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우리교회 이찬수 담임목사는 “이제는 교회가 ‘부름 받은 자’일 뿐 아니라 세상으로 ‘보냄 받은 자’라는 뚜렷한 신분의식을 갖고, 사회를 섬겨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분당우리교회 이 찬 수 담임목사
절절함이 묻어나는, 막 깎아낸 원목 같은 목소리로 설교하는 한국 분당우리교회 담임 이찬수(46) 목사가 남가주사랑의교회 집회 인도 차 미국을 방문했다.
시카고 이민자 출신으로 한국의 대표적인 40대 기독교 리더 중 한 사람인 그의 목회는 여러 면에서 신선하다.
우선 그가 목양하는 분당우리교회는 부흥을 거듭했다. 서울 사랑의 교회 중·고등부를 10년간 이끌던 그가 지난 2002년 개척한지 5년반만에 성인교인 7,000여명(지난 주일 기준)이 됐다. 특이한 것은 교인 중 젊은이들과 남성들이 많은 점. 평신도를 사역의 주역으로 키우는 ‘제자훈련’과 성경공부 모임 ‘다락방’을 잘 정착시킨 결과였다. 하지만 그는 초고속 성장에 대해 “주님의 전적인 은혜였다. 스스로의 힘으로 하려고 했다면 탈진해 쓰러졌을 것”이라고 고백한다.
시카고서 고학, 이민자 출신
개척 5년만에 신자 7,000명
초고속 성장불구 학교서 예배
복지재단 설립해 이웃 봉사
한국 최대 노인관 내년 완공
“기도는 떼 쓰는게 아니죠”
그가 주목받는 더 큰 이유는 교회가 가야 할 방향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프간 피랍사태로 부각된 한국 교회의 위기에 대한 그의 처방은 적확하다. “산에서 길을 잃으면 출발점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교회도 처음 시작한 곳,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바로 선교와 봉사죠.”
때문에 그는 철저히 ‘사회를 섬기는 교회’를 지향한다. 2년 전 위임예배를 드리면서 선물을 사양한 것은 물론, 사재 1,000만원을 털어 사회복지재단 설립 종자돈으로 삼았다. 그 열매가 지난 6월 출범한 분당우리교회 복지재단이다. 소외당한 이웃들을 위한 반찬 봉사와 사랑의 택배 등이 주요 활동이다.
현재 단일 시설로는 한국 최대 규모인 노인복지관도 건축하고 있다. 내년 2월 완공되면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급증한 노인들을 더 열심히 섬길 작정이다. 뿐만 아니다. 가난한 동네에서 재활용품을 싸게 파는 ‘아름다운 가게’와 ‘우리 함께 웃는 지역 아동센터’ 등도 운영하고 있다.
“세상은 교회는 자기들만 잘 먹고 잘 사는 데 관심을 가진, 자기 배만 불리는 집단이라는 나쁜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이젠 교회가 세상을 적극적으로 섬겨드려야 합니다.”
분당우리교회는 또 화려한 건물이 아닌 송림중고교 강당을 예배당으로 사용하고 있어 이웃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있다. 단기간에 교회가 너무 커져 어쩔 수 없어서가 아니다. 탄생 때부터 교회 비전으로 정하고 내린 결정이었다.
성공만능주의에 빠지기 쉬운 세태 속에서 그는 ‘바른’ 신앙을 갖도록 교인들에게 늘 강조한다. 그 중 하나가 성경적인 기도다. “주님, 제가 원하는 대로 해 주실 거죠? 금식을 두려워하시죠? 안 먹겠습니다. 제 소원대로 안 해 주고는 못 배기실 걸요? 기도는 이런 것이 아닙니다. 기도란 하나님의 뜻에 내 의지를 굴복시키는 작업입니다. 내 관점을 버리고 하나님의 관점을 갖게 되는 과정입니다.”
그는 개척교회를 하던 중 40일을 작정하고 금식기도 하다 17일만에 소천한 목사 부친을 뒀다. “어머니께서 ‘난 네 아버지의 죽음을 포함해 한 번도 하나님을 원망한 일이 없었다’고 몇 년 전 제게 털어놓으시더군요. 그때 제가 3세 때 일어난 바로 그 일 때문에 오늘의 제가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인간적인 시각에서는 불행이었던 아버지의 죽음이 실은 위장하고 찾아온 하나님의 복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주님의 종’이 아닌 ‘주의 종님’ 같은 목사가 많은 시대에 그는 “목회자가 반드시 갖춰야 될 것은 종의 마음”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하나님의 종이라면 자신을 비우고 주인 되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야죠. 자신의 위치를 알고, 주인의 자리를 넘보지 말아야죠. 목회는 욕심을 죽이는 일입니다. 목사가 저 좋으려고 목회해서는 안 됩니다.”
일리노이 주립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총신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이민자였다. 1983년 21세의 나이로 가족과 함께 시카고로 건너와 학비를 벌어가며 공부하느라 28세가 될 때까지 광야 같은 이민살이를 처절하게 경험했다. 유대인 가게, 공장, 세탁소, 식당 등에서 밑바닥 일을 하면서.
하지만 40세까지 성공한 뒤 모국에서 자선사업을 펼치는 게 꿈이었던 그는 자기 사업을 시작한 지 몇 달만에 소명(calling)을 받고 한국으로 급U턴, 좁은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다 함께’와 ‘울타리’라는 의미를 모두 갖고 있는 분당우리교회는 ‘예배의 감격이 있는 교회’ ‘가정을 회복시키는 교회’ ‘젊은이를 깨우는 교회’ ‘세상을 변화시키는 교회’를 비전으로 삼고 있다. 또 ‘상식이 통하는 교회’를 지향함으로써 독단과 아집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그도 인간이기에 때론 교만이 찾아온단다. 그 때마다 그는 ‘낮은 포복’ 자세로 자신을 바싹 낮춘다.
“나 목회 잘 하지, 하는 생각이 들 때면 지나온 길을 기억합니다. 절대 불가능의 순간마다 역사하셨던 하나님을 잊지 않는 거죠. 지나간 5년 반의 꿈같은 사역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거든요.”
강가의 미루나무처럼 푸르고 올곧은 목회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확장시켜 가고 있는 이 목사가 초심을 잃지 않는 비결이다.
<글·사진 김장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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