적었고, 지역 색도 덜했다. 그리고 이런 지역 색도 문제로서 라기보다는 대부분의 민주주의에서 그렇듯 지역 간의 역사와 환경의 차이에 따른 단순한 문제로 볼 수 있다.
가장 희망적인 것은 미국이나 선진국에 비해서 좀 늦게 민주주의를 정착시켰음에도 한국은 다른 국가로부터 최대한 배워 이를 지혜롭게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한국의 짧고 집중적인 대선 캠페인은 인상적이다. 끝없는 캠페인과 완전히 금전에만 의존하는 미국의 대선 캠페인과 대조적이다. 미국의 대선 시스템은 해결되기 힘든 구조적인 문제라 할 수 있다.
이명박 당선자의 머리 위에 먹구름이 다가오고 있다. 이 먹구름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매우 걱정되는 상황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일부 한국인들은 정의와 정통성에 대한 집요함을 보인다. 이것은 이 당선자에게 부담이 될 것이다. 대통령이 되려면 의혹에 대한 해명이 있어야 한다는 정서 또한 강하다. 그리고 이명박 당선자가 BBK 특검수사에서 빠져 나오다 해도 또 다른 과거가 불거질지 모른다는 의혹도 여전한 상황이다.
역사의 힘은 진실을 말해 준다. 대한민국의 유권자는 이번 대선에서 경제 이슈를 선택했을 뿐 아니라 강력한 지도자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다는, 지나간 신화적인 과거를 추구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많이 변했다. 경제와 사회구조는 매우 복잡해졌고 한국은 이제 한 사람이나 한 당이 관리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앞으로도 이명박 당선자의 과거로 인해 일어날 소란이 많을 듯하다. 한국민이 이 문제들에 어떻게 대처할 지가 주목거리다. 즉 법치주의와 공정한 원칙 안에서 처리할 것인지, 또 이를 교훈으로 삼을 것인가 아니면 사회를 분열시키는 계기가 될 것인가에 따라 이 대선의 진정한 중요성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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