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전방위 로비 ‘대선 여파’
“비자금 수조원 정·관계에 뿌려”폭로
범여권 대선 후보 “특별검사제 도입”
2002년 대선자금까지 거론 ‘일파만파’
삼성그룹 법무팀장 출신 김용철 변호사와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떡값 검사’ 리스트 공개 등을 계기로 불거진 삼성그룹 비자금 스캔들이 34일 앞으로 다가온 대선정국에 핵폭탄급 쟁점으로 떠올랐다.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인 삼성이 수조원 규모의 비자금을 조성해 검찰과 정치인 등 정계·관계를 대상으로 조직적인 전방위 로비를 하고 경영권 상속을 위한 편법을 자행했다는 충격적인 폭로가 나오면서 ‘삼성 스캔들’이 대선을 앞둔 한국 사회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
이번 삼성 비자금 폭로 사태를 계기로 범여권 대선 후보들이 특별검사 도입에 합의하는 등 ‘반부패 전선’을 형성할 조짐을 보이고 있고 한나라당은 삼성 비자금 사건을 2002년 대선자금, 노무현대통령의 당선 축하금 의혹까지 거론하고 있어 사태가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배경은
이번 삼성 비자금 스캔들은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현 전략기획실)에서 전무급인 법무팀장을 지낸 검사 출신 김용철 변호사(49)가 지난 10월29일(이하 한국시간) 삼성그룹의 비자금 조성 및 전방위 뇌물 로비 등의 주장을 담은 폭탄선언을 하고 나서면서 시작됐다.
김용철 변호사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삼성이 임직원 명의의 차명계좌로 비자금을 조성·관리하고 ▲이건희 회장의 직접 지시로 검찰, 국세청, 재정경제부, 정치인 등을 상대로 전방위 로비를 했으며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를 헐값에 사고팔아 이건희 회장의 외아들 이재용 전무에게 경영권을 넘겨주는 편법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이어 삼성이 관리해온 소위 ‘떡값 검사’의 실명을 공개한다며 차기 검찰총장으로 지명된 임채진 후보자와 이귀남 대검 중수부장, 그리고 법무부 검찰국장을 지낸 이종백 국가청렴위원장 등 3명을 지목했다.
■의혹의 내용
김용철 변호사는 처음 양심선언을 통해 자신 명의의 차명계좌를 근거로 수조원 규모의 비자금 의혹을 제기한 뒤 “삼성이 나를 비롯한 임원 1,000여명의 이름으로 차명계좌를 운용하며 엄청난 비자금을 관리했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 삼성은 그의 이름으로 된 차명계좌에 본인도 모르는 비자금 50억원을 넣어놓고 있었으며 삼성의 모든 계열사에서 수십억원씩의 비자금을 조성해 왔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또 이건희 회장의 직접 지시로 삼성그룹이 구조조정본부를 통해 검찰과 국세청, 정치인 등 공직자와 사회 지도층에 명절 떡값 등 정기적으로 뇌물을 줬으며 이 가운데는 현직 검찰 최고위 간부도 여럿 있다고 주장해 충격을 줬다.
김 변호사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을 통해 ‘회장 지시사항’ 문건이라며 ‘금융관계, 변호사, 검사, 판사, 국회의원 등 현금을 주기는 곤란하지만 호텔 할인권을 주면 효과가 있는 사람들에게 적용하면 좋을 것’ ‘아무리 엄한 검사, 판사라도 와인 몇 병 줬다고 나중에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 등 구체적인 로비 방법이 나와 있는 내용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밖에 김 변호사는 삼성측이 에버랜드 CB 헐값배정 재판·수사 때 진술을 조작했다며 “편법 증여에 관여한 이학수 부회장 대신 허태학 전 에버랜드 사장이 혐의를 받도록 시나리오를 짜고 삼성 본관에 검찰조사실과 같은 연습실을 꾸며놓고 진술을 짜맞췄다”며 당시 담당 재판부에 30억원을 건네려 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삼성측은 김용철 변호사의 주장들이 모두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강력히 반발하고 있고 임채진 검찰총장 지명자 등 떡값 검사로 지목된 당사자들과 삼성 관계자들도 “사실이 아니다”고 강력 부인하며 김 변호사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상황이다.
■특검은 어떻게
검찰이 수사 개시를 선언했지만 정치권이 특검법을 추진키로 함에 따라 수사 대상과 범위가 어디까지 확대될지가 관심의 초점이다.
일단 대통합민주신당과 민노당, 창조한국당 등 3당이 잠정 합의한 특검법안 내용에 따르면 특검법 수사대상에는 김용철 변호사가 제기한 우리은행 차명계좌를 이용한 삼성그룹의 비자금 조성 의혹, 검찰 대상 떡값 제공 여부(뇌물 공여 의혹), 삼성 에버랜드 이건희-이재용 부자 편법 상속 의혹 등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김용철 변호사가 이건희 회장의 직접 지시로 비자금을 이용한 로비가 전방위로 이뤄졌다고 주장하고 있는 만큼 특검에서 이건희 회장에 대한 조사가 이뤄질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특검에 앞서 검찰은 삼성의 비자금 조성 및 검사 대상 로비 의혹에 대해 이미 수사에 착수했기 때문에 삼성으로서는 조만간 관련자 소환이나 압수수색이 있을 것으로 보고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검찰도 김 변호사가 임채진 검찰총장 내정자 등 전현직 수뇌부 3명을 삼성의 ‘관리대상’ ‘로비대상’으로 거명해 사실 여부를 떠나 큰 타격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특검 도입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삼성그룹 비자금 주장 사건일지>
10월29일
전 삼성 법무팀장 김용철 변호사,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통해 기자회견, 삼성그룹의 차명계좌 ‘50억 비자금’ 폭로. 삼성그룹 ‘사실 무근’ 해명.
10월31일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떡값 검사 리스트’ 확보하고 있다고 주장.
11월1일
김 변호사, 정의구현사제단을 통해 삼성의 전방위 로비가 이건희 회장의 직접적인 지시로 이뤄졌으며, 이 회장의 ‘로비 지침서’가 있다고 주장. 사제단, ‘떡값 리스트’에 현직 대법관 등 판사들도 포함돼 있다고 주장.
11월2일
김 변호사 ‘에버랜드 전환사채 의혹’ 사건 증인 조작설 제기. 정성진 법무부 장관 국정감사에서 “삼성 비자금 수사할 용의 있다”고 발언.
11월3일
김 변호사, 이건희 회장이 직접 정치인, 법조인 로비 지시한 회장 지시사항’ 문건 공개. 삼성, “사실 왜곡”이라며 의혹 전면 부인.
11월4일
김 변호사, “삼성이 국세청 인사들에 대해서도 억대 떡값 로비했다”고 주장.
11월5일
김 변호사 기자회견, ‘최고위급 검사 여럿 포함’ 발언.
11월6일
참여연대 및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이건희 회장·이학수 부회장·김인주 사장 등 5명 대검찰청에 고발. 특별수사팀 구성 요구.
11월12일
사제단 ‘삼성 떡값검사’ 3명 실명 공개, 임채진 검찰총장 내정자 등 당사자들 강력 부인.
11월13일
정동영·권영길·문국현 후보 삼성 비자금 특검법안 추진 합의, 삼성측 김용철 변호사 ‘명예훼손’ 고소.
11월14일: ‘삼성그룹 특검법안’ 국회 발의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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