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웃에서 가장 의식 있는 배우로 꼽히는 조디 포스터. 예일대 출신으로 야무지고 똑똑하다고 해 ‘에그헤드’라는 별명이 붙어 있는 포스터는 몇주 전 토론토 영화제에서 본보 박흥진 편집위원과 가진 인터뷰에서 인상적인 말을 했다. “진정한 용기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포스터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가장 수치스러운 것을 인정할 수 있는 힘”이라고 대답했다. 많이 배우고 많이 생각하는 배우다운 답변이다.
용기에 대한 정의는 사람에 따라, 문화에 따라 다양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수치스러운 것을 인정할 수 있는 힘’이란 정의 속에서는 인간 본성에 역류하고 저항하는 강한 도덕의 힘이 느껴진다. 자신의 수치스러운 부분은 되도록 감추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니 말이다.
귄터 그라스는 독일 전후세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지식인으로 꼽혀 온 작가이다. 나치를 신랄하게 비판한 소설 ‘양철북’(영화로도 만들어졌다)으로 필명을 얻은 후 1999년 노벨문학상까지 받은 그라스는 ‘독일의 양심’ ‘도덕의 나침반’ 등으로 평가 받아 온 행동하는 지성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그라스의 난데없는 과거 고백으로 유럽이 발칵 뒤집혔다. 78세의 노작가가 자신이 나치 친위대에 근무했었던 사실을 60년만에 털어 놓은 것이다. 그라스는 “복무하면서 총 한발도 쏘지 않았다. 하지만 전쟁 후 시간이 흐를수록 죄책감과 수치심에 괴로워했다”고 심정을 밝혔다.
그라스가 나치 전력을 고백한 것은 60년이 지난 다음이었지만 그가 과거 때문에 그동안 겪어왔던 괴로움은 참회의 고백이 나오기 오래전부터 작품 곳곳에서 확인된다. 그는 몇년 전 출간한 시집에 실린 ‘어느 상습범의 절반만 진실인 참회’라는 제목의 시에서 이렇게 자기 인생을 돌아보고 있다.
“나는 현재를 헐값에 팔아 치우고/ 과거의 젓을 짰다. 외상으로 미래를 샀다/ 그렇게 나는 빈곤을 처치하고 부자들 중 하나가 되었다… 나는 입상이 되어 도처에 전시되었다/ 나 자신을 내게서 빼앗아 세계의 소유물이 되어/ 흔들리는 단위에 박혀 있었다.” 비록 고백은 늦었지만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처절한 노작가의 자기반성에서 참회의 진정성이 묻어난다.
얼마 전 경북 희양산 봉암사에서 장대비 속에 스님 1,000여명이 모여 참회의 집회를 가졌다. 최근 잇달아 터지는 불교계 비리와 스캔들을 참회하고 불교 본래의 정신으로 돌아가자고 다짐 하는 자리였다. 개신교도 그동안 한국 교회들이 보여 온 독선과, 복음을 벗어난 행태를 참회하는 기도회를 잇달아 갖고 있다. 종교계의 위기의식이 커지고 있는 것 같다.
종교계의 참회는 가장 자연스럽다. 종교는 인간의 불완전함과 약함에 대한 고백을 토대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절대자와 인간이 모두 대상이 될 때에만 사랑이 완전해 지듯 참회 또한 절대자 앞에서는 물론 인간들 앞에서도 이뤄져야 완전하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사회 앞에 참회하는 한국 종교계의 모습도 일단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만하다.
참회에 관한 성화를 가장 많이 그린 화가는 바로코 시대의 스페인 화가 엘 그레코이다. ‘참회하는 베드로’도 그가 남긴 유명한 작품의 하나이다. 이 그림은 베드로가 두 손을 모은 채 하늘을 응시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그런데 그림을 보면 참회의 기도를 하는 베드로의 손에 2개의 큰 열쇠가 걸려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그레코는 왜 두개의 열쇠를 그린 것일까. 열쇠 중 하나가 천국의 문을 열기 위한 것이라면 다른 하나는 인간관계의 문을 여는 열쇠임을 상징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짐작해 본다.
참회는 과거의 방으로부터 나와 미래로 나가도록 열어 주는 열쇠가 된다 이 열쇠는 타인뿐 아니라 갈등하던 자기 자신과도 화해할 수 있도록 마음의 문을 열어준다.
또 참회는 잘못된 과거에 마침표를 찍는 행위이다. 문법과 내용이 잘못된 문장에 마침표를 찍지 않는다면 아무리 새로운 내용을 더해도 여전히 잘못된 문장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참회는 유약함의 표현이 아니다. 강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용기 있는 행위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 2000년 세계 앞에 가톨릭교회의 지난 죄악을 고백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참회의 본질을 보여 주었다고 생각한다. 그가 훌륭한 교황으로 추앙 받는 것은 바로 배우 포스터가 말한 이런 용기 때문이다.
참회가 선행되어야 개인과 개인, 조직과 조직, 개인과 조직, 개인과 국가, 그리고 국가와 국가 간에 비로소 진정한 화해가 시작될 수 있는 것이다. 참회에 인색해 이웃과 불화하고 있는 작금의 일본이 이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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