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출근해 보니 감사의 계절을 맞아 한번쯤 되새겨 보자며 지인이 이메일로 보내 준 글이 도착해 있었다.
“매일 아침 만원버스로 힘들게 출근하고 있다면 그건 나에게 직장이 있다는 것이고/ 닦아야 할 유리창 고쳐야 할 하구수가 있다면 그건 나에게 집이 있다는 것이고/ 세탁하고 다림질해야 할 일이 산더미라면 그건 나에게 입을 옷이 많다는 것이고/ 연일 일이 많아서 야근이 이어지고 있다면 그건 내가 회사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이고/ 이메일이 너무 많이 쏟아진다면 그건 나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고/ 온몸이 뻐근하고 피로하다면 그건 내가 열심히 일했다는 것이지요/ 생각을 바꾸고 마음을 바꾸면 우리 주면에는 참 감사할 일이 많습니다.”
‘국민 음료’로 불리는 한 드링크제의 이미지광고 문구라는데 어느 철학서적, 종교서적보다도 잔잔하게 감사의 의미를 마음에 전달해 준다. 시선을 조금만 바꿔도 불평하고 불만스러워 하는 일들이 오히려 감사할 일, 감사의 조건이 된다는 지혜가 평범한 글 속에서 햇빛 아래 물고기 비늘처럼 반짝이고 있다.
한 모임에서 누군가 “운전하면서 언뜻 쳐다 본 빌보드 광고에서 순간적인 삶의 각성을 얻었다”고 얘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이렇듯 삶의 의미를 주워 올리는 일은 꼭 거창한 가르침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길거리를 걷다가도, 어린 아이의 표정 속에서도, 또 하찮아 보이는 광고 문구를 통해서도 얼마든 깨달음을 건져 올릴 수 있다.
재기 발랄한 유머와 톡 쏘는 풍자로 많은 독자들을 갖고 있는 영국의 젊은 에세이스트 알랭 드 보통이 예의 그다운 신랄함으로 표현하고 있듯이 “인생은 끊임없이 하나의 불안을 다른 불안으로 대체하고 하나의 욕망을 다른 욕망으로 대체하는 과정일 뿐”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고급 승용차를 가진다 해도 조금만 시간이 흘러가면 그것은 다른 욕망 속으로 사라져 버려 눈길 주는 일조차 점차 줄어들어 버린다.
그러다 강도가 창문을 깨고 라디오를 훔쳐 가는 ‘역설적인 봉사’를 경험하게 되면 비로소 우리가 감사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깨닫게 되곤 한다고 알랭 드 보통은 지적한다. 몸의 질병도 마찬가지일 터이다. 이런 ‘역설적인 봉사’를 통해 ‘지체된 감사’를 깨닫기보다 이런 것들을 경험하기 전에 먼저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한결 편안하게 숨 쉬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최근 의학에서는 이런 편안함이 몸의 건강과 절대적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이런 이론의 중심에 서 있는 의학자가 일본의 하루야마 박사이다. ‘뇌내혁명’ 등 10여권의 책을 통해 새로운 시각의 건강론을 펴 오고 있는 하루야마 박사는 ‘플러스 발상’의 주창자이다. ‘플러스 발상’은 한마디로 “좋은 것을 생각해야 건강하다”는 말로 집약된다.
하루야마 박사는 조물주가 이웃이나 사회를 위해 인간의 뇌를 디자인했다고 강조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웃이나 사회를 생각하고 이들을 위해 노력할 때 뇌에서 몸에 좋은 호르몬이 끊임없이 생성된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건강비법의 요체는 바로 ‘나눔’과 ‘베품’이다. 하루야마 박사 자신도 사회적 명예와 지위를 모두 내려놓은 채 노구에도 불구하고 이웃을 살피고 돕는 건강법을 직접 실천하고 있다.
최근 한인사회에서도 나눔을 통해 ‘플러스 발상’의 생활을 실천하고 있는 한인들이 급속히 늘고 있다. 월드비전에 따르면 미주지역에서만 무려 3만명의 한인들이 지구촌 아동 돕기에 동참하고 있다. 놀라운 숫자이다. 또 지난해에는 1%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한국의 ‘아름다운 재단’ 미주 지부가 설치돼 한인들을 위한 ‘베품의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지부 설치를 위해 미국을 찾았던 재단 창립자 박원순 변호사는 “남과 더불어 살아가는 마음, 즉 내가 가진 열의 아홉은 누군가에게서 받은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남과 나누며 살아가는 사람만이 진정 인생에서 성공한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그는 한때 돈 많이 벌고 ‘부자 아빠’ 소리를 듣는 잘 나가던 법조인이었다. 그러나 성공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한 후 나눔 운동에 뛰어 들었다. “성공했기 때문에 나누는 것이 아니라 나누기 때문에 성공한 삶”이라는 박 변호사의 말은 곱씹어 볼 만하다.
성공에 관한 정의는 다양하다. 한 대선후보가 공약으로 내걸고 있는 ‘온 국민의 성공’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런 성공은 어차피 모두에게 그 실과가 공정하게 돌아갈 수 없으며 무엇보다도 불확실하다.
불확실한 성공에만 목매기보다는 결실이 100% 확실한 성공에도 한번쯤 베팅을 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이 성공은 달콤하지는 않을지라도 맛이 담백해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고 그득한 포만감을 안겨주니 몸에도 좋을 수밖에 없다. 감사의 계절에 떠올려 본 성공론이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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