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될 뻔 했던 사람 이야기다. ‘김주원(金周元)스토리’다. 그는 허구의 인물이 아니다. 통일신라 때, 그것도 하대(下代)로 불리는 시대의 사람이다. 무열왕계의 진골(眞骨) 신분으로, 선덕왕 시절 신라 귀족사회 서열 1위의 실력자였다고 한다.
그 선덕왕이 후사가 없이 죽자 그는 왕으로 추대된다. 문제는 그날, 즉위식 날 발생한다. 그래서 ‘왕이 된 게 아니라 될 뻔 했던 인물’로 역사에 각인된다.
그날 마침 큰 비가 내린다. 당시 김주원이 살던 곳은 경주 부근 알천의 북쪽이라고 한다. 물이 불어 내를 건널 수 없어 즉위식에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없었다. 그 사이 경쟁자인 내물왕계의 김경신(金敬信)이 귀족들의 추대를 받아 왕위에 오른다. 그가 원성왕이다.
어떻게 파워 게임에서 밀려났을까. 자세한 내막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어쨌거나 김주원은 정치적 패배를 인정하고 오늘 날 강릉지역인 명주로 피신한다. 그러자 원성왕은 타협의 제스처로 그를 명주군왕에 봉한다. 그곳의 식읍을 하사하고 그 일대를 다스리도록 사실상의 자치권을 부여한 것이다.
이것으로 스토리는 그러면 끝인가. 아니 이야기는 그 다음부터다. 왕이 될 뻔 했었다. 아니, 왕이 되어야만 했었다. 그래서 한(恨)으로 남았다. 그 한은 결국 큰 불씨로 자란다. 그의 아들 김헌창이 반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신라의 귀족, 진골(眞骨)간의 다툼은 사실 그 전부터 있었다. 혜공왕 때 3년간 이어진 ‘96각간의 반란’이 그 스타트다. 혜공왕도 결국은 쿠데타 세력에 의해 목숨을 잃는다. 내물왕계인 김양상이 혜공왕을 살해한 장본인으로, 그가 바로 선덕왕이다.
이 진골간의 싸움은 그러나 ‘왕이 될 뻔 하다가 만’ 그 한풀이 이후 더 치열해진다. ‘김헌창의 난’이 왕위를 둘러싼 내란을 확대시킨 것이다. 말하자면 쿠데타의 연속이다. 기득권층인 이 진골들의 다툼에 6두품 이하 사람들은 진저리를 내고 새 시대를 갈망하게 된다. 골품제의 신라사회는 결국 화석화되면서 멸망으로 치닫는 것이다.
케케묵은 이야기다. 그 이야기를 새삼 들먹이는 것은 다름 아니다. 역사의 세팅은 분명히 다르다. 그런데 그 스토리의 전반부가 어딘지 이회창 스토리와 많이 닮아서다. 왕이 될 뻔 했었다. 대통령이 될 뻔 했었다. 바로 이런 점에서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뭐랄까, 이회창 출마에 따른 보수 세력의 내란, 그게 어딘가 진골들의 싸움을 방불케 하는 점이 없지 않아서다. 적통이 아닌 사람이 중심부를 장악한다. 그러면 그때부터 싹트는 건 쿠데타의 기운이다. 그런 측면도 엿보여서다.
이회창 출마론이 불거지자 한나라당 일각에서 나온 비아냥이 이른바 성골(聖骨)논쟁이었다고 한다. 한나라당 적통의 인물이 아니다. 이명박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런데서 주류를 자처하는 일부 세력이 말은 안했지만 불만을 품고 있었다는 거다.
그 불만은 자타가 인정하는 성골, 이회창 출마설과 함께 폭발됐다는 얘기다. 대북정책이 석연치 않다 등의 명분과 함께. 진골들의 싸움도 그랬다. 혈통주의에 따른 왕권 보호가 내 건 명분이었다.
그러나 결국은 변질한다. 이해를 둘러싼 세력다툼으로. 한나라당의 내분도 그런 형국을 보이고 있다. 대선은 그렇다고 치고 총선에 대비해야한다. 그에 따라 한나라당 내부의 세력 간 재결집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이를 뒷받침하는 게 아닐까.
문제는 보수 진영의 내란이 결국은 ‘김주원 스토리’의 전반부뿐이 아니라, 후반부도 닮게 되는가 하는 점이다. 여러 가지 조짐이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다. 박근혜가 지나치게 오랫동안 침묵을 하고 있다. 그것도 불안요소다.
보기에 따라서는 경선을 불복한다는 것으로 비쳐진다. 그래서인가. 반발도 만만치 않다. “한나라당은 TK 진골의 장난감이 아니다.” 보수진영 일각에서 나오는 소리다. 대구· 경북을 프랜차이즈로 한 한나라당 주류를 겨냥한 공격이다. 이명박 진영은 상황에 따라 박근혜 진영과 결별도 불사하라는 주문으로도 들린다.
그건 그렇고, ‘…될 뻔했다’는 점과는 달리 역사 속의 김주원은 이회창과 다른 행보를 보였다. 정말로 억울했을 것이다. 왕으로 추대를 받았다. 그런데 라이벌의 농간으로 그것도 즉위식날 배신을 당하다니. 그렇지만 본인이 직접 화풀이에 나서지는 않았다. 후대에 아들이 나섰다. 이회창은 본인이 직접 나섰다.
이 이회창을 후세의 역사는 어떻게 평가할까. 더구나 그의 출마로 보수세력이 분열돼 다수 한국인들의 염원인 정권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에는.
옥 세 철 /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