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논쟁에는 이슈가 있다. 건전한 논쟁은 이슈에 관계되는 사안에 국한해서 진행되어야 한다. 법정 논쟁이 이러한 룰에 의해서 진행된다.
이슈에 벗어나지 않는 논쟁을 하기란 이러한 훈련을 받지 않은 일반인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 배심원이 이슈에 관계없는 증거나 증언을 보거나 들으면 이슈를 분석해야 하는 직관력이 흐려지게 된다. 사실의 실체를 보아야 하는 배심원에게 색안경을 씌우는 격이다.
변호사들은 이러한 작전을 고의적으로 시도하는 경우도 있지만 상대방 변호사의 이의(objection)와 판사의 저지에 의해서 그러한 시도는 좌절되는 것이 보통이다. 만약 판사의 실수로 그러한 증거나 증언이 배심원에게 전달되었고, 그러한 증거나 증언에 반대했던 당사자가 패소했다면, 그 판결은 항소심에서 뒤엎어질 것이 자명하다. 이슈에 국한된 토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문명사회일수록 대중은 이슈에 민감하다. 법정에서의 논쟁은 해당 이슈만이 배심원에게 전달되도록 판사가 가려내지만, 법정 밖의 논쟁에서는 사건과 관계되는 이슈(relevant issue)와 사건과 관계없는 이슈(irrelevant issue)를 가려서 청중에게 전달할 방법이 없다. 논쟁을 청취하는 대중과 이를 전달하는 언론의 재량과 자질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정치적 논쟁이 이러한 범주에 속한다.
선거 때마다 선거의 핵심 이슈와 관계없는 이야기들이 유권자를 혼동시킨다. 대통령 선거에서의 핵심 이슈는 “누가 대통령으로서 나라를 가장 잘 운영할 것인가”이다. 클린턴의 대통령 선거전에서 공화당은 클린턴이 군복무를 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월남전 당시 징집을 피하여 캐나다로 도주했던 과거를 부각시킴으로써 대통령으로서의 자격이 없음을 주장했다. 이슈는 그가 “군복무를 했느냐, 안했느냐”가 아니고 “대통령으로서의 자격이 있느냐, 없느냐”로 귀착 되어야 한다. 미국 국민은 클린턴을 선택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과거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이유는 그의 아들이 군복무를 안했다는 사실이라는 결론에 별 반론이 없을 줄 믿는다. 아들이 군복무를 “고의로 기피했느냐” 아니면 “신체적 미달 때문이었느냐”라는 대통령 선거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이슈로 국민의 마음을 채워버림으로써 진짜 이슈인 “이회창 후보가 대통령 자격이 있느냐, 없느냐”는 가늠해 보지도 못하고 세월을 보낸 것으로 회고한다.
이런 거짓 이슈에 말려들어간 본인도 책임이 있다. 그러한 이슈는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일축했어야 하는데, 아들이 군에 가지 못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계속 말려들어간 것이 잘못이었다고 판단한다.
클린턴은 후보 당시 합동토론회에서 군의 징집을 기피한 사실에 대해 설명하라는 진행자의 요청에 “노코멘트”라고 했다. 얼마나 현명한 답이었던가.
이러한 거짓 이슈는 이번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도 비켜가지 않고 있다. BBK가 그것이다.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으로서 자격이 있느냐’라는 핵심 이슈 대신 ‘김경준과 어떤 관계가 있었느냐’의 거짓 이슈로 유권자들을 혼동시키고 있다. 두 사람 사이에 어떠한 관계가 있었다 하더라도 본 대통령 선거와는 무관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일반 대중은 무지해서 그렇다 치더라도 검찰이 두 사람 관계를 수사하는 것은 희극 중의 희극이다. 검찰이 이명박 후보를 거론해야 할 가상적 상황이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은 김경준 사건에 검찰측 증인으로 협조를 요청하는 상황이다. 이명박 후보가 김경준의 사기행각에 대해서 아는 바가 있다면 말이다.
한국의 언론들도 문제이다. 김경준의 어머니가 입국하는 장면을 경쟁적으로 취재하는 언론들, 김경준의 처가 기자회견을 자청했을 때 회견장에 벌떼 같이 모여드는 언론들이 대선의 이슈를 흐리게 하고 있다. 언론은 보도할 가치가 있는(newsworthy) 사건만을 보도해야 한다.
이인탁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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