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가주에서 거주환경 좋고 학군 좋기로 유명한 한 지역의 독자가 지난주 전화를 해왔다. 이민 온 지 9년 된 그 주부는 지역 성인학교에 영어 공부하러 다닌 지가 꽤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은 학교 가는 마음이 편치가 않다”는 것이 그가 전화를 하게 된 동기였다.
“한인인구가 늘면서 학교에 한인 학생들이 무척 많아요. 그런데 왜 그렇게 모두 목소리가 큰지 한국말로 떠드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요. 수업 중에도 한국말로 잡담을 해서 교사들이 주의를 주곤 하지요. 며칠 전 한 교사는 우리 들으라는 듯이 ‘옆 반의 코리안들은 너무 떠든다’고 하더군요”
그의 영어반 학생은 35명 정도인데 그중 10여명이 한인이고, 나머지는 일본계 10여명과 대만계, 아랍계 등이다. 그의 관찰로는 숫자가 비슷한 일본계는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수업 시간에 조용하고, 쉬는 시간이면 밖에 나가 조근 조근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반면 한인들은 교실에 둘러앉아 왁자지껄 떠들어서 눈에 띄게 시끄럽다.
게다가 수업시간이면 저마다 전자영한사전을 켜놓아서 거기서 나는 삐삐 소리, 사전 들여다보며 “아, 그게 이런 뜻이래!”하면서 옆 사람과 주고받는 소리 등으로 수업 분위기가 더욱 산만하다고 그는 전했다.
“미국 같은 다민족 사회에 살려면 좀 눈치껏 해야 하지 않을까요? 너무 우리만 있는 듯이 행동해서 눈에 거슬려요. 창피해서 내가 한인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싶을 정도예요”
‘남을 어느 정도 의식하며 살 것인가’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부딪치는 문제이다. 어떤 옷을 입느냐 라는 사소한 문제로부터 진학, 직업 선택, 결혼, 자녀교육 등 인생의 모든 문제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남을 의식한다. 남과 어울려야 제대로 살 수 있는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이민자들은 그런 부담이 특히 큰 집단이다.
‘성인학교의 시끄러운 한인들’에 관해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그들의 ‘시끄러운 교제’를 모두가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었다. “낯선 미국에서 외롭게 생활하다가 동족을 만나면 얼마나 반가운가? 반가우니 목소리가 커진 것”이라는 이해이다.
한인학생들이 다수인 LA 3가 초등학교에서도 매일 아침 한인 엄마들이 이야기꽃을 피운다. 자녀들을 등교시키고 나서 30분 정도 카페테리어에서 같이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데 그러다보면 자연 목소리가 커지기 마련.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들도 있지만 수지 오교장의 의견은 다르다.
“아이들 키우랴, 비즈니스 하랴 얼마나 스트레스가 많겠어요? 이렇게 모여서 한국말로 이야기 하는 게 쉬는 시간이지요. 누구나 스트레스를 해소할 분출구가 필요하니까요”
그렇기는 해도 한인들이 너무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큰 소리로 말한다는 데는 누구나 동의한다. 골프장이나 공항 같은 데서 들리는 큰 소리는 대개 한국말이더라는 것이다.
다민족 사회에서는 그 사회의 일원으로서 지켜야할 매너가 있다. 남의 ‘눈치’를 보자는 것이 아니라 남을 ‘배려’하자는 것이다.
우선 한국말 모르는 사람들이 모인 장소에서 한국말로 떠드는 것은 실례이다. 모르는 언어는 더 시끄럽게 들리는 법이다. 미국 식당이 왁자지껄해도 귀에 거슬리지 않는 것은 우리가 알아듣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타민족이 많이 모인 장소에서 한국말을 할 때는 조용조용 하는게 좋겠다.
다음, 한인들이 자주 저지르는 무례는 타민족을 앞에 놓고 한국말로 그를 평가하는 것이다. 말은 못 알아들어도 몸짓이나 표정으로 상대방도 분위기를 파악하기 마련이다. 아울러 타민족과 어울린 자리에서 한국말을 쓸 때는 먼저 양해를 구하는 것이 매너. “미안하지만 잠깐 한국말을 쓰겠다”고 한 후 나중에 대화 내용을 영어로 요약해 주는 것이 예의이다.
“이웃에 방해되지 않도록 나지막한 소리로 이야기 하고 이웃사람이 싫어하는 냄새, 음성, 모양은 보이지 말라”던 100여 년 전 도산의 가르침은 지금도 유효하다.
다민족 사회에서는 나 한사람의 행동이 ‘코리안은 저런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만들 수가 있다. ‘교양 있는 민족’이라는 이미지를 위해 쉬운 것부터 실천해보자. 목소리를 낮추는 일이다. 소리가 작으면 흠 잡힐 일도 별로 없다.
junghkwon@koreatimes.com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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