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검사의 추궁 속에 르윈스키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부인하던 클린턴은 자주 코에 손을 갖다 댔다. 그가 무의식중에 코를 자주 만진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거짓말을 할 때는 들키지 않으려는 불안감 때문에 자율신경계에 급격한 변화가 생긴다.
그러한 증세의 하나가 ‘카테콜아민’이라는 신경호르몬의 분비다. 이 호르몬이 분비되면 콧속의 조직세포가 조금씩 부어오르면서 코가 근질근질해져 자기도 모르게 손이 가게 되는 것이다. 동화 피노키오에서 피노키오가 거짓말을 할 때마다 코가 커진다는 설정은 꽤나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셈이다.
몇 년전 한국에서는 ‘진실의 전화’라는 제품이 출시돼 히트를 친 적이 있다. 이 전화기는 거짓말을 할 때의 상대 목소리 변화를 분석해 진실과 거짓을 가려낸다고 해 부부들과 연인들 사이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거짓말 탐지기는 바로 이러한 거짓말을 할 때의 신체적 변화를 감지하는 원리로 만들어진 것이다. 또 전문가들이 바디 랭귀지로도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를 어느 정도 알아낼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책대결은 실종된 채 거짓과 진실에 관한 추잡한 다툼으로 날밤을 지새우고 있는 한국 대통령 선거를 지켜보고 있자니 대한민국 대선판에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거짓말 탐지기’와 ‘진실의 전화’가 아닌가 하는 자괴감마저 든다. 의혹을 둘러 싼 지루하고도 날선 공방으로 변변한 토론회 한번 열리지 못한 채 유권자들은 혼란스런 선택을 강요당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공방이 불거질 때마다 과학적인 거짓말 테스트 한번으로 상큼하게 결론을 내릴 수 있었으면 싶지만 문제는 거짓말 탐지기와 진실의 전화조차 진실을 온전히 밝혀 주지는 못한다는데 있다. 수사관들의 말을 들어 보니 사기전과 10범, 15범 같은 사람들을 거짓말 탐지기에 앉혀 놓으면 탐지기가 조용하다는 것이다. 거짓말이 패턴화 된 사람에게는 이런 기기도 무용지물일 뿐이다. 거꾸로 결백한 사람이 탐지기에 앉아 떨 경우 생사람을 잡는 오류가 생길 수도 있다.
의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누구나 거짓말을 한다. 우리가 하거나 듣는 말 가운데 약 20% 가량이 거짓이라는 연구도 있다. 사람들뿐 아니라 동물들도 거짓과 기만에 능숙하며 심지어 식물들도 거짓말을 한다는 보고가 있다.
거짓말에 관한 연구로 일가를 이룬 오스트리아의 페터 슈니그니츠는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언제나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머지않아 십자가에 못 박힌다”고 말했다. 그의 말마따나 우리가 고매한 이상에 사로 잡혀 진실만을 말하고 산다면 세상은 오히려 더 살벌해 질지 모른다.
하지만 환자를 위한 의사의 거짓말, 상대의 기분을 배려하기 위한 거짓말과 개인의 욕심과 성취를 위한 거짓말은 분명 구분돼야 한다. ‘진실게임’으로 변질돼 버린 대선에서 제기되고 있는 의혹들이 하루속히 명쾌히 해명돼야 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그것은 대권을 꿈꾸는 후보뿐 아니라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도 대단히 중요하다.
‘대권’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명예’이다. 또 ‘잘못’보다 더 심각한 것은 이것을 덮으려는 ‘거짓말’이다. 명예스럽지 못한 대권을 탐했다가 오히려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니만 못한 삶을 보내는 몇몇 전직들이 이것을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의혹을 받는 부분이 있다면 시계를 들여다보며 12월19일이 빨리 오기만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먼저 밝힐 것은 밝히고 털 것은 털어버리는 대승적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다. 정말로 아무 잘못이 없다면 더욱 당당할 수 있을 터이니 말이다. 자신의 명예를 흔드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조차 못 견뎌 했던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기억하기 바란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과거와 의혹이 발목을 잡고 있는 사상 최악의 대선이다. 후보도 12명이나 난립하고 있다. 유권자들은 앞으로 5년은 끄떡없이 쓸 수 있을 물건을 고르고 싶어 하는데 진열된 상품들은 온통 데모제품들 뿐이다. 여러 번 매장에 전시됐거나 군데군데 하자 투성이인 물건들 뿐이니 고르는데 별로 신명이 나지 않는 표정들이다.
별 하자가 없어 보이는 제품들은 브랜드도 생소한 군소업체 것들이어서 선뜻 신뢰가 가지 않는다. 물건은 그렇다 치고 제품 설명 한번 제대로 들어보지도 못한 채 선택을 해야 하는 입장 또한 곤혹스럽기만 하다. 결국 이번에도 ‘브랜드 충성도’가 모든 것을 좌우하게 될 모양이다.
현실정치를 오래 관찰한 후 “위대한 사람은 결코 대통령이 되지 못한다”고 결론지었던 19세기 영국의 정치사상가 제임스 브라이스경. 그가 오늘의 한국 대선판을 봤다면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심하다”고 논평하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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