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병사가 부엌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귀신 잡는 해병답지 않은 연약한 모습이다. 뭐 그리 슬픈 일이 있기에 남들 보는 앞에서 눈이 시뻘게져 있는 걸까.
이 병사는 양파를 썰다가 그만 매운기가 눈에 들어가 눈물을 참지 못한 것이다. 부엌칼을 처음 잡아본 듯 어설픈 자세지만 눈을 감아가면서 가능한한 가지런히 양파를 썰려고 애쓴다. 불고기 요리에 넣을 양파라서 눈이 따가워도 어쩔 수 없다. 얼마 전 열린 한국음식 만들기 행사 광경이다.
한 켠에서는 다른 군인 서넛이 둥그런 탁자 주위에 빙 둘러 앉아 손바닥 반 만한 크기의 만두피에 만두소를 채워 넣고 있다. 먼저 대접에 담긴 물에 손가락을 살짝 적신 뒤 만두피 가장자리에 물기를 촉촉이 바른다. 그리고 갖은 양념을 맛깔스럽게 한 만두소를 조금 집어 만두피에 올려놓는다. 그 다음 펭귄이 알을 품듯 만두피를 조심스레 감싼다.
그러다 그만 만두피 한 부분이 터졌다. 만두소가 삐죽 밖으로 나오자 군인의 얼굴색이 홍조를 띤다. 석고대죄할 일을 저지른 양 당황한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만두소를 집어넣은 뒤 만두피로 봉합하는 과정은 영락없이 시계수리공이 손목시계를 고치는 모습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군인들은 만두 빚기에 ‘숙달된 조교’가 된다.
또 다른 한켠에서는 군인들이 하얀 쌀밥을 내리누르고 있다. 고슬고슬한 밥을 맛없게 납작하게 만들려는 것인지 의아하다. 김밥을 만들고 있는 이들은 김발 위에 밥을 올려놓고는 어찌할 바를 몰라 서툰 손놀림으로 관심을 끈다.
밥알이 김발 밖으로 삐져나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밥을 아예 납작하게 내리누르고 있다. 오버도 이런 오버가 없지 싶다. “그러면 김밥 맛이 없다”고 하자 그제야 ‘순간의 탈선’에서 다시 정상적인 김밥제조 궤도에 오른다. 하지만 여전히 난제다. 군사훈련장에서 1분에 팔굽혀펴기 50번하기 보다 더 힘들어 보인다.
한국음식이 생소한 군인들에게 한국음식을 만들라고 주문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과제다. 그래도 해물파전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재료는 다르지만 만드는 방식은 피자 만들기와 비슷하다. 후라이팬에 얇게 깔아놓은 반죽이 서서히 익자 뒤집기에 들어간다. 반죽이 옆으로 튀지 않도록 손목에 힘이 들어간다. 그래도 재밌어한다.
미국사람들은 당면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당면이 입안에서 미끌거리는 느낌이 싫다고 한다. 잡채코너에서 작업하는 군인들은 큰 양동이에 가득한 당면과 양념을 섞기에 여념이 없다. 간이 잘 맞았는지 맛을 보라고 하면 꺼리면서도 양념 무치기에는 열심이다. 참기름 향기에 매료됐는지 급기야 맛을 본다.
군인학생들은 요리사가 아니다. 식당근무를 배정받은 것도 아니다. 한국어 교과과정에 포함된 정규 시간, 즉 한국음식 요리시간에 맡은 음식을 만든 것뿐이다. 불고기, 잡채, 김밥, 만두, 해물파전 등 다섯가지 요리를 하느라 재료를 자르고 썰고 무치고 비비고 섞고 뒤집고… 군인답지 않은 섬세함도 양념으로 첨가한다.
요리가 끝났다. 모두들 모여 앉아 서너 시간에 걸쳐 공들인 요리를 맛본다. 한 군인이 젓가락질을 한다. ‘정통법’을 구사한다. 젓가락 두개를 나란히 평행되게 잡은 뒤 능수능란하게 음식을 집는다. “예전에 젓가락질을 한 적이 있다”고 했지만, 음식을 집을 때 젓가락이 어긋나는 ‘사이비 젓가락질’을 수십년간 고수해온 한인 교수의 얼굴을 달아오르게 하는 장면이다.
“교수님 젓가락질은 이렇게 해야 제대로 하는 것 아닌가요?” 하고 ‘송곳 질문’을 하는 것 같아 정신이 번쩍 든다. 반나절 요리시간이었지만 낮선 한국문화에 흠뻑 젖어드는 군인학생들이 대견스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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