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지역서 3개 프로젝트 맡은
한국 최고 건축가 승효상
“중국·유럽·미국까지 활동 영역 남가주 주택 자연 적대시‘날림’많아
LA대성당이 유일하게 맘에 들어 건축은 사유물 아닌 시민에 소유권 여백 있어야 삶도 더욱 풍요로워져”
한국 최고의 건축가로 꼽히는 승효상.
여백과 비움, 빈자의 미학이 들어 있는 그의 건축물을 수년 내 이곳 LA에서도 보게 될 수 있을 것 같다.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초청강의를 갖고 이달 초 LA를 방문한 승효상(55·이로재건축 대표)씨는 한인타운 인근과 글렌데일 지역에 콘도를 비롯한 3개 프로젝트를 의뢰받아 추진중이라고 밝혔다. 건축주들의 요청으로 아직 구체적인 내용을 밝힐 수 없다고 말한 그는 내년쯤 일이 시작되면 자주 오게 될 것이라며 미국에서의 첫 프로젝트에 강한 기대감을 엿보였다.
서두에서 ‘한국 최고의 건축가’라고 표현했지만 승효상 교수(서울대 건축과)를 ‘한국의 최고’라고 제한시키는 일은 옳지 않다. 미국건축가협회가 명예 펠로십을 수여했고, 2002년 건축가로서는 최초로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로 선정됐으며, 베니스 비엔날레 일본관 초청 대표작가, 김수근 문화상, 건축문화대상 등을 수상한 그는 한국을 너머 중국과 일본, 베를린과 아부다비로 영역을 넓혀 건물을 짓고 있으며 이제는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의 땅이 그의 도면에 그려지고 있다.
그런 그의 눈에 보인 미국, 남가주, LA, 한인타운은 어떤 모습일까?
“한인타운은 서울 변두리를 옮겨온 듯한 인상입니다. 미국의 도시 미관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지요. 간판부터 정리해야 합니다. 너무 어지러워요. 장사해서 돈만 벌면 튀겠다, 남보다 내가 더 잘 돼야겠다는 배타적 생각이 그렇게 만드는 겁니다. 서로 절제해야 서로 잘 되는데 말이에요.”
이곳 남가주 지역의 주택에 관해서 그는 “날림 같다”고 평했다. 물론 기후나 지진과 같은 환경적 요소가 고려된 탓도 있겠지만 “자연을 적대시하고 외부환경을 적으로 삼는 건축 태도”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좀더 ‘무게 있고 주변에 열려 있는’ 집, 자연환경과 친화적인 건축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LA 대성당은 유일하게 그의 시선을 끄는 건축물. 그 외에는 마음에 드는 건축물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월트 디즈니 홀에 대해서는 “주변과 너무 어울리지 않는 디자인”이라 했고, LA를 대표하는 뮤지엄들인 모카나 라크마에 대해서는 “나 같으면 그렇게 짓지 않는다”고 가볍게 일갈했으며, 게티 뮤지엄은 “건축적으로 완성도는 높지만 공공성이 약간 결여돼 유쾌하지 않다”고 평했다. 공공건물은 사람들의 접근이 용이하고 편안함을 주어야 하는데 게티는 어딘지 모르게 잘난 체하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건축은 공공적 가치가 있어야 한다”고 그는 늘 주장한다. 건물은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라 그가 사용하는 것일 뿐 소유권은 시민에게 있다는 것이다. 건물이 그 곳에 있음으로 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주며 그 도시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건축주와 많이 싸우는 건축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집은 당신 집이 아닙니다”라는 인식을 같이 해야 일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건축이 우리의 삶을 바꾼다고 믿는 건축가이다. 한 공간에서 오래 살면 사람이 그 공간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좋은 건축은 좋은 삶을 만들고 나쁜 건축은 나쁜 삶을 만든다고 믿는다. 물론 좋은 건물이란 게 비싼 건물을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빈자의 미학’이란 책을 펴냈고, 바로 그 주제를 건축의 중심에 두고 작업하는 그는 꽉 채우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을 안타깝게 바라본다. 비울 때, 여백을 남길 때 우리의 삶이 더욱 풍요롭고 자유로워진다고 믿는 건축 역시 단순할수록 침묵할수록 많은 삶들을 담아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렇게 볼 때 서양은 공간을 채움으로써 집을 짓지만 마당을 중심에 두는 우리 한옥은 언제나 중앙을 비워놓고 시작하는 비움의 미학, 승효상의 건축철학과 일맥상통하는 건축물이다.
“동양과 서양은 철학과 사상이 다르듯이 건축설계의 태도가 다릅니다. 서양은 자연을 정복하려 하고 동양은 자연에 순응하는 태도를 갖지요. 서양의 건축은 영구적으로 남기기 위해 짓는 반면 우리 한옥은 무너지는 것을 전제로 지었습니다. 폐허가 된 로마신전에는 돌이 많이 남아있지만 흙과 나무로 지은 한옥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자연의 일부가 되는 것이죠.”
그가 하고 싶은 일은 도시 하나를 완벽하게 짓는 일. 좋은 타운을 짓는 것이다. 너무 거대하지 않느냐고 했더니 절대 불가능하지 않다고 대답한다. 도시는 태어나는 것이지 완성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란다. 새로운 도시를 만들어 놓아도 그 도시를 완성시켜 나가는 것은 거주민이다. 그러니까 건축자는 이 도시를 통해 거주자들이 어떻게 잘 살아갈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하는데 대부분 완성시키려는 과욕 때문에 나빠진다고 한탄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한국의 아파트 빌딩 숲. 그 안에서 살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 두부 찍어내듯 만들어낸 아파트 때문에 사람들이 각박해지고 도시병리적 현상이 나타나며 사회적 갈등이 심화된다고 그는 말한다.
“거주자들 자신이 건축이 아니라 부동산으로 보기 때문에 정주공간이 아닌 상품공간이 되어 유목민처럼 살아가지요. 그러니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어떻겠습니까? 우리나라에 갈등과 대립이 많은 이유가 근본적 문제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이 만드는 도시구조와 아파트 때문입니다.”
승효상 교수는 최근 북경 천안문 광장 앞 7만평의 전통보존 재개발구역을 내년 베이징 올림픽 전까지 재개발하는 프로젝트를 맡았다. 중국의 전통을 살리면서 중국인들의 삶을 새롭게 비우고 채워나갈 매스터플랜. 북경 중심의 도시 하나를 완전히 재구성하는 대규모 프로젝트가 한국인의 손으로 이뤄진다는 사실이 놀랍다. 승교수는 2002년 북경 시내 장성주거단지 클럽하우스를 건축했고, 만리장성 옆에 지은 호텔들은 중국 현대건물 10선에 들 정도로 중국에서도 최고의 건축가로 대우받고 있다. 그가 이곳 LA에 지을 건축물이 기대된다.
<글·사진 정숙희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