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많이 보는 한국 텔레비전 드라마들 속에서 가장 많이 다루어지는 주제는 결혼이다. 결혼한 다음에 어떻게 사는가가 더 큰 문제이지만, 우선은 결혼이 지상 과제인 것으로 다루어진다.
대개 젊은 남녀 주인공들은 애정에 의한 결혼을 하려고 하지만, 부모들은 예외 없이 이를 반대하고, 다른 상대를 골라 놓고 자식들에게 강제로 ‘조건에 의한’ 결혼을 시키려고 애를 쓰는 줄거리들이 많다. 드라마에서 부모가 자녀의 선택에 대해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상대방 애인이 ‘돈과 배경’이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또 놀라운 것은 많은 드라마가 재벌이나 대기업체 총수의 아들(혹은 딸)을 주인공으로 등장 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사치스런 환경에서 살고 학벌도 좋으며 회사 일도 잘하고 외국에도 자주 나가면서 매너가 좋아서, 공공연히 ‘백마 탄 왕자’로 불리며 결혼 상대의 이상형으로 취급된다.
그런데 그들이 사랑하는 상대는 가난하거나 고아이거나 나이 차가 많거나 곤란한 인척관계가 있어서 상대방 부모와 가족들의 멸시와 수난을 받으며 배척의 대상이 된다. 중산층 이상의 계층일수록 개인의 감정과 성격이 아닌 돈과 물질로 결혼을 흥정하는 비인간적 매매 형식을 선호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이런 도식적인 중산층 가정의 결혼관은 자본주의에 의해 사회계층이 서로 융화될 수 없이 분화된 19세기 유럽의 중산층을 연상 시킨다. 당시 유럽 중산층은 양쪽 집안의 재산을 결혼 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까지를 정하는 ‘결혼 계약서’를 체결하면서 자녀들을 결혼 시켰다. 한국 드라마의 주인공들도 대개의 경우 부모와 주위 사람들의 압력에 못 이겨 ‘조건’에 팔려가는 매매의 대상이 되어 있지만, 결혼 후에 재산 관리의 재량권을 가진다든지 하는 구체적 조건조차 보장 받지 못하고 무작정 돈을 많이 들이고 결혼을 한다. 으레 화려한 의상과 예식, 비싼 혼수, 호화로운 저택 등이 피상적으로 시청자의 눈과 허영심을 자극한다.
대중 매체가 일반 시청자에게 주는 영향력은 막대하다. 아무리 허구의 이야기라 하지만, 우리들은 비슷한 상황에 놓이게 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드라마 주인공의 제스처를 따라서 하게 된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드라마에 나오는 부자들이 하는 행동이 한국인 전부의 생활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치 세상은 그들이 하는 대로만 돌아가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되고, 돈으로 사람을 마구 사고 부리는 작태가 정상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부잣집 아들이나 딸이 어느 날 갑자기 돈 없는 주인공을 만나, 즉석에서 비싼 옷을 사 입히고 고급 차에 태워 그날 하루 자기의 애인 노릇을 시키는 장면도 자주 나온다. 물질에 팔려 몸을 빌려 주는 일이 이처럼 낭만적인 데이트의 방법인양 묘사된다.
드라마를 보면, 돈 없는 여성들이 노래방이나 룸살롱에 나가 돈에 팔려 성 매매의 대상이 되는 것만큼, 중산층 이상의 계층도 결혼을 돈으로 매매하는 풍속이 당연시 되고 있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물질의 노예가 되어 정신과 육체를 마구 팔고 사고 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매일의 성실한 삶으로 생활을 구축하기보다 하루아침에 부자와 결혼하여 공으로 돈과 권력을 얻으려는 비이성적인 정신 상태를 반영하면서 또한 부추기고 있다. 재벌들이 어떤 불법적인 방법으로 돈을 벌고 그것을 유지해 나가느냐는 문제시 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드라마 작가들도 작품을 쓸 때 비판의식이 전혀 없이 천편일률적으로, 부자와 가난한 애인의 결혼이 잘 안 된다는 이야기만 쓸 것이 아니라, 더 현실적인 우리 인생의 이야기를 다루어야 할 것이다.
우리 주위에는 더 정상적인 사랑과 감동으로 결혼을 하는 ‘보통 사람들’이 많을 것이며, 대중 매체의 주제는 시청자의 절대 다수를 이루는 대중의 사랑과 고민과 애환을 다루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시청자는 좀 더 열린 비판 정신을 가지고 드라마를 시청하여, 그 해악한 자극에서 영향을 받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연행
불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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