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 정직의 대명사가 돼야 할 국세청장이 뇌물수수로 구속된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한국이 낳은 세계굴지의 기업이 전방위 로비를 했다는 내부자의 양심선언으로 특검제까지 연결되는 등 한국의 연말이 어수선하다.
이번 사건은 단순히 해당 기업이 불법로비를 했고 이에 연루된 공직자가 누군가를 밝혀내는 수사와 재판만으로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이번 사건은 어느 특정기업이나 개인의 사회적 일탈에 의한 일과성 사건이 아닐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고 그러면서도 그럴 수 있다고 넘어가는 관행이 문제가 된 사건이라는 말이다.
뇌물이나 불법적 로비는 원칙적인 방법으로 얻을 수 없거나 얻기 힘든 것을 결정권자에게 금품 따위를 제공하여 얻어내고자 할 때 주어진다. 이러한 뇌물이나 로비가 성립하는 이유는 경제학적으로 보면 간단하다. 뇌물 제공자의 입장에서 보면 원칙적인 일의 추진보다 비용이 훨씬 적게 들기 때문이다.
반면에 로비 대상이 되는 사람은 남이 맡긴 재산이나 권력을 자신의 이익으로 남용하는 자들이다. 이렇게 뇌물을 주고 헐값에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수요자와 위탁된 재산과 권력을 악용해 사리사욕을 챙기는 공급자 간에 이해타산이 맞았을 때 뇌물이라는 불법행위가 성립한다.
뇌물수수는 궁극적으로 자원의 효율적 분배를 왜곡시킴으로써 전체 사회의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경제적 폐해와 함께 뇌물 거래 때문에 원칙이 깨짐으로써 근면 성실한 사람들이 박탈감을 갖거나 뒷거래에 가담하는 도덕성 파괴라는 사회적 폐해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한 국가가 선진화되기 위해 반드시 척결돼야 할 망국병이다.
그런데 한국과 한국에 뿌리를 둔 이곳 한인사회는 이러한 뇌물거래가 관행화된 측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수많은 영역에서 여러 형태로 변조된 뇌물문화를 접하면서 살아왔다. 서로 돕고 사는 사이에 주고받는 미덕이라고도 했다. ‘떡값’이라는 애매모호한 은어로 마치 대가가 요구되지 않는 감사의 표시로 위장된 모습에 우리는 그저 그런 것이 세상이라고 받아들여 왔다. 심지어 이러한 거래를 거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융통성이 없는 사람이라는 비난으로 무언의 압력까지 가해지는 일도 종종 있었다.
어릴 적엔 학교에서 치맛바람이란 뇌물문화에 익숙해 왔고 커서는 상대 회사나 관공서에서 일을 빨리 처리하기 위한 수단으로 떡값을 적절히 사용하는가 하면 ‘전관예우’라는 우스꽝스러운 단어로 법조계의 로비를 인정해 왔다. 그 원천이 국가건 회사건 간에 조금만 내게 권력이 위탁되면 떡값의 대상이 되곤 했던 것이다. 여기에는 예외가 없이 거의 전체 사회가 그러려니 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총체적 뇌물의 현실이 오죽했으면 어느 전직 대통령이 취임 직후 ‘앞으로 청와대에서 정치자금 일절 받지 않겠다’고 각오까지 했겠는가. 그 발언은 돌이켜보면 그 이전에는 청와대가 불법적인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현실을 그대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공직기강 확립의 최고의 보루인 청와대마저 애매모호한 떡값 정치를 했다면 그 하부구조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한국이건 이곳 한인사회건 상관없이 누구도 떡값 문화의 족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 스스로도 직간접으로 뇌물문화의 공범자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을 마치 문제된 특정기업과 공직자만의 치부로 몰아붙인다면 그야말로 ‘내 눈의 들보는 못 보면서 남의 눈의 티는 들춰내는’ 꼴불견이 될 것이다.
이번 문제의 노출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경제적으로 세계 11위에 오른 한국은 사회 문화적으로도 국제화 수준에 접근하고 있다. 이 국제화로의 성장은 사회질서 특히 시장경제의 기초질서인 ‘게임의 법칙 준수’를 확산시키고 있다. 이런 투명화와 공정성으로의 발전 과정이 이번 사건의 노출의 배경이다. 즉 운이 나쁘거나 힘이 없어 폭로된 것이 아니고 한국사회도 더 이상 떡값이라는 미명의 뇌물문화를 용인하지 않는다는 도도한 변화의 신호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번 폭로사건은 한국 최고 기업과 최고 권력층이 연루된 일이어서 그동안 지적돼온 약자만 걸려든다는 체념적 통념을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 성숙에서도 많은 변화를 가져올 계기가 될 것이다.
이번 사건은 우리사회 즉 한국과 이곳 한인사회 모두에게 걸림돌이 될 과거의 관행을 타파하는 매우 고무적인 계기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 속에 우리 스스로에게도 남아있는 떡값 문화의 잔재를 과감히 청산하는 각오와 실천으로 한 해를 마감하는 12월이었으면 한다.
최운화
커먼웰스 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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