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당나라에 동소남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학문이 높고 행동거지가 바른 선비로 존경을 받았는데 특히 효도와 형제간의 우애, 그리고 가정의 화목을 제일로 여겼다. 벼슬도 마다하고 직접 땔감을 해 아내의 부엌일을 도왔고 물고기도 잡았다.
어느 날 동소남이 키우던 개가 새끼를 여럿 낳았다. 동소남이 나무하러 산에 가자 언제나처럼 개도 따라 나섰다. 그러자 동소남이 기르던 암탉이 새끼 강아지들을 대신 품어 주는 것이었다. 이를 본 동네 사람들은 “동소남의 바른 행실을 자식도 본받더니 이제는 동물들까지 본받는다”고 한입으로 칭찬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평범하지만 중요한 교훈을 깨우쳐 주는 일화이다. 한 가정과 사회와 국가를 지배하는 가치관은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자연스럽게 내려온다. 그래서 상수원의 청정도가 중요한 것이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여론을 주도해 가는 사람이 투명해 지고 법을 지키는 모습을 보일 때만이 조직의 근간이 흔들리지 않는다. 도덕적 행동에는 윗사람을 닮아 가는 ‘붕어빵 현상’이 나타난다. 가정에서 부모가 비양심적인 행동을 일삼으면서 자식들에게 올바르게 살라고 말한다면 훈육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최근 몇 년간 미국에서 CEO들에 의한 도덕적 해이와 대규모 부정이 잇달아 터지면서 CEO를 선임할 때 철저히 검증하는 추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과거에는 비교적 형식적인 인터뷰가 고작이었지만 요즘은 학창시절에서부터 사회생활 전반, 그리고 커뮤니티 내 평판에 이르기까지 샅샅이 뒤져 인간 됨됨이와 자격을 평가한다. 그 이유는 최고경영자의 도덕적 수준이 그 기업의 도덕지수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가정과 기업뿐 아니라 국가 지도자를 뽑는데 있어서도 도덕성을 간과할 수 없는 것은 같은 이유에서다. 고위공직자 인준 청문회에서 별 것 아닌 듯싶은 위법이 문제가 돼 낙마하는 것은 이들의 도덕성이 곧 조직의 도덕성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흠집투성이 지도자가 아랫사람들에게 똑바로 하라고 아무리 다그친다 해도 영이 제대로 설 리 없다. 한 마디로 ‘말발’이 서지 않는 것이다.
나폴레온에게 결정적인 패배를 안겨준 워털루 전쟁의 영웅 웰링턴 장군은 “워털루 전투는 이튼 운동장에서 이겼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영국 지휘관들은 대부분 퍼블릭 스쿨 출신들이었고 이튼은 퍼블릭 스쿨들 가운데 우뚝 솟은 명문이었다.
퍼블릭 스쿨에서 가르치는 것은 지식만이 아니다. 스포츠와 공동생활 등을 통해 ‘공명정대함’과 ‘정직’ 같은 바른 가치관을 심어 준다. 한마디로 ‘사람 만들기’에 중점을 둔 교육이다. 영국 특파원을 오래 지낸 원로 언론인 박권상 선생은 “지도자들이 직권을 이용해 돈을 벌고 땅을 사들이는 등 비겁한 짓을 한다는 것을 영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다. 영국민들도 지도자들이 그런 짓을 하리라고는 꿈에서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당나라 동소남의 예화가 보여주는 것처럼 지도층의 도덕적 솔선수범을 의미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가 뿌리를 깊이 내린 사회라면 더 바랄 나위 없을 것이다. 이것이 아니라면 최소한 ‘노블리스 말라드’(noblesse malade)가 발붙이기 힘든 사회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말라드’는 병들거나 탈이 난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지도층의 도덕적 탈선을 하도 일상적으로 접하다 보니 ‘노블리스 말라드’에 갈수록 무감각해 지는 것 같다. 이같은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위장’과 ‘위법’, 그리고 ‘거짓말’은 목적을 달성하는데 있어서 별로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일단 목표를 이룬 후 과업을 수행해 나갈 때는 두고두고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 얼마 전 대구에서 자녀 위장전입을 시도했던 학부모들이 당국에 적발되자 강력히 항의하고 나섰다. 이들은 “어떤 대통령 후보는 5번이나 위장전입을 했는데 그의 위장은 ‘자식사랑’이 되고 힘없는 사람들이 위장전입을 하면 범죄자 취급을 받는 것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심정적으로 이해가 된다.
“그는 되는데 왜 나는 안 된다는 말이냐.” 앞으로 5년간 검찰 조사실에서, 경찰 조사계에서, 또 법정 등 이곳저곳에서 지겹게 듣게 될지 모를 항변이다. 국가 지도자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어째서 최소한의 도덕지수는 갖추고 있어야 하는지 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통령 당선자가 도덕적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면 취임 전까지 납득할 만한 해명과 진솔한 사과를 해야 한다. 그런 뼈아픈 절차 없이 구렁이 담 넘어 가듯 하려 했다가는 임기 시작과 함께 곧바로 ‘도덕적 레임덕’에 빠지게 될 것이다. ‘도덕적 레임덕’은 임기 말 현상이나 무능에 의한 레임덕보다 그 개인과 국가에 더 치명적이다. 자칫 대통령이 되지 않음만도 못한 상황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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