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태교’와 함께 ‘태아 프로그래밍’ 신경을
여성에게 ‘임신’은 새로운 경험이다. 특히 한인들은 임신 중 태교를 매우 중히 여긴다. 임신에서 출산까지 모든 일에 조심하고, 나쁜 생각이나 말, 행동을 삼가고, 편안한 마음으로 태아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려고 노력한다. 일단 임신한 여성은 음식을 조심하고 사람이 많이 모인 자리도 피하려 한다. 또 유해한 공기를 피한다. 임신 중 엄마가 먹는 것, 만지고 호흡하는 것은 태아의 건강에 굉장히 중요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뱃속에서 자라는 태아는 음식뿐 아니라 환경 호르몬, 오염물질, 대기 오염, 박테리아 감염 등 외부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심지어는 엄마가 느끼는 스트레스까지 고스란히 영향 받는다는 주장이 나와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환경호르몬이나 오염물질, 잘못된 약물 복용 등은 태아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태아의 자손에게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고, 또 태아가 성인이 된 후의 건강에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의학계에서는 이같은 주장을 ‘태아 프로그래밍’(fetal programming)이라 부른다. 엄마가 무엇을 먹고 어떤 환경에 노출되는가에 따라 아기는 성인이 돼서 천식, 당뇨병, 자폐, 암, 심장질환 등 다른 질환을 발병할 수도 있다는 것. 성인병은 이미 자궁 속 태아 때부터 결정된다는 주장이다. 최근 LA 타임스는 임신에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요소들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또 ‘태아 프로그래밍’과 관련된 연구들에 관해 보도했다.
임신중 지방·당 과다 식생활
태아 자란 후 비만확률 높이고
음식 등 오염물질 노출 많으면
지각·생식능력 지장 초래도
“성인병 예방 태아때 시작해야”
각종 성인병이 자궁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 엄마가 무엇을 먹고 어떤 환경에 노출되는가에 따라 아기는 성인이 되어 각종 질환을 발병할 수도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태아의 환경… 자라서 성인 때까지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최근 전문가들은 태아의 환경은 어린 시절뿐 아니라 성인이 돼서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태아의 건강과 ‘태아 프로그래밍’에 관한 각종 연구가 성인이 된 후 걸릴 수 있는 당뇨병, 심장질환, 암, 천식, 정신병, 불임까지 연관지어 쏟아지고 있는 것.
저체중 아기와 성인이 되서 심혈관계 질환의 관계를 연구해온 영국 사우샘프턴 대학의 데이빗 바커 교수는 “태아와 갓 태어난 신생아 때는 각종 환경위험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쉬운 기간” 이라 지적했다.
‘태아 프로그래밍’은 바커 교수가 영국의 빈민지역인 하트퍼드셔에서 심장병 사망률이 높게 나타나는 현상을 분석하면서 처음 정립한 이론이다. 과체중, 비만 인구가 늘어가고 있는 가운데 여러 연구들은 임신부가 임신 기간 중 지방과 칼로리가 높은 음식, 당이 높은 음식을 섭취하면 태중 아기는 비만이 될 확률이 높고 지방 세포가 자궁 내에서부터 프로그래밍돼 성인이 돼서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한다.
‘국립 환경건강과학연구소‘(National Institute of Environmental Health Sciences)의 제리 하인델 박사는 “태아 때부터 각종 성인병을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태아 때의 발생 원인부터 차단하면 각종 성인병을 미리 예방할 수 있다는 것. 물론 이 주장은 아직까지 여러 연구가 나오고 있으며 논란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하인델 박사도 병의 원인은 유전인자와 환경이 함께 원인이 되거나 또는 여러 가지 요소가 결합, 발병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태아 프로그래밍’ 전문가들은 가임 여성과 남성이 자녀의 미래 건강에 보다 더 일찍 또는 더 잘 관리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성인병 예방은 이미 임신 준비 기간부터 시작될 수도 있고, 이때부터 성인병 발병을 억제할 수도 있다는 것. 임신 준비기간, 임신 기간부터 건강하게 관리하면 적어도 태아의 건강뿐 아니라 아기의 미래 건강까지도 컨트롤 할 수 있다는 말이다.
#태아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요소들
엄마가 알콜에 취하면 태아도 취한다는 것은 이미 증명된 사실이다. 먼저 약물 복용은 임신기간 특히 주의해야 한다. 1950년대 탈리도마이드 수면제, 최근의 여드름약인 ‘아쿠테인’(Accutane) 등은 기형아 출산으로 임신부에게는 금지된 약물들.
독일에서 개발된 탈리도마이드는 부작용이 적은 수면제로 알려져 있었는데, 구토억제 및 진정제로 사용됐다. 임신 3개월 미만의 초기 임신부들은 입덧을 가라앉히고 불면증 예방을 위해 이 약을 복용했으나 심각한 기형아를 출산해 판매가 금지됐다. 이 약물은 태아의 영양분을 공급하는 혈관 생성을 억제해 심각한 태아 기형을 유발했던 것.
부작용으로 팔과 다리가 짧거나 아예 없는 상태로 아기가 태어나 ‘탈리도마이드 아기’란 용어가 나오기도 했다. 당시 독일과 영국 등지에서는 탈리도마이드를 복용한 임신부들의 기형아 출산이 급증한 바 있다. 여드름 약인 ‘아쿠테인’도 임신한 여성이 복용할 경우 뇌와 심장 결함, 정신 지체 등 심각한 장애을 지닌 기형아를 낳을 수 있다.
약물도 임신기간 중 주의해야할 요소이지만 음식 역시 너무나 조심해야 한다. 태아의 두뇌 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오메가-3 는 등푸른 생선에 풍부하다. 그러나 임신기간 중 생선 섭취는 아직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큰 논란이 되고 있다. 임신한 여성이 참치 캔을 6개 이상이나 먹을 경우 태아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생선에 들어 있는 메틸 수은 같은 중금속 오염은 역시 선천적 결함을 가진 아기를 낳게 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여러 연구들이 세계 곳곳에서 나온 실정. 미국에서도 대규모 실험 결과 메틸 수은 중독은 지능이 낮은 아기, 어린 시절 지각능력이 낮아지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또 비타민 엽산 역시 우리 몸의 대사 활동에 필요한 필수 영양소로 엽산 레벨이 적고 아미노산 호모시스테인 레벨이 증가하면 자연유산, 사산아, 조산아, 저체중아 출산 등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올 초 1월 의학전문지’일반 정신의학 기록(Archives of General Psychiatry)에 발표된 바에 따르면 아미노산 호모시스테인 레벨이 임신 7개월부터 9개월까지 동안 높은 아기는 정신분열증 위험이 2배나 높은 것으로 보고되기도 했다.
또한 살충제, 오염물질, 환경호르몬, 매연 등 역시 태아나 유아기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내분비계 교란물질’(endocrine disrupter), 즉 환경호르몬이 최근 자궁 속 태아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주장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환경호르몬이 자궁의 호르몬 기능을 교란시키거나 장기 번식 작용, 기능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
지난 3월 ‘인간 생식’(Human Reproduction)에서는 임신 기간동안 일주일에 7 서빙 이상 쇠고기를 자주 먹은 임신부는 아들일 경우 아들의 정자의 질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흥미로운 연구논문이 발표되기도 했다. 이는 소에 함유된 환경호르몬 때문일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도시 오염 역시 임신부와 태아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대기 오염은 저체중아 출산과 사산아 출산과 연관성이 있다는 다수의 연구도 나오고 있는 상황. WHO(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대기 오염은 태아의 폐기능을 손상시킬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제리 하인델 박사는 이런 환경적 오염이 태아에게 영향을 끼칠 뿐 아니라 세대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1938~1971년까지 유산을 방지하고, 임신기간의 합병증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합성 여성 호르몬의 일종인 디에틸스틸베스트롤(DES)을 임신 중 처방받은 여성들은 딸을 낳은 경우 딸들이 불임에 걸리고 생리가 불규칙, 드물게는 사춘기후 생식기에 암이 생기기도 했다. 일명 ‘DES 딸들’로 불리는 이들은 또한 유방암 위험이 보통여성에 비해 거의 2배 높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엄마와 자녀만의 문제가 아니다. ‘DES 딸들’의 자녀들 역시 현재 시점에는 성인 나이로 분류되고 있는데 이들에 관한 연구도 속속 나오고 있다. ‘DES 딸들’의 아들은 ‘요도하열’(hypospadias) 같은 방광질환 위험이 높다는 연구보고가 나오기도 했으며 지난해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DES 딸들’의 딸들은 여성 생식기 기관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할머니의 임신 건강이 손자, 손녀의 건강에까지 3대나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풀이된다.
#독인가요? 약인가요?
환경오염이 도마에 오르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 소아질병 전문지 ‘유아질병 연구기록’(Archives of Disease in Childhood)에 따르면 오메가 3 지방산 보조제를 섭취한 임신부에게서 태어난 아기는 눈과 손의 공동작용이나 언어 이해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수은 노출 때문에 고등어, 참치, 연어 등은 아기 두뇌 발달에 도움이 되는 오메가-3 지방산이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임신부에게는 여전히 섭취 논란이 되고 있다. 수은 노출은 태아의 장애를 유발할 수도 있으며 생선을 많이 먹는 사람은 수은 중독이 나타날 수 있는 위험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임신부는 일주일에 12온스 이상 먹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다.
생선만 논란이 되는 것이 아니다. 지난 4월에 발표된 학술지 ‘흉부’(Thorax) 지에 따르면 임신기간 사과를 많이 먹은 임산부의 자녀는 적게 먹은 임산부의 자녀보다 천식 발병이 적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에 따르면 사과는 안심하고 먹어도 될 것 같지만, 사과는 과일 중에서도 높은 레벨의 살충제를 포함하고 있을 수 있다. 사과에 함유된 살충제는 환경호르몬처럼 작용해 태아에게 악영향을 끼쳐 신경손상을 가져올 수도 있다.
정서적인 스트레스도 영향을 준다. 임신 기간 동안 해고당했거나 이혼했거나 상을 당해 슬퍼하는 경우 여러 연구결과 기형아 출산 위험도 증가하고 아기에게 자폐증의 위험도 증가시킬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신한 여성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스트레스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코티솔에 노출된 태아는 태어난 이후에도 코티솔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게 되고, 이 경우 동맥경화 고혈압 노화 등을 유발하게 된다는 연구도 발표된 바 있다.
#임신 중 균형 잡히지 않은 식단 미래 비만아 만들 수도
미국 내 프리스쿨 아동의 14%가 과체중이다. 임신 기간중 지나친 영양 부족, 또는 영양과다는 태아가 성인이 된 후 당뇨병, 심장질환, 고혈압 발병에도 영향을 끼치며 일생의 몸무게를 좌우할 수도 있다. 영국 데이빗 바커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신생아로 6파운드 또는 그 이하로 저체중인 경우 심장질환이나 제2형 당뇨병, 고혈압 발병 위험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프리스쿨 아동의 운동양도 점점 부족해지고, 지방과 칼로리, 당분이 높은 식단이 문제로 지적됐다.
엄마의 식생활은 태아의 두뇌 발달 및 식욕 컨트롤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도 나타났다.
호주 연구팀에 따르면 태어나기도 전에 혈당이 높거나 지방이 높은 음식을 엄마가 먹는 경우 태중 아기의 지방세포 성장에까지 영향을 끼쳐 비만아가 될 확률이 높다는 것.
또 카이저 퍼머난테 센터 연구팀의 최근 연구보고서에서는 높은 혈당을 그대로 둔 임신여성의 자녀는 89%나 과체중인 것으로 나타났으며 82%는 5~7세에 비만이 될 확률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임신기간 환경적으로 주의할 점
-임신 전: 여드름 약의 경우 약물을 끊고서도 1달이나 영향을 줄 수 있다. 기형아를 유발하는 약 복용을 임신 전 미리 2~3달 전부터 중단해야 한다.
여드름 치료제, 건선 치료제, 고혈압 치료제, 항생제 등을 주의한다. 감기 때 복용하는 아세트아미노펜 같은 진통제는 큰 해가 없다. 남편 역시 남성호르몬에 작용하는 전립선비대증과 탈모 치료제 등이 임신부에게 노출될 경우 태아의 생식기에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으므로 주의해야한다.
-임신 중: 되도록 유기농 음식을 선택하고, 고열량 음식은 피한다. 당도 높은 음식도 피하고 과다 지방섭취도 자제한다. 패스트푸드는 금물. 카페인은 태아의 발육을 방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나치게 체중이 늘지 않도록 주의한다.
-반드시 독감 예방 주사를 맞는다.
-기형아 예방을 위해 임신 예상 1~3개월 전부터 임신 후 3개월까지 하루 엽산을 600mcg을 섭취한다.
-매연이 많은 곳이나 군중이 많은 곳도 되도록이면 피한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주의한다.
-탄산음료, 알코올, 카페인도 피한다.
<정이온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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